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여행의 법칙 2

청솔고개 2022. 2. 23. 23:54

                                                                                                                            청솔고개

   나의 부시 크래프트 관련 여행에 대한 상상은 계속 이어진다.

   나는 한 달째 길을 가고 있다. 청 보리밭을 지나 실개천을 건너서 좁은 산길로 접어든다. 야산이지만 이런 산속에는 일용할 것들이 많이 있다. 찔레 새순을 꺾어다 씹어 먹고 남은 건 말린다. 산딸기도 지천이다. 따며 먹으며 손에 남는 것은 수통에 담는다.

   걷고 또 걷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어 간다. 야트막한 산을 지나 강가에 다다랐다. 오늘은 여기서 묵어야겠다. 근처에서 가랑잎과 넓은 풀을 뜯어 모아서 잠자리를 만든다. 제법 푹신한 요가 됐다. 이만하면 오늘 저녁도 편안히 잠자리에 들겠다.

   강물에 저녁노을이 진다. 슬퍼 보인다. 저녁밥은 좀 있다 먹어야겠다. 여기서 오늘 피라미라도 잡아 볼까. 호미로 강가를 파서 지렁이를 너덧 마리를 찾아낸다. 줄낚시를 드리운다. 물결이 잔잔하다. 비단주름 같다. 금방 입질이 온다. 제법 큰놈이 걸린 것 같다. 버들피리다. 잔챙이도 몇 마리 걸려든다. 오늘은 운이 좋다. 저녁놀에 피라미의 잔 비늘이 반짝거린다. 이만하면 오늘 저녁거리는 건진 셈이다. 강가의 묵은 가랑잎을 끌어 모아서 불을 피운다. 바로 불기가 남은 재가 쌓인다. 근처 망개나무를 찾아 망개나무 잎을 꺾어서 버들피리와 피라미를 한 놈씩 싸서 잿불에 파묻는다. 조금 있으니 김이 서리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 피라미 익어가는 냄새다. 수북한 가랑잎 재를 헤치고 잎에 싸여진 생선을 꺼내서 하나씩 씹어본다. 오늘 저녁 식사는 남아 있는 찐 살 불린 것에 이 생선가랑잎 구이면 넉넉하다. 배낭에서 익은 보리 이삭을 꺼낸다. 강가 잔가지를 주어모아서 불을 피운다. 제일 작은 코펠에 물을 담고 끓인다. 익은 보리 이삭을 넣는다. 누런 보리물이 우러나온다. 즉석 보리차다. 한 잔 들이키니 구수한 보리내음이 얼굴을 감싼다.

   생각없이 밤이 빨리 찾아온다. 벌써 샛별은 환히 빛나고 먼 들녘에선가 요상한 울음소리가 퍼져온다. 긴 여운을 끈다. 늑대 울음인가. 개똥벌레가 어지럽게 춤을 춘다. 어린 시절 개똥벌레 똥짜바리를 떼서 눈에 붙이고 '어흥' 하면서 도깨비 흉내를 냈던 게 떠오른다. 이 놀이는 깜깜한 밤이면 더 재밌다. 개똥벌레 뒤로는 초저녁별이 제자리를 잡고 빛나고 있다. 문득 초저녁 별빛이라고 시작되는 오래 전의 노래가 떠오른다. “초저녁 별빛은 초롱 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라서 더 슬프게 느껴졌던 노래다. 낮에 오다가 야산에서 캐낸 도라지도 꺼낸다. 강물에 씻어서 껍질을 벗긴다. 오늘 밤엔 잠이 잘 올 것 같지 않다. 도라지를 안주로 해서 어제 산모퉁이 가게에서 어렵게 구한 모주 한 잔이라도 해야 잠을 이룰 것 같다.

   오늘 밤도 단잠을 청하다가 문득 “나는 걷는다”의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을 향해 하염없이 걸었던 기록을 떠올려본다. 나는 이 장엄하고도 극단적인 선택을 평생토록 기억하고 있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음으로써 살아 있는 것이다.~무엇이 나를 자꾸 앞으로 떠미는 걸까? 도대체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기에 잠에서 깨자 말자 나를 길로 내던지는 걸까? 내게 진정 어려운 일은 걷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이다.~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서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다.~”(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1”에서)  2022.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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