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둘이서 겨울 길을 걷다/버썩 마른 강가의 갈대나 둑의 억새가 겨울바람에 서걱댄다

청솔고개 2021. 1. 20. 03:06

둘이서 겨울 길을 걷다

                                         청솔고개

   요즘 내가 자전거 끌고 아내와 둘이서 강변 길 산책하면 마음 준비가 안 돼서 그런지 쉽게 저림이 가시지 않는다. 그런데 아들이 함께한 산행에서는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아니면 처음에 나타나더라도 비교적 빨리 해소되는 것은 아이의 동행과 아이의 진지한 보살핌이 보장돼 있다는 심리적인 작용 때문인 것 같다.

   오늘 오후는 예보보다는 날씨가 포근한 편이다. 겨울바람은 살짝 인다. 버썩 마른 강가의 갈대나 둑의 억새가 겨울바람에 서걱댄다. 그들도 너무 추워서 서로의 몸을 비벼대는가 보다. 아니면 등이 가려워 바람에 의지해서 서로 긁어주는 것 같다. 그래도 그 소리가 아주 쓸쓸하게 들린다. 갈잎 더미 너머 얼음이 녹은 강물에는 오리들이 짝을 지어 놀고 있다.

   아내는 “오리는 늘 저렇게 짝을 지어 다니네요.” 한다. 내가 “꼭 우리를 닮은 것 같소. 저 오리들이 우리들한테 배운 같은데.”하고 능청을 떨어본다. “그런데 지난번 영하 10도 안팎의 날씨가 계속 돼서 여기 꽁꽁 얼어붙어 버렸을 때는 오리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던데 그 많은 오리가 다 어디 갔다가 다시 오는지 늘 궁금해요?”라고 아내한테 물었는데 마스크에 고깔까지 쓰고 있어서 아내가 잘 못 알아듣는다. 내 말이 강바람에 날려버린 것 같다. 다시 한 번 되풀이 했더니 알아듣고 “그러게요”한다. 그러면서 “여기는 며칠 새 다 녹아서 이렇게 오리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데 저 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얼음지치기도 하고 스케이트, 썰매 타기도 하는데 같은 강인데도 참 다르니 재미있네요.”한다. 내가 대답하기로 “아마 햇살이 적게 드는 북사면에 위치하는 곳이라서 그런 것 같소. 스키장을 북사면에 조성하는 것처럼”하고 나는 아는 것처럼 답해 줬다. 내가 살던 고향 마을은 이름이 두 개인데 하나는 외말이고, 하나는 부지(鳧池)데 여기서 ‘鳧’는 오리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풀어쓰면 오리 못이다. 그만큼 이곳은 예로부터 겨울만 되면 철새 오리 떼의 놀이터이었던 모양이다.

   오늘도 아내가 폰을 보고 오천 보 반환점을 가늠해 본다. 늘 건조특보가 내리는 아 곳의 겨울 날씨로 길 가장자리를 밟으면 먼지가 풀풀 날린다. 요즘은 그게 오히려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모래더미도 만난다. 일부러 밟아본다. 그 푹신한 느낌에 기분이 좋다.

   드디어 해가 서산마루에 반쯤 걸렸다. 오늘은 아주 여느 때보다 붉은 색이 더 연해졌다. 부드러워 보이는 석양이다. 강위 얼음장에서 얼음 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얼음장 위로 번들번들하게 비치며 희미하게 퍼져나간다. 이러한 그들에게서 마치 한겨울에 국경을 넘어서 멀리 떠나가는 우리 선조 유랑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국경의 밤’ 같은 얼어붙은 동토의 이미지도 비쳐진다. 그들이 더욱 추워 보인다. 등 뒤에는 기울어져가는 겨울 햇살이 엷게 비치고 있다.

   드디어 해가 넘어갔다. 살짝 어둑어둑하다. 여름날 같으면 이 순간이 오히려 잠시 더 훤해지고 때로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될 때도 있지만 겨울은 그런 착시현상이 없다. 겨울 해질녘 낙조는 어둠사리를 더욱 두터워지게 한다. 어두운 조명을 재촉한다. 주변 가로등과 길 너머 가게에 하나둘씩 등불이 켜진다. 처음엔 그것이 아주 조용히, 전혀 미동도 없이 점등이 되더니만 조금만 지나면 주변이 모두 등불로 반짝거린다.

   바로 겨울저녁이 된다. 내 청춘 시절에는 이 등불이 켜질 무렵, 발갛게 켜져 있는 백열등의 온기가 그리워져서 나의 노래를 지었던 게 생각난다. 그 때 나는 도저히 그 백열등이 켜져 있는 따스한 문으로는 들어갈 수는 없다는 아득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 인생에서 행복으로 들어가는 방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문 안의 부엌에서는 저녁을 지으면서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와는 너무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결코 그런 행복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비극의 운명을 타고 났다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음울했던 시간은 평생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나는 그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평생을 살아도 헤어나지 못하는 그 무엇이다. 백열등의 따스함, 그 온기 같은 행복, 혹은 마음의 평화는 내게 없는 것 같다. 4,5십년 지난 지금의 나는 그런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고 있는가.

   풀풀 날아오르는 들새들도, 뭔가 서로 다투고 있는 듯은 물새 떼도 더욱 쓸쓸해 보이는 겨울 저녁 시작 무렵이면 늘 이런 불안감이 나를 짓누른다.

   어제 산행 후 산자락 밑에 너른 들녘의 하늘을 뒤덮었던 새까만 갈가마귀 떼의 분주함이라면 잠시라도 나의 이 고적함을 조금이라도 가시게 해 줄 텐데 지금은 한 마리도 안 보인다. 더 멀리 날아가 마른 들녘에 달라붙은 그 갈가마귀 떼를 보고 아이는 어디에 붙어 있는 파리 떼 같다고 했고, 나는 여름날 밥상보에 기어오르는 개미 떼 같다고 했던 어제 저녁 무렵이 생각난다. 2021.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