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 가을날의 동행 3/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나의 똥 기저귀를 이렇게 처리해 주셨을 것이다. 이것만 생각하면 부모의 일과 관련된 어떤 일도 못 할 게 없다고 생각된다
청솔고개
2021. 9. 5. 병원에 온 지 3일째다. 아침식사는 어제 가져온 하나 남은 잡곡 죽밥으로 했다. 점심은 하나 남은 김치컵라면으로 해결했다. 그래도 어제 가져온 노트북이 있어서 틈틈이 생애깁기를 완성해 갔다. 이래야 나의 시간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생존의 의미가 살려질 것 같다. 오후 3시쯤 돼서 병원에서 살짝 나왔다. 집에 가서 밥을 준비해야 한다. 집에 와서 먼저 다육이들이 숨통을 트게 창문부터 열었다. 이어서 멥쌀 2에 잡곡 1로 해서 쌀을 안쳤다. 쌀 씻은 뜨물을 받아서 다육이, 관엽식물에게 줬다. 잎만 하나 묻혀 있는 놓은 곳에 실낱같은 뿌리가 생겨나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이걸 보기 위해서 이들을 키우는 것이다. 4시도 안 되었는데 저녁밥을 먹었다. 천천히 병원에 오니 별일은 없었다. 아버지는 잘 계신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데 “내가 한 시간도 더 지났다.” 그러니, 내가 “약속시간보다 좀 늦게 왔다.”는 말씀 같았다.
2021. 9. 6. 엊저녁에는 내가 푹 잔 셈이다. 아버지도 이제 이 병실에 제법 적응이 돼 가시는 것 같다. 오늘은 아침부터 아버지 위, 대장 내시경 한다고 서두르는 분위기다. 아버지의 관장은 세 차례 거의 2시간에 걸쳐서 했다. 짙은 쑥색의 뭉글뭉글한 변에서부터 묽은 변, 맹물 등 차례로 쏟아져 나온다. 처음엔 좀 주춤해졌지만 일단 손에 묻은 뒤에는 나도 거침이 없이 아버지의 배변을 도와드린다. 아내는 지난 다섯 달 가까이 요양병원 병상에 있는 어르신들을 이렇게 도와드렸을 걸 생각하니 나의 이 짧은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또한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나의 똥 기저귀를 이렇게 처리해 주셨을 것이다. 이것만 생각하면 부모의 일과 관련된 어떤 일도 못 할 게 없다고 생각된다.
낮 12시 30분 쯤 3층 검사실에 따라 갔다. 30분 쯤 지나니 담당 의사가 부른다. 검사 결과 소견을 말해 준다. 위의 점막이 벗겨져 핏줄이 제법 넓게 노출돼 있는데 여기에서 출혈이 추정된다고 한다. 현재는 출혈은 멈춘 상태라고 한다. 다행이다. 대장의 아랫부분에서도 핏줄이 노출돼 있어서 출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소장에서 출혈이 가장 의심되는데 아버지의 상태로서는 검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검사 후에도 두어 차례 변을 보아서 다시 패드, 속 기저귀, 겉 기저귀 등을 갈아드렸다. 겉 기저귀는 부족해서 병원 걸 2개나 빌렸다. 이제 좀 간병의 원리를 알겠다. 뭐든지 몸으로 체득해 봐야 아는 것이다. 오후에 담당주치의 ㅂ교수가 다시 와서 검사 결과를 간단히 설명하면서 내일 코 줄 처리 검사 후 퇴원이 결정될 것이라고 한다. 일단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오늘은 거의 내시경 검사 준비와 뒤 처리로 거의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그래도 어제 준비한 도시락 밥 세 개를 뚝딱 해 치우니 일단 내 배는 든든하다.
오후 7시 다돼서 자전거 타고 집에 갔다. 환기, 다육이 살피기, 그릇 다시 설거지와 정리, 빨래거리 정리, 샤워, 라테 커피 마시기 등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인생살이라는 건 요상하다. 다육이 살피는 즐거움도 이에 못지않다. 이렇게 절실한 순간을 맞닥뜨려 봐야 소소한 이 즐거움과 행복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확행”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리라. 다육이 옆에서의 시간은 늘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다육이 하나가 물러터지는 것 같다. 환기가 안 돼서 그런지 안타깝다. 아무래도 썩어질 것 같다. 창가에 옮겨 놔도 환기를 시켜야 하는데 집을 비우니 곤란하다.
마트에 가서 10개들이 대형 겉기저귀 1통, 10개들이 패드 한 통만 급히 사서 나왔다. 바로 병원 근처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병원까지 짐을 들고 가는 게 큰일이다. 열 보 정도 걸었는데 벌써 힘들어 진다. 이건 나의 천형 같은 것인가. 밤 10시 다 돼서 인적도 없이 어둑한데 혼자 짐 들고 올라가는 내 모습이 오늘은 좀 처연해 보였다. 주차관리 요원이 무료한 듯 나와서 체조를 하고 있다. 나는 지팡이에다 기저귀 보따리, 둘러맨 가방 음식 가방을 들고 있다.
병실에 들어서니 아버지는 등받이가 약간 들려진 채로 편안하게 누워계신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좀 있다가 아버지는 웅얼웅얼 뭐라고 또 하소연하신다. “앉혀다오, 눕혀다오, 답답하다, 퇴원하고 싶다, 티브이 켜 달라, 꺼 달라, 불 꺼 달라.” 등 극히 제한 된 말만 구사하신다. 내가 뭐 좀 다른 것 하고 있다가 아버지의 기척을 느껴서 보면 아버지는 어느 틈엔지 그 투박한 손을 내 밀어 내 도움을 청하신다. 아버지의 그 눈매를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은 미어질 것만 같고 울컥해 진다. 아버지의 지금 모습은 거의 36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모습 그대로다. 눈매, 코, 표정 모두가 그렇다.
당초 여기서의 동행을 하루 20만원 넘는 펜션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마지막 이별 여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하루도, 한 시간도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언제 다시 이렇게 오롯이 부자간만의 여행을 할 것인가. 우리 부자간의 마지막 동행 여행, 그것도 이별여행이 아닐까 싶다. 먼 훗날 내가 지금의 아버지 나이가 되면 많이 생각나고 그리워질 것이다. 처음 입원 결정을 할 때 밑에 깔려 있는 번거로움, 내 생활 없음, 계획대로 못함에 대한 아쉬움보다 이런 마음이 더 절실하니 마음은 더욱 평온해진다. “일주일 동안 우리 부자간의 마지막 이별 여행”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그 펜션 숙소는 네 번 옮긴 셈이다. 이렇게 둘만의 시간, 공간이 먼 훗날 참 그리워질 것이다. 오늘 저녁은 아버지가 일찍 평온히 잠이 드셔서 나도 노트북도 꺼내지 않고 그냥 잠을 청해 보았다. 202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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