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20/ 고구마 잎줄기 따기, 홍고추 선별 포장 작업 및 청과물시장 출하 계속, 참깨 수확(2012. 8. 20.~2012. 8. 26.)

청솔고개 2022. 4. 4. 01:01

                                                                                              청솔고개

2012. 8. 21. 화. 흐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엊저녁 아내의 부탁대로 농막 밭에 고구마 잎줄기 따러 갔다. 아내의 이런 ‘앙굼스러움’은 대단하다. 이런 표현은 고향 토박이말로 이렇게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옆 동산의 풍광이 운해처럼 멋있고 곧 동산 북쪽 부분의 일출이 여명처럼 은은하다. 새벽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새삼스럽게 느꼈다. 농막에 도착하니 동생은 아직 자고 있다. 잠을 깨울세라 소리죽여 장화 신고 이슬 털어가면서 아내와 같이 고구마 잎줄기를 따면서 미처 하지 못한 줄기도 걷어 주었다. 모기가 온 얼굴을 찌른다. 따갑고 간지럽다. 그래도 좋다. 장화를 신었지만 아랫도리가 이슬에 푹 젖는다.

 

2012. 8. 22. 수. 비

   오늘 비가 많이 온다. 참깨를 수확해야 하는데 모든 준비나 인력이 참 문제다. ㅈㅂ아재나 ㅎㅅ친구에게 협조를 부탁해 놓았는데. 잘 될는지 마음이 무겁다.

 

2012. 8. 23. 목. 비

   하루 종일 폭우가 퍼붓는다. 이번 주말에 참깨 거두는 일이 걱정이 된다. 몇몇 동료이자 친구들의 인사이동이 발표됐다. 이에는 나는 별무관심이다. 비가 오고 있으면 어쩔 수 없다는 에 걱정을 접을 수 있는데 비 그치는 주말은 어떡해야지 하는 생각이 내 가슴을 짓누른다.

 

2012. 8. 24. 금. 비

   요즘은 내 마음이 참 잘 다스려지는 편이다. 농막일 때문인 것 같다. 흙과 풀, 바람과 비, 햇살과 구름을 상대로 하는 일로는 몸의 힘듦은 이어지지만 마음의 힘듦은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서 예로부터 흙과 고향을 기리는 많은 노래와 글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비가 계속 오니, 고추와 참깨가 걱정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동생한테서 계속 전화가 오긴 오는데 받으면 통화가 되지 않는다. 뭔가 마음에 켕기는 게 있는지, 걱정이다. 참깨 밭 관리 때문에 고향 마을 ㅎㅅ친구한테 놉을 부탁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2012. 8. 25. 토. 갬

   며칠 계속되던 비가 오늘 아침이 되니 갠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이 붐하니 끼어있다. 안개면 정말 오늘도 너무 더울 것 같아서 벌써부터 힘들어진다. 아침 일찍 농막에 나가야 하는데, 피곤해서 잠시 잠들어버렸더니 시간이 제법 지나가버렸다. 볕에서 일하려면 더 힘들어질 텐데 하는 걱정이 든다. 예상대로 동생의 기분이 매우 다운되어 있었다. 나 보고도 불쾌한 표정으로 뭐라고 이야기한다. 여기 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점을 다시 시인하면서 마음을 쓰다듬어 줬더니 표정이 좋아진다. 마음의 안정을 취하려고 한다.

   아내는 그 동안의 수면 부족, 피부염, 팔목, 허리 등, 성한 곳이 없는데도 일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대단하다. 정말 고맙다. 이번 일로 아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겠다. 아내가 동생을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 역시 고맙다. 홍고추 40여 상자를 포장했다. 친구 부인 생일 축하 식사 자리에 가서 홍고추 한 봉지씩 전했다. 모두들 고마워한다. 그래도 우리가 고추 농사 짓는다고 했는데 친구들에게 맛이라도 보이는 것이 도리라는 아내 생각이 앞서 가는 생각이다.

   농막에서 보는 밤 들녘은 농막 옆길을 질주하는 차들만 홀로 바쁘고 세상 만물이 한가하고 적막하다. 반달을 참 오랜만에 본다. 별들도 유난히 초롱초롱하다. 풀벌레의 합창도 아름답다. 모처럼 자연과 정말 가까워진 것 같다. 식사 후 다시 나가서 밤 11시 가까이 선별과 포장을 하고 돌아왔다. 몸은 피로해도 마음은 한없이 가볍다. 아내도 그런 모양이다.

 

2012. 8. 26. 일. 갬.

   아침 7시 30분 쯤 농막에 도착했다. 그래도 좀 일을 늦게 시작하는 것 같다. 엷은 안개가 동산 아래 들녘을 휘감고 있어 오늘 날씨도 폭염이 예상된다. ㅈㅂ아재가 참깨 찐다고 놉을 주선해 주었다.

   고추 농사보다 참깨 일이 더 힘 드는 것 같다. 오전엔 아내도 고추를 땄다. 불볕아래 온 몸이 드러나 있다가 가끔 보너스처럼 가려주는 구름장은 하늘의 오아시스다. 간간히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더불어 이 구름장이 이렇게 고마운 줄은 올여름에 새삼 깨달았다.

   아내는 정말 일에 성의를 다한다. 홍고추를 1차 55박스, 이어서 31박스 포장했다. 총 86박스다. 정말 피와 땀이 어린 결과물이다. 동생의 심기가 많이 정상화되었다. 다행이다. 참깻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답답하다. 비닐하우스 안에 포장 펼치고 그냥 넣으면 되는지, 그렇게 하다가는 자칫하면 참깻단이 더운 습기에 뜰 수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홍고추는 23박스를 다시 만들어서 ㅇㅅ중앙청과물경매장에 내고 돌아오니 밥 11시였다. 오늘 모두 109 박스를 납품했다. 그 땀의 결실이 기대된다. 대단하다. 보람 있다. 아내는 온몸이 빠꼼한 데 없이 피부염과 팔목 통증 등, 고통이 자심하다. 걱정되면서도 고맙다.    2022.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