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14. 12. 16. 오후에 다시 아버지한테서 전화 왔다. 전신 통증 검사 수용할 수 있다는 말을 했느냐고 물으셨다. 아직 의사가 오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확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한 번 생각해 보겠다고만 말해라고 하신다. 종일 내내 지켜보고 있으려니 정말 고통스러워하신다. 정말 저 고통이 확실한 고통이라면 비용이 얼마나 들더라도 그냥 정밀 검사해 보고 고통을 줄여 드려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오후 3시 되기 좀 전에 가래 끓는 소리를 하다가 기침 좀 하더니 그냥 다 토해버리신다. 시트가 다 젖어버렸다. 패드를 깔아주었다. “ㅇㅈ어마이 어딨노? 아이구 어매야, 아이구 어예가꼬? 나는 어예가꼬? 누고? ㅇㅈ어마이 ㅇㅈ어마이 누고? 아이고 답답해라, 아이고 아파래이!”처절히 큰 소리로 울부짖듯, 부르짖듯 소리치신다. 정말 일일이 신경 쓰면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 같다.
하루해가 또 저물어 간다. 오후 4시도 체 되지 않았는데 북쪽으로 창이 난 6305호실 창 너머에는 벌써 어둠사리가 내린다. 겨울날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옛집 사립문에서 “밥 먹어래이!” 하는 엄마 목소리가 정답게 들리었던 그 시절이다. 그 겨울이다. 우리는 수게또 타기, 다마치기하기로 손등은 터 갈라지고 피가 철철 나고 해도 놀이에 빠져든 그 시절, 아! 그립다. 다시 모든 걸 지우고 그 시절로 갈 수는 없을까? 내 머리의 모든 걸 지우고 순수순백의 상태로, 그 유아기의 천진함으로 다시 돌아가서.
아내는 진주 여행 잘 하고 있을까? 이럴 땐 정말 아내가 눈물 나게 보고 싶다. 친구들의 전화 한 통에도 목이 메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눈시울이 화끈거린다. 이게 예순셋에서 예순넷으로 넘어가는 내 인생의 실황인가! 부드러운 커피 한 잔이 내겐 큰 위안이다. 몸에 좋지 않고 더군다나 역류성식도염에도 안 좋다고 하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정말 절망 상황이 아닌가. 어머니는 계속 고개를 단말마적으로 흔들면서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신다.
오후 4 시 다되어 주치의 일단이 다녀갔다. 통증의 원인을 좀 알 수 없냐고 물었더니 시원스런 대답이 없다. 통증에 대산 정밀검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다 해 보았잖느냐 식이다. ㄴㄷㅇ교수의 말이다. 아무래도 이제는 결단을 촉구해야 할 것 같다. 더 큰 병원에 가서 통증을 잡아 보거나 아니면 자연스럽게 처리되도록 요양병원행이냐 하는 거다. 아버지한테 말씀드려야 하겠다. 어머니께서 잠시 새근새근 아기처럼 잠 드셨다. 내가 빨간 갓난애 때도 저랬을까? 아까 자장가를 잠시 불러드리는데 또 목이 멘다. 내가 참 어렸을 때도 이랬겠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쳐서 그렇다. 그러는 사이에 “ㅇㅈ 어마이 날 살려 주소. ㅇㅈ야!”또 소리치신다. 저녁 8시 30분까지 시외터미널로 나오라는 아내 연락이 있어 잠시 병실을 비워두고 급히 나갔다. 아내는 벌써 와 있다가 화장실 갔다 온다면서 나왔다. 내가 당신은 진주까지 다녀와서 피곤할 테니 내가 있겠다고 해도 기어코 오늘 저녁에 병실 지키겠다고 했다. 아내가 고맙다.
2014. 12. 17. 오전에 첫째 동생과 같이 병원에 갔다. 엊저녁은 아내가 병실을 지켰다. 아버지가 오시려면 아직 한 시간 남았다. 첫째 동생은 어머니 발이 처지니 발을 올려드리는 등 자식으로서의 정을 표출한다. 동생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오후 2시 되기 조금 전에 아버지께서 오셨다. 2시 위관식사를 해 드리고 동생 태워서 오니 오후 2시 반이 지났다. 오후 6시까지 나의 동갑계중 연말 모임에 가야하는데 그냥 한 끼 먹고 온다는 것 외 다른 의미와 감동은 별로 못 느낄 것 같다. 바깥 날씨가 매우 춥다. 혹한이다. 6시 좀 지나 고향 마을 이웃의 오리불고기 식당에 도착했다. 거의 다 와 있었다. 오리 로스구이를 포식했다. 맞은편 ㅊㅎㅇ 친구의 이야기가 내 가슴을 친다. 친구 아버지가 중풍으로 7년 와병했는데 자기 아내가 시아버지 목욕까지 시켜드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고 위한다고 했다. 부모 계실 때 잘 해 드릴 것, 암만 잘 해드려도 끝은 없는 법, 못해드린 것만 두고두고 후회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모임 마치고 저녁 10시 되기 좀 전에 병실에 도착했다. 아버지와 교대했다. 아버지의 귀가하시는 밤길 운전이 걱정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있어도 된다하시면서 고마워하신다. 자정 좀 지나서 어머니고 좀 조용하시고 해서 잠을 청했다.
2014. 12. 18. 새벽 5시에 잠을 깼다. 새격 2시 30분쯤 잠시 깼다가 다시 잤다. 간밤에 어머니는 비교적 평온하신 모습이다. 새벽 6시에 위관영양을 드렸다. 어제 오후부터 토하지 않으시니 다행이다. 며칠째, 안도현 작가의 ‘백석평전’을 읽고 있다. 험난한 한 시대를 살아갔던 백석 시인의 모습이 치밀한 시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대로 잘 읽혀진다.
오전에 어머니가 대변을 보아서 치우는데 힘들었다. 내 어릴 때, 갓난아이 적 울 엄마도 똥 싼 내 사타구니를 닦아주었겠지. 이제 울엄마는 이 예순셋 늙은 맏아들한테 맡기고 정신없이 계신다. 잘 치워드렸더니 기분 좋아지신 것 같다. 얌전히 계신다. 오늘은 대변 양이 많은 것 같다. 색깔도 좋고 설사기운도 거의 없다. 이리 그냥 회복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치의가 와서 다음 주쯤 요양병원 행을 고려해 봄직하다고 말한다. 아버지한테 말해보겠노라고 했다. 더 이상 회복은 안 될 것 같고 악화되지 않고 통증만 줄어든다면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본다. 오줌 줄을 갈아 끼우는 일이 이렇게 힘 드는지 몰랐다. 아침에 갈아 끼웠는데 오줌이 나오지 않고 어머니는 계속 요의를 호소한다. 한 30분쯤 지속되는 것 같다. 뭔가 잘못된 게 틀림이 없다. 간호사한테 이야기 했더니 알았다고만 한다. 너덧 시간 지난 후 다시 시작해서 겨우 소통이 되었다. 간호사가 혼자 혹은 둘 셋씩 와서 정말 고생했다. 내가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오줌 줄이 소통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다행이다.
오늘따라 어머니가 참 평온하신 모습을 한다. 참 다행이다. 지금은 새날 0시 40분 조금 지난다. 재작년 말과 작년 초 첫째동생과 어머니가 동시에 입원했을 때의 간병 기록을 읽어본다. 새삼스럽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2022.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