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그건 마치 인과관계가 치밀하게 마련되어 있는 한편의 소설 구성처럼 진행되어 갔다. 순간순간 나날이 소년은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죽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마음이 지옥이니 어떡할 건가? 이제 갓 열다섯, 이냥 꼴깍하고 이승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소년은 스스로의 처지를 원망하고 절망하고 탄식하였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소년은 자기에게 당면한 문제를 정말 이상한 방향으로 분석하고 재단하였다. 스스로가 글을 알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여겼다. ‘글만 몰랐다면, 읽을 줄만 몰랐다면 결과적으로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다. 원시인들이나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무지막지하게 그냥 마음 편하게 나날을 보낼 수 있었을 거다. 침팬지나 우랑우탄처럼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을 거다.’라고. 소년은 그래서 짐승처럼 본능에만 충실하고 마음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게 소원이었다. 그러니 소년으로서는 글자를 배운 게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다. 배운 글자로 겁나고 무섭고 기분 나쁘고 불안한 게 적혀 있는 책을 읽은 게 화근(禍根)이었다. 이른바 식자우환(識字憂患). 하루에도 열두 번 자신이 글을 읽게 된 것을 저주해 보았다. 이른바 심한 문화병(文化病) 혹은 문명병(文明病)을 앓는다고 스스로 진단하였다. 이건 그 당시 노이로제를 번역한 용어였다. 어설픈 정보나 엉뚱한 지식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왜 그럴까?
이렇게 극도로 시달리던 소년의 마음은 그야말로 겨울가뭄에 바스락거리면서 잘게 부서질 것만 같은 작은 감나무 잎처럼 되어 간다.
방학 땐 항상 소년은 할아버지와 같은 사랑방에 묵는다. 그래서 무척 조심스러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잠자리가 불편하여도 감히 불평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불편한 환경이 또한 소년의 강박 불안증이라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소년은 잠도 오지 않았다. 밤새 잠자려고 엎치락뒤치락 전전반측하면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고 가슴은 두근거리며 숨은 가빠올 수밖에. 그러다가 새벽녘에 잠시 한 두 시간 어쩌다 잠이 들면 곧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 당시 어린 아이의 늦잠이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엄한 대가족제도, 엄정한 가부장 서열이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할아버지 댁 분위기였다.
할아버지는 맨 먼저 일어나 사랑채에 달려 있는 마구간 소죽솥에 불을 지핀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기침해서 소죽을 쑤는데 다른 식구들이 늦게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소년은 나이 예순 중반이 다되어가는 지금에도 가끔 꿈에서 할아버지가 홀로 일어나서 사랑채 소죽솥에 불을 때는 모습을 뵙는다. 그때마다 소년은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것이다. 지금 연세가 여든 중반이 넘으셨는데 왜 아직 소죽을 쑤시는가 하고. 비록 꿈이지만.
가족들이나 주변에서는 이러한 소년을 보고 모두들 너무 몸이 편해서 잠을 자지 못한다고 했다. 소년은 일부러 몸을 피곤하게 하기 위해서 지개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가기도 했다. 지게에 얹은 바소쿠리에 까디, 그루터기, 깔비 등 마른 나무 쪼가리를 모두 모아서 담았다. 능갓에 갔는데 깔비는 바소쿠리에 차곡차곡 채워 담기가 너무 힘들었다. 힘들 땐 마른 풀잎에 누워서 새파란 겨울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암청색 겨울하늘은 투명하고 예리했다. 그 사이로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칼바람이 몰아친다. 2022.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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