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그 방식은 대략 다음과 같다.
교복을 입은 체로 고학생행세를 하면서 버스로 이동할 땐 버스차장한테 검 하나를 주면서 전후 사유를 이야기해서 무임승차를 일단 허락받는다. 기차는 입장권만 끊어서 일단 타고 난 다음 차장의 검표가 앞 칸부터 있으면 맨 뒤 칸으로 이동했다가 다음 역에 정차하면 내려서 슬쩍 앞 칸으로 다시 올라타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역사를 빠져 나올 땐 상황에 따라 구내에 진입할 때 대체로 서행을 하는데 그 때 그냥 구내까지 들어가지 않고 뛰어내리는 위험천만한 짓으로 처리하거나 아니면 이른바 마르모시(수화물 출입구)로 슬쩍 짐이나 사람 찾는 척하다가 빠져나오는 거다. 소년은 처음엔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가슴이 뛰면서 불안 초조했었는데 나중엔 묘한 보람이나 쾌감, 즐거움 같은 것도 느낄 만한 여유가 있었다. 또래 혹은 후배 여학생들과 동행할 때는 이상한 동류의식, 공유 의식을 강하게 체험한 적도 있었다.
한번은 한 해 후배 여학생 하나와 인근 도시에 가서 판매 행세를 하면서 밤늦도록 좋은 판매 실적 이른바, ‘연단(練鍛)’ 목표를 달성한 후 역에 다시 만났다. 둘은 나란히 몰래 기차를 타고 귀가하면서 묘한 감정에 빠지는 것 같았다. 둘은 비의 집단의 성가(聖歌)를 함께 부르면서 신앙심으로 충일한 행복한 감정을 공유하였다. 밤은 깊어가고 겨울날은 점차 차가워지는데 더불어 부르는 성가 소리는 나직이 울리고. 그래서 그들의 동행은 정말 묘한 느낌을 자아내었다. 거기다가 사춘기를 막 벗어난 청춘남녀로서의 그윽한 남녀 간의 감정 같은 것도 보태졌다. 아마 소년이 느낀 최초의 연애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년이 껌팔이 나갔던 도시에서 고향 마을 삼촌 친구 되는 어른을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피할 수가 없었다. 고향 마을 어느 댁 장손이 거기에서 껌팔이 하더라는 소문이 소년의 집안에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아버지한테 그 자초지종을 추궁 받았고 그의 비의 집단 활동이 일대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대부분의 비의 교단 포섭 대상 학생들은 학교생활이 대단히 모범적인 성향을 1차 후보자로 선정한다. 공부 잘 하고 말 잘 듣고, 대단히 모범적인 평가를 받는 학생이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고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것 같은 결과를 보일 때쯤 그 집 아이가 그런 데를 나간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알게 된다. 부모는 그래서 자식에게 협박, 회유, 설득하지만 그 아이가 돌아설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러면 이 문제는 학교로 비화된다. 결국 누가 어떤 과정으로 포섭, 설득, 전교했는가 하는 것이 다 드러난다. 그 이름 중에 전도부장 역을 맡은 소년의 이름이 빠질 리가 없다. 그래서 소년은 몇 차례 고등학교 학생과 주임교사한테 호출 당했다. 한 번은 학생 주임교사로부터 뺨까지 맞은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해서 어른한테 뺨을 맞아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억울하고 황당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그 순간을 소년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럴수록 소년의 그 비의 교단에 대한 충성도는 강해지고 있었다. 그건 참으로 묘한 작용이었다. 연단과 핍박이 셀수록 믿음과 충성도는 더 강해진다. 이른바 솟아나는 백성 축에 속한다. 소년이 이제 그 부류에 진입한 것이다. 이제 소년의 모든 인생관, 가치관, 종교관, 사생관은 이를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소년이 생각해도 정말 알 수 없는 변화였다.
그 하이라이트는 다음 사건이라 할 수 있다. 2학년 겨울 방학 때 일이다. 집에다가는 서울 근처 대학 견학 간다 하고 거짓말로 때우고 학교는 그냥 무단결석을 3일을 감행 할 정도였다. 서울 중앙 본부에 열리는 교단 집회에 꼭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 열차 입장권만 끊어서 서울까지 경부선 완행을 무임승차 왕복을 감행했었는데 그 조마조마하고 긴장된 기분은 평생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런 게 그 비밀 교단의 수행 방식이었던 것이다. 티베트나 인도, 동남아시아에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종의 탁발(托鉢)의식과도 같다고나 할까. 202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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