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어머니의 노래 7

청솔고개 2022. 5. 22. 01:00

                                                                                                         청솔고개

   2014. 12. 8. 며칠 동안 내 생애 기록을 이제 마무리 했다. 막 새벽 5시다. 밖에서 신문 돌리는 기척이 난다. 새벽 2시에 잠을 깨서 서너 시간 작업했다. 그제와 어제는 기록이 두 쪽이 넘어 가기도 한다. 그러니 내 마음의 참 평화가 온다. 이제 신문 좀 훑어보고 한잠 자야지. 이 순간 신이 있다면 그 신에게 귀의하고 싶어진다. 더욱 간절해진다. 이 밤을 새우면서 이렇게라도 쓰고 간구하고 명상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 의의와 존재감은 멸실 될 것을 번연히 아는데 어찌하라고. 이제 그 기록이 모두 645쪽이다. 이 방대한 기록이 어떤 가치로 쓰일 것인지는 내 사후에 결정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보잘것없는 일개 이름 없는 글쟁이나 몽상가의 신변잡기로 치부될 것인가. 그래도 기록은 내 생명이다.

   저녁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의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병원에서 오후에 어머니를 1인실 병실로 옮겨야 한다면서 전화가 왔다는데 아버지가 저녁 면회 시간에 의논하자고 하면서 즉답을 피했다고 했다. 내가 잘하셨다고 말씀드렸다. 병실에 갔더니 아직도 어머니한테는 거의 스무 개 가까이 되는 주사약 봉지, 계기판 등이 연결되어 있었다. 병실을 옮긴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이걸 좋게 받아들여야 하나. 당장 여기서 옮기면 또 간병사 구하는 일 등 어려운 일들이 닥칠 수 있으니까. 어머니는 가끔 셋째 아들 ㅎ, 맏딸 ㅇ이 이름을 많이 부르신다. 당신의 자식들이 무의식중에서도 그리우신 모양이다. 내일 맏딸 ㅇ이 온다고 말씀드렸더니 “ㅇ이 온다고 내 어야라꼬?” 하신다.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드리고 집에 왔다.

 

   2014. 12. 9. 큰 여동생 ㅇ이가 10시 40분 역에 도착한다고 해서 마중하러 아내와 같이 서둘러 갔다. 그래도 어머니한테는 맏딸이라고 불원천리(不遠千里) 와 주어서 고맙다. 동기간의 정이란 게 이런 건가. 가자마자 아내가 내려서 마중 갔다. 병원 근처 학교캠퍼스에 주차하고 커피 한 잔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되어 11시 40분에 병실에 같이 들렀다. 역시 약봉지와 계기가 주렁주렁 여전히 달려있다. 어머니는 딸이 와도 별무 반응이다. 이게 가장 가슴 아픈 거다. 20분의 면회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여동생 ㅇ이는 면회시간이 끝났는데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제 엄마 손을 잡고 “또 올게요. ㅎ서방하고 ㄱㅁ이와 ㄱㅎ와도 같이요. 엄마!”하고 인사를 드린다. 나중에 나와서 ㅇ이가 전하는 이 인사말에 대한 엄마의 대꾸는 “언제 올라꼬?”이다. 그래서 “한 열흘 뒤에 올게요.”했단다. 그래도 좀 소통이 된다. 맏딸은 좀 좋아하는 눈치다. 자식은 늘 이렇다. 특히 애틋한 딸자식은 이런 자정(慈情)이 더하다.

   큰 여동생과 같이 근처 한정식당에 가서 식사를 같이 했다. 정말 오랜만에 큰 여동생과 같이 식사한다. 감회가 새롭다. 띠 동갑 남매가 마주 앉아서 이렇게 밥 먹어도 엄마 생각에 밥에 시원스레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는다. 오후 2시 쯤 아버지가 모임에서 오셨는가 싶어서 연락했더니 3시쯤은 도착하신다고 했다. 동생이 마트 앞에 내려 달래서 내려 주었다. 된장찌개라도 끓여드리고 싶다고 한다. 동생 내외는 아버지가 늦게 오시는 바람에 오후 3시 반에야 큰집에 들어올 수 있었단다. 내가 가니 막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좀 기다려 20분쯤 출발했다. 아버지가 딸한테 화분 하나를 선물한다. 큰 여동생 내외는 아버지한테 전화 드리겠다면서 못내 아버지가 걱정되는 듯 한 표정이다. 동생을 역까지 데려다 주는데 내 마음이 참 아프다. 잘 가라면서 동생의 손을 잡아 주었다.

   다시 병원이다. 어머니는 아직도 약봉지와 각종 계기는 그대로 달려 있다. 어머니는 정신없이 계속적으로 “호박, 꼬두박 따자.” 하고 ‘호박, 꼬두박’ 타령을 반복하신다.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의 기억과 회억이 뒤범벅이 되신 것 같다. 정신없으신 어머니시지만 이렇게 말에 힘이라도 실려 있으니 다소 위안은 된다. 낮에 맏딸 ㅇ이가 다녀간 사실을 물었더니 “왔다갔다면 어야라고?”하고 소리치신다.    202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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