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14. 12. 15. 오전 10시 다 되어서 병실에 도착했다. 내가 좀 늦었다.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요즘처럼 아내의 존재가 절실할 때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지금 내 상황에서 아내가 갑자기 부재한다면 하는 것은 상상조찰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내는 어머니 신음 통에 한 잠도 못 잤다고 했다. 내가 불 끄고 좀 조용히 잘 주무시더라고 했음에도 별무 효과인 모양이다. 아내를 12시쯤 데려다 주고 혼자 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머리를 좌우로 흔드시면서 뭐라고 소리친다. 대체로 아프다는 통증 호소가 대부분이다. 가끔은 “ㅇㅈ 엄마 고맙데이, ㅇㅈ 엄마 고맙데이” 하는 말씀을 하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서는 눈물이 밴다. 눈 가가 뜨겁다. 엊저녁에도 아내가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더라는 것을 내게 말해 준 게 기억난다. 나도 엄마의 귀에다 대고 “엄마 사랑합니다. 엄마 사랑합니다.”를 나직이 속삭여 본다. 이런 내 가슴은 벌써 뭔가로 북받쳐 오른다. 뜨겁고도 편안하고 진한 그 무엇이다.
오후 1시 좀 지나서 그렇게 조심하고 살폈음에도 그만 어머니 코 줄이 슬며시 흘러나오고 빠져버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물론 다시 끼우면 되지만 며칠 전 코 줄 끼우는 거 옆에서 보는데 얼마나 힘드는지 내가 그만 외면하고 눈감아 버렸던 게 생각나서였다. 방금 들어온 간호사한테 이야기 했더니 죽처럼 된 위관 식사가 묻은 코 줄을 그냥 옆에 두라고 한다. 1오후 2시 지나 코 줄 담당자가 와서 다시 끼우는 걸 시도를 했는데 거의 대여섯 번 만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얼굴이 벌개 지고 숨이 멎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마구 흔들어 대는 어머니 머리만 잡아주고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식으로서 볼 수 없는 처절하고 단말마적인 몸부림 같았다. 그래도 다시 부르지 않고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후 3시 좀 지나 고향의 절친한 친구 둘로부터 연락이 왔다. 진작 한 번 들러야 하는데 하면서 날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을 해준다. 정말 고맙다. 이런 전화 한 통이 정말 내게 큰 힘이 됨을 이제야 실감한다. 나도 이제 친구의 어려운 처지에는 애써 외면하지 말고 전화 한 통이라도 줄 수 있는 여유와 너그러움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오후 5시 좀 지나서 전화한 친구 중 하나가 왔다. 이러한 친구가 살아가면서 가장 절실한 존재인 걸 실감했다. 그 친구가 옆에 있으니 저녁 6시에 식사를 좀 편하게 드릴 수 있어서 좋다. 아버지께서 오셨다. 그 친구한테 아버지는 참 고마워하시는 표정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7시에 아버지와 교대하고 친구와 같이 병실을 나왔다.
2014. 12. 16. 아침 8시 50분에 바로 병원으로 출발했다.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김밥 하나 준비해 간다고 말씀드렸다. 김밥을 아주 맛있게 드신다. 아버지는 더욱 지친 표정이다. “니 엄마 아프다고 고함치는 통에 나도 한 잠도 못 잤다.” 내가 어제 불 끄고 좀 조용하면 어머니가 좋아질 수도 있다고 했는데 별 효과가 역시 없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어머니 신음 소리가 정말 가슴 아프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신다. 어머니를 그냥 묶어 놓고 고통만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냐 하는 걱정이신 거다. 그래서 오후에 의사 회진하거든 “보호자 측에서는 어제 회진 때 거론한 대로 통증의 정확한 진원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전신 검사 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오늘 회의 결과를 들어보고 의논해서 결정하면 좋을 것 같다.”라는 요지로 주치의한테 말해 보라고 하신다. 추측컨대 어머니의 통증 호소 원인은 어느 특정 부위 예컨대 잘못 수술된 허리, 아니면 다리, 팔 혹은 뇌경색 후유증으로 머리를 흔드는 증세와 관련한 두통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장기 병원 생활로 인한 섬망(譫妄), 혹은 치매 악화로 인한 단순한 허언(虛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또 이 문제로 의료진들이 회의한다니 그 결과를 들어본 후 말해 보라고 하신다.
오전 11시에 혈압을 재니 90/60이란다. 간호사가 저혈압이라서 침대 다리부분을 좀 높여준다. 기저귀를 확인해 보았더니 변이 제법 나와 있다. 이제는 자식으로서 내가 갓난애였을 때 울 엄마가 내게 해준 대로 나도 보은한다는 생각으로 임할 것이다. 반포지은(反哺知恩)이라했던가. 처리한다고 환자복 바지를 갈아입힐 수 없어서 조심스레 가위로 자르고 기저귀도 잘라서 벗겼다. 내가 생각해도 제법 괜찮은 생각 같았다. 물휴지로 조심스레 닦아드렸다. 그리고 작은 사이즈 여분 기저귀 양 옆을 자르고 그냥 테이프로 덮듯이 채워드렸다. 그 밑에는 패드를 깔아드렸다. 용변을 보더라도 좀 쾌적하고 처리가 쉬울 것 같았다. 통증에 힘들어하시는 어머니한테 혹시나 도움 될까 싶어 흥겨운 가요곡, 모차르트 교양곡도 들려드렸다.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좀 위안이 된다. 2022.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