살아가는 이야기

고향 마을 뒷산에서 길을 잃다/48년이란 세월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이 변화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청솔고개 2021. 1. 8. 02:14

고향 마을 뒷산에서 길을 잃다

                                                                               청솔고개

   한 5,6년은 전이었나.

   아내에게 내 고향 마을 뒷산에 가보자고 했다. 나로 봐서는 불감청고소원격이다. 내가 어릴 적 소 먹이던 산에 봄에 나물 뜯으러 가기 위해서는 미리 가 보야 한다고 가야할 이유를 몇 가지나 대면 말했던 것을 아내가 기억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도 젖어보고 싶었고 아내에게도 은근히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늦게  가벼운 차림으로 올라갔다. 내겐 너무나 쉬운 고향 뒷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소 48년 만에 찾는 내 유소년 시절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 드디어 내가 마음 졸이며 소잔등 타고 내려왔던 고갯길에 접어들었다. 울창한 잣나무 숲 때문에 벌써 어둑어둑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이때부터 내 기억은 그대로 실종, 잔솔이 자부룩하던 오솔길은 간 곳 없고 경운기길이 넓게 파이다시피 나있고 양 옆으로는 새로 심은 잣나무, 소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있다. 한여름에 이 길을 소 몰고 가다가 쉬면서 물도 마시고 했던 그 여름날의 기억은 암만해도 연결시킬 수 없었다. 왼쪽으로 자꾸 가다 보니 새로 뚫린 고속철로 위로 지나가면서 멀리 골안못이 보였다. 초등 1,2년 시절, 내가 물먹으면서 헤엄을 배운 곳이다. 그때 그 여름날들이 눈에 선연하다.

   아내는 낙엽이 많이 쌓이고 미끄러져서 잘 못 올라가겠다고 투정이다. 그러다가 산불 난 곳에 마른 고사리가 많이 자생하는 것 보고 벌써 내년 봄에 고사리 뜯으러 온다고 야단이다. 오른쪽으로 시퍼렇다 못해 검푸른 화실못이 나타나고 막바지 숨을 고르면서 오르기를 딱 한 시간 만에 소두방산[星浮山] 정상에 도달했다.

   내려오는 길은 낙엽 때문에 더 미끄럽다. 바로 밑까지 내려왔다 싶은데 거기서 그만 돌아가는 정확한 길이 헷갈려서 우왕좌왕한다. 왼쪽 아래로 내려가니 거기에는 느닷없이 또 샘이 있고 호수가 연결되어서 물통에 물을 받고 있었다. 아까 올라올 때는 보지 못한 모습이라서 또 혼란스러워진다. 다시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하나? 오른쪽으로 올라가니 아래 멀리 고속철로와 터널이 보이는 바람에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내려왔다.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해 저무는 줄 몰라 그냥 있다가 낭패를 당했다.

 

위의 기록은  지금 그 때  상황을 기억한 것이고 아래부터는 같은 이유로 그날로 바로 기록한 것인데 이를 다시 한 번 들춰본다.

   어제의 약속을 아내가 먼저 상기해 주었다 . 참 고맙다. 그 약속은 오늘 오후 고향 뒷산 찾는다는 것이다. 나는 기대에 오전 내내 들떠 있었다.

   오후 3시 좀 지나서 아내의 제안대로 고향 외말 뒷산 소두방산[星浮山]을 찾았다. 뜻밖의 아내의 제안이 정말 고맙다. 오면서 증조부모, 조부모님 묘소도 다녀오고 싶어 했다. 장곬에 가서 능갓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4시 5분에 출발했다. 능갓 지나 첫 능선 오를 때까지는 하초가 좀 조이고 저렸다. 최소 48년 만에 찾는 내 유소년 시절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

   드디어 내가 마음 졸이며 소잔등 타고 내려왔던 고갯길에 접어들었다. 울창한 잣나무 숲 때문에 벌써 어둑어둑했다. 아내는 또 그 천성답게 급하게 불안해했다. 아내의 습성 그대로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이때부터 내 기억은 그대로 실종됐다. 잔솔만 자부룩해서 한여름에도 땡볕하나 쉴 곳 없었던 오솔길은 간 곳 없고 경운기길이 넓게 파이다시피 나있고 양 옆으로는 내 키 두세 배나 되는 잣나무, 소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있다. 모두들 그 후 조림된 것이다. 한여름에 이 길을 소 몰고 가다가 쉬면서 물도 마시고 했던 그 여름날의 기억은 아무래도 연결시킬 수 없었다. 왼쪽으로 자꾸 가다 보니 고속철로 위로 지나가면서 멀리 골안못이 보였다. 초등1,2년 시절, 내가 물먹으면서 헤엄을 배운 곳이다. 그때 그 여름날들이 눈에 선연하다.

   어린 시절 당시 여기까지 무지당, 미영밭, 능갓, 능골로 이어지는 산길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한여름 소들의 쉼터인 무지당을 떠나 미영밭을 지나서 능갓으로 접어든다. 신라 어느 왕릉을 보호하기 위한 숲이 조성된 곳이다. 그 왕릉의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호석 은 왕릉 중 가장 잘 보존된 것이라고 보고된 적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야트막한 첫 오르막길 입구에는 골짜기 샘물 새어 나오는 곳인데 어린 시절 소 먹이러 갈 때는 반드시 이 샘물로 목을 축였었다. 이곳을 능골비알이라고 불렀다. 오른쪽 위로 올라가면 능갓 뒷산이 이어진다. 이곳은 화강암 마사토 토양이라 꼬불꼬불, 꼬장꼬장한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었다. 소나무는 당시 내 키만 한 것부터 좀 더 큰 것이 동쪽 사면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얼마 전 산불이 나서 왕릉 바로 뒤까지 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멀리서 보니 거뭇거뭇한 불탄 자국이 보인다. 이 고개를 넘으면 평탄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그 옆길에는 키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었다. 우리 소먹이꾼들이 여기서 으레 좀 쉬어 가는 곳이었다. 여기서 오른쪽은 화실못으로 내려가는 길이 이어지고 행세깨나 한다는 몇몇 집안의 묘소 주변에는 키 큰 도래솔이 듬성듬성하게 서 있었다. 골짜기 아래로 못 둑이 훤히 내려다 보였었다.

   여기도 어느 등산객이 다녀갔는지 길 표시 리본이 헤진 상태로 묶여져 있다. 나는 다리 저림도 잊은 채 마구 치오른다. 어린 시절의 그 즐거운 상념들이 막 솟아오르는 것 같다.

   다시 두 번 째 고개를 올랐다. 오늘 여기 와서는 처음엔 이곳이 산 정상인 줄 알았다. 꼭대기에는 묘소 몇 기가 있었다. 다시 약간 아래로 내려가니 저 멀리 건너편 산꼭대기에 소나무가 울창한 게 보였다. 왼쪽은 모두 산불로 민둥산이 돼 있어서 어린 시절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여기는 고사리 대가 말라 있는 게 많이 보여서 봄이 되면 지천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내는 이 고사리 마른 대궁을 보고 환호작약한다. 처음엔 그 앞 봉우리가 정산인가 싶어서 환호작약했는데 ‘어렵쇼’ 조금 멀리 쳐다보니 더 큰 시커먼 봉우리가 버티고 있지 않는가. 정상인가 싶어서 착각한 봉우리엔 묘소가 서너기 서 있었다. 아내는 이런 곳에 묘소를 써 놓다니 하면서 한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그건 맞는 말 같았다.

   드디어 소두방산[星浮山] 마지막 봉우리가 앞에 펼쳐진다. 아내는 낙엽이 많이 쌓이고 미끄러워서 잘 못 올라가겠다고 연신 투정이다. 그러다가 산불 난 곳에 마른 고사리가 많이 자생하는 것 보고 벌써 내년 봄에 고사리 뜯으러 와야겠다고 야단이다. 아내의 이런 야생 나물, 사고디, 버섯 등 수집, 채취 벽은 알아 줄만하다. 오른쪽으로 시퍼렇다 못해 검푸른 화실못이 나타나고 막바지 숨을 고르면서 오르기를 딱 한 시간 만에 소두방산[星浮山] 꼭대기에 도달했다. 벼락이 때려서 외말 새말댁 꼴머슴이 먹이던 소가 넘어져 죽은 현장인 정상 바로 밑의 바위를 가르쳐 주었다.

   꼭대기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서로 사진도 찍었다. 면의 농협이 세워 놓은 정상 석에는 ‘성부산(星浮山)322미터’라고 뒷면에 새겨져 있다. 앞면에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성부산의 유래가 소상히 새겨져 있었다. 큰 불덩이가 별처럼 떠서 적군에게 떨어져 적을 물리침으로써 신라를 구한 기적의 현장이라고 안내되어 있다.

   마침 한겨울 해가 지고 있었다. 마른 숲 속에 지는 해가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내 모습 같은가. 비감함마저 든다. 겨울바람에 뜬 별을 잡는다고 산을 헤매서 그런지 아내의 볼이 얼어서 발그레하다.

   5시 20분에 정상에서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은 *까랍대기 때문에 더 미끄럽다. 아내는 엉거주춤, 하는 수 없이 내 등을 잡고 속도를 조절하도록 해서 간신히 바로 밑까지 내려왔다.

   거기서 그만 돌아가는 정확한 길이 헷갈린다. 날도 어둑어둑해서 더 우왕좌왕한다. 왼쪽 아래로 내려가니 거기에는 올라 올 때는 본 적이 없는 샘이 나타나고 호수가 연결되어서 물통에 물이 담겨지고 있었다. 더 혼란스러워진다. 다시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하나 싶어 다시 오른쪽으로 올라가니 아래 멀리 고속철로와 터널이 보이는 바람에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내려왔다.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산 정상에서 똑바로 곧장 내려와야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전체 방향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른쪽에 골안못이 멀리 시퍼렇게 보이니 전체로 가는 방향은 맞은 것 같다. 아까 올라올 때는 능선에 난 넓은 길이었는데 이제 내려가는 길은 산 옆으로 난 오솔길이어서 또 찜찜하다. 헤드랜턴을 켰는데 불이 안 온다. 다시 스마트폰 보조기능을 사용해보았다. 불이 밝다. 아내는 비로소 좀 안심하는 눈치다.

   고향 마을 뒷산에서 길을 잃는 황당한 상황이 전개된다. 아내는 처음엔 어이없다는 듯이 짜증을 내고 투덜거리다가 이제는 도리어 차분해진다. 나중에 들으니 너무 당황하거나 투덜대면 내가 오히려 더 힘들어질까봐 그랬단다. 기특하다.

   한참 가니 키 큰 잣나무 숲에 들어간다. 긴장되고 무서운 기분인데 ‘푸드득’하고 무슨 새가 앞에서 시조새처럼 날아오르는 바람에 아내는 거의 혼쭐이 나간 것처럼 비명을 질러댄다. 이번에 사실 나도 좀 놀랐다. 겨울날은 포근하지만 하산하는데도 땀이 흥건하다. 계속 하산은 하는데 또 낯설다. 한참 가니 한글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는 묘소를 발견했다. 아까 오르면서 잠시 지체했을 때 보아두었던 묘소다. 이제야 알겠다. 능선 위에서 내려오는 큰 길, 경운기 다닐 만한 길을 만났다. 이 길만 따라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또 가다가 중간에 오른쪽 샛길이 있다. 혼란스럽다. 다 왔는데 밤이고 또 숲속이라 방향 감각이 완전히 상실된 것 같다. 한참 가다가 다시 돌아와 샛길로 빠져보았다. 한참 가니 개가 시끄럽게 마구 짖어대고 철책이 보이고 인가의 불이 몇 개 빤히 보인다. 이곳이 아마 숯가막골 마을인 것 같다. 내 청소년시절, 절친한 형이 살던 곳이다. 그러면 여긴 또 아니다.

   다시 되돌아서 한참 가니 드디어 좀 훤히 밝아지면서 아랫동네와 외말 동네 불빛이 보인다. ‘와! 살았다.’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아내는 이제야 머리가 아프다고 난리다. 가슴도 뛴다고 했다. 나도 땀이 흠뻑 젖었다. 손바닥처럼 느껴지던 고향 마을 뒷산에서 이렇게 헤매다니, 이렇게 혼쭐나다니!

   48년이란 세월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이 변화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2014. 1. 7. 화 맑음]

                                                                                    2021. 1. 8.

[주(注)]

*까랍대기 : ‘가랑잎, 낙엽’의 토박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