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다음부터는 이에 대한 그 자세한 전말이다.
고2년이 되자 그 비의 집단에서 소년에게 학생회 간부직을 맡겼다. 이른바 전도부장 역, 소년은 자기 또래나 혹은 한두 해 어린 학생을 대상으로 24단계를 진행하면서 전교(傳敎) 과정을 수행하는 역할이었다. 지난 중3 때 소년이 입교할 때 겪었던 그 과정을 이제 그대로 입교 대상자한테 적용하는 일이었다. 학생회 선교(宣敎), 전교, 포섭, 회유라 해도 될 듯한 역할의 총책인 셈이다. 입담과 설득력, 성경 구절 등을 잘 섞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학생이라도 더 끌어들이되, 강력한 정신력을 처음부터 주입해서 쉽게 포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주 임무였다. 포섭 대상으로 하여금 충분히 그 비의 교단의 진리 혹은 교리를 잘 이해하고 충분히 수긍하도록 하여 충성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 역할이 소년에게 제법 잘 맞았다. 이 일로 소년은 여기서 모처럼 스스로의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었다. 주위에서 이른바 솟아난다는 열성신도라는 평을 들었다. 인정을 받고 역할과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소년은 묘한 성취감에 빠져 들어갔다. 소년은 드디어 그 비의 집단에서 최고로 치는 연단 수행에 들어갔다. 교복을 입고 인근 도시를 배회하면서 고학생 신분으로 가장하여 다방, 주점, 가게 등에서 껌이나 볼펜을 파는 게 주된 일이었다. 속된 말로 일종의 앵벌이 역할이라 할까? 인근의 원근 여러 도시까지 진출했다. 그런 가운데 가끔 모교의 선배를 만나서는 후배 소년의 처지가 정말 딱해보였던지 껌 한 통을 다 사주는 행운도 따랐다. 그게 아니면 껌 한 갑에 한 통 값을 다 쳐주는 인정파, 의리파도 있었다. 소년의 어처구니없는 연기는 정말 그럴듯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 또 소년이 풍기고 있는 좀 없어 보이는 용모 역시 일조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소년도 이 일에 정말 익숙지 않았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이 일로 많은 주목을 받아왔던 이른바 ‘솟아나는 성민(聖民)’과 동행하면서 판매 경험을 전수받았었는데 나중엔 소년 혼자서도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이는 그야말로 정신력 즉, 신심(信心)과 비례한다고 하는 그들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았다.
이 일을 위하여 소년은 그해 고2 시절 여름 방학 보충 수업도 받지 않았다. 물론 집에서 받은 보충 수업비는 교단 활동비에 보태고 집에서는 학교에 보충 수업하러 가는 행세를 했다. 마음 약하고 거짓말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소년으로서는 대단한 용기고 일탈이었다. 혹시 집에서 무슨 일이 있어 학교로 전화라도 하면 어떡하나 할 정도로 내내 마음을 졸였다. 부모를 감쪽같이 속이고 그렇게 충성할 수 있었던 그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소년도 알 수 없었다. 2022.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