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로(行路)

소년의 방황 5

청솔고개 2022. 3. 8. 22:29

 

                                                                                            청솔고개

   

   그 소년이 이제 칠순을 넘기는 나이에 이르렀다.

   중 3시절부터는 농번기를 맞이하면 학교에서 가정실습일 등을 정해서 농촌 일손 돕기를 하도록 했다. 그때 보리나 벼를 베려고 소년이 낫을 들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절부절못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낫이나 칼 같은 그 뾰쪽한 것으로 자기도 모르게 돌발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위해(危害)할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못 믿는다는 거다. “내가 매독에 감염되었다. 매독의 치명적인 균이 내 뇌를 침범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친다. 히틀러처럼. 그래서 더 광포해진다. 정신적인 착란(錯亂) 상태가 되고 그 다음은 나도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 나도 나를 믿을 수 없다. 이러니 차라리 내 두 손이 잘린다면 그런 불안감에서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아주 부자유스러운 상태(수갑 채워진다든지 구금 상태 같은 것의 지속)가 되면 오히려 좋을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왜 이런 팔자와 운명을 타고 났는가?” 소년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끊임없는 저주를 일삼았다.

   그 외에도 방안이나 가까운 곳에 뾰쪽한 물건(주로 칼, 특히 식도나 과도, 낫, 가위 등)이 눈에 띄면 그 순간 급격히 마음이 불안해지고 소년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그런 예리한 물건들을 남이 보기 전에, 혹은 공개적으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위험하다 하면서 안 보이는 곳으로 숨기거나 치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나의 행위는 참으로 부자연스러웠고 불안했었다. 그걸 가지고 자신도 모르게 남을 해코지할 수도 있다는 강박감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대학을 다니면서 버스를 타고 고향을 오갈 때마다 내가 갑자기 저 버스 운전기사의 핸들을 탈취해서 마구 흔들어 버릴 것만 끔찍한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 몹시 불안해했다. 대학 시절 교련 시간이나 군대 시절 훈련 시간에 총검술 훈련할 때 총검이 꽂힌 총을 보면 또 이런 불안감이 엄습하곤 했었다. 특히 청소년 시절에는 늘 정신착란증세로 위해를 가해서 몇이 죽고 부상당하고 하는 뉴스보도를 접할 때마다 자칫하면 소년이 저 뉴스의 장본인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많이 힘들었었다. 단적인 예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노파를 도끼로 살해한 대학생 이야기가 두려워 한동안 그 소설을 읽고 싶어도 불안심리가 가중될까봐 읽지도 못했었다.

   지금도 불쾌, 불안, 공포감을 유발하는 일련의 심적 상황이 심리적으로 내게 한번 엄습하기만 하면 짧게는 며칠, 몇 달, 몇 년이고 자꾸 마음에 끊임없이 떠올라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로 인한 불면, 불안 신경증 유발로 한두 차례(1982년 등) 신경 안정제를 약국에서 구입하여 복용하기도 하였고 직무상우울증 진단을 받고 장기간(2007-2009) 정신건강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2022.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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