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19(3차 홍고추 수확 및 그 경비, 판매 내역, 2012. 8. 17.~2012. 8. 19.)

청솔고개 2022. 4. 3. 01:28

                                                                                                                    청솔고개

2012. 8. 17. 금. 맑음

   아내는 주말 농장의 격무를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힘 든다 하면서도 말이다. 누구 말대로 정말 ‘앙발궂은’ 성격이다.

 

2012. 8. 18. 토. 맑고 때때로 구름

   주말이다. 고추 따는 것만 생각이 난다. 아내도 힘 든다 하면서도 은근히 신나하는 눈치다. 그러면서 아내의 투정을 그대로 받아주면 되는 거다. 생색도 귀엽게 낸다. 아침에 큰집에 가서 동생을 태워 데리고 농막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우리가 이런 염천에도 일한다 싶어 걱정이다. 평생 농사일이라고는 모르는 우리가 안쓰러우신 거다. 제발 방낮에는 일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오늘은 3차 홍고추 따기다. 지난 2차에 워낙 많이 딴지라 얼마 달려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전을 작업해 보니 그 분량으로 보아 내일 오전까지도 빡빡할 것 같다. 점심 먹고 쉴 때, 집에 두고 온 휴대폰도 가져 올 겸 시내 들어갔다. 거래하던 종묘농약사에 가서 4차 고추 약을 구입했다. 사장은 홍고추 값이 떨어진다고 예상한다. 비오는 날은 으레 떨어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바로 햇볕에 말릴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했다. 폭염특보 내린 기상 상황이지만 그래도 간간히 구름이 태양을 가려주니 살만하다. 구름의 고마움을 오늘에야 실감하겠다. 산행할 때도 숲속의 그늘을 다닐 때가 많은데 여기서는 가려줄 그늘 한 뙈기 없다. 엉덩이 뒤에 달아놓은 방석에 앉아서 작업하면 힘은 적게 들지만 바람이 통하지 않아 더욱 답답함을 느낀다. 서서 작업하면 그래도 서늘한 기운이 불어온다.

   점심 땐 근처 마을의 순두부 돌솥 밥으로 배불리 먹었다. 심한 일 할 땐 어찌하든지 배불리 먹는 게 상수(上手)다. 우리의 행색이 천성(天性) 농사꾼으로 보이는가 보다. 식당 주인아줌마가 이 더위에 고생한다고 친근하게 대해주니 더 마음이 푸근해진다. 열풍이 부는 이 염천에도 우리 정말 고생 많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오늘 오전 수확량은 모두 35박스다, 오후 것은 상중하 선별, 포장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내일 해야 할 것 같다. 저녁 먹고 난 후 어떻게 잠들어버렸는지 그냥 골아 떨어졌다. 행복하고 뿌듯한 하루다.

   다음은 3차 홍고추 수확과 경비 상세 내역이다. 비료 대금 8,850원, 4차 고추 밭 농약 대금, 보릿짚 모자 3개, 포장용 테이프 3개 등 소계 21,000원, 박스 140개, 98,000원, 작업용 낫 일본 제품 17,000원씩 2개 소계 34,000원 등이다.

 

2012. 8. 19. 일. 맑음

   고추 3차 나머지 수확을 앞두고 비상사태다. 초읽기에 들어갔다. 새벽 5시에 피곤한 몸을 무릅쓰고 일어나 아내와 같이 준비해서 가니 6시 30분쯤 되었다. 새벽 구름을 보니 오늘은 어제보다 폭염이 더 할 것 같았다. 벌써부터 더운 바람이 이는 것 같다. 동생 그래도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있었다. 고맙고 기특하다. 대략 짐작컨대 세 이랑쯤 남았을 것 같다. 그래도 보통일이 아니다. 기승을 부리는 염천(炎天) 때문이다. 구름 좀 끼면 그래도 한결 나을 텐데 해가 나왔다하면 그냥 정신이 아뜩해진다. 땀이 물 흐르듯 흘러 눈가가 따갑고 짓무르는 것 같다. 어제 수확한 35박스도 있고 해서 일단 11시까지 작업을 하고 마무리했다.

   우선 선별, 포장 작업되는 대로 50박스를 차 트렁크에 실었다. 이후 43박스를 더 선별, 포장해서 오후 1시 지나서 두 차례에 걸쳐 근처 농협 위판 장에 실어서 하치해 놓았다. 이런 판매 시스템이 정말 잘 돼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농협 은행의 역할이 당연히 이런 걸 도와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우리 내외 모두가 큰 농사꾼이라도 된 듯하다. 아내와 동생도 비록 콩죽 같은 비지땀은 흘려도 마음은 참 편하고 즐겁다고 한다. 아내의 새로운 발견이다. 실로 놀라운 모습이다. 점심은 아내가 준비해간 오리 불고기를 프라이팬에 구워서 농막 안에서 맛있게 먹었다. 비료 주기, 풀베기, 옆 동 비닐하우스 치우기 등 할 일이 산적해 있지만 너무 더워서 오후에는 좀 피신하기로 했다. 오후 3시 30분쯤 이웃 마을 건너는 다리 밑에 차를 세워두고 강둑에 신문지를 깔고 좀 누워서 쉬었다. 다리 밑이라 그늘이고 강바람이 서늘해서 더 좋다.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개미가 극성이다. 오후 5시 다 되어 가는데 동생한테서 우리가 걱정된다면서 연락이 왔다. 동생의 처신이 참 대견스럽다. 강바람이 제법 세게 불어오지만 한낮의 불볕으로 달아 더워진 기운은 어쩔 수 없다. 오후 5시 지나서 근처 마트에 가서 가장 잘 든다고 하는 낫을 구입했다.

   농막에 돌아오니 해거름이 시작된다. 고추밭 북쪽 밭둑에 잡초가 너무 무성해서 아침에 ㅈㅂ아재가 동생보고 좀 베라고 하는 걸 내가 들었다. 내가 예초기(刈草機)를 사용하여 이것부터 말끔히 했다. 예초기가 이제 낡아서 기름통도 터지고 시동도 잘 안 걸리지만 당분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동생더러 낫으로 풀을 베라고 했더니 꼼꼼히 잘 한다. 예초기의 굉음이 들판을 흔든다. 그 동안 동생은 고추밭에 웃비료를 뿌렸다. 그것도 간단할 줄 알았는데 몇 시간 걸린다. 날이 어둑어둑해 질 무렵에 옆의 또 다른 비닐하우스를 내부를 정리해 보았다. 앞으로 여기에다 고추도 말리고, 참깨단도 보관해야 한다는 거다. 저녁 8시가 되니 날이 많이 어두워졌다. 오늘도 힘든 하루를 접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날은 어둡지만 마음은 더없이 밝고 보람차다.

   아내의 별난 취향, 수렵채취(狩獵)(採取)가 이어진다. 그 극성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어서 집에 와서 정비하고 샤워한 후 다시 근처 계곡을 찾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밤기운과 정적을 깨는 물소리가 별천지 같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자리를 깔고 바로 누워서 쉬었다. 물소리가 정말 시원하고 하늘의 별도 유난히 초롱초롱하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서 한밤의 강물소리를 듣는다. 나의 심신은 고요해진다. 침잠하고 릴랙스 한다. 아내는 랜턴을 비추면서 열심히 사고디를 잡는다. 이런 아내의 열성과 집념은 알아주어야 한다. 손에 잡히는 사고디가 전보다 줄어들었다고 아내가 볼멘소리를 한다. 새벽 1시까지 누워서 쉬는데 이슬이 담뿍 내린다. 이제 밤기운이 차갑다. 긴 옷을 꺼내 입었다. 별은 더욱 초롱초롱 반짝인다. 내일 출근과 할일의 부담도 다 잊어버렸다. 오늘 정말 꽉 찬 하루였다. 마음의 모든 게 잊어지고 평온해 진다. 정말 살만한 날이었다.    2022.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