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그 여름의 여행길/중국 서안, 장가계, 상해 기행보고서 5

청솔고개 2020. 8. 17. 12:53

그 여름의 여행길/중국 서안, 장가계, 상해 기행보고서 5

                                                             청솔고개

   2004. 7. 31. 토. [셋째 날 후편]

   13:00-13:50까지 보봉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한식에다가 중국식이 곁들인 메뉴였다. 여행 안내서에서 미리 본 대로 요번 서안-장가계 코스에서 중국의 특색 있는 요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는 것은 정확한 안내로 판단된다. 단호박 요리, 단맛이 많이 나는 잉어찜 등이 특이한 것 같다. 끼 때를 기다려 수협에 근무하는 한 일행은 멸치와 고추장을 준비하여 공급하였다. 놀라운 성의가 고마울 따름이다.

   점심 후 무릉원 출입문을 통과하였다. 이틀 간 관광할 수 있는 카드를 구입하였다. 3만 원짜리 이 카드는 지문 인식 시스템으로 검색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가이드는 이 카드는 내일까지 사용해야 하니 잘 보관해야 한다는 당부를 여러 차례 했다. 이 시스템은 제법 앞서가는 관광 경영 시스템이라 할까. 그런데 지문을 찍지는 않지만 안내원에 의해 검색될 때, 재일동포 지문날인이나 미국 출입국시 지문 검색 등 인권적인 문제와 연상이 되어서 기분이 좀 이상야릇하였다. 오늘만 해도 6번 갈아타야 하니 이제부터는 개인행동을 삼가달라는 주문도 했다.

   14:10에 출입문을 지나 버스를 타고 산길을 오른다. 오른편으로 무릉원 관광지구 시가지 모습이 마치 옛 시골장 풍속화 같다. 그림처럼 펼쳐진다.

   천자산(天子山)에 케이블카로 올랐다. 오뉴월 염천에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니 더위는 천리 밖으로 쫓겨 가고 이윽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은 일언(一言)하여 ‘장엄(莊嚴)․현란(絢爛)’하다. 아니 기괴하고 공포감까지 든다 할까? 극과 극은 상통한다 했거늘 여기서는 미(美)의 극치는 또 다른 추(醜)의 한 자락일 테니까. 그래서 미추(美醜)의 관념이 사라진다.

   그러니 지상이 아닌 천상(天上), 4차원의 세계로 진입하는 거다. 케이블카가 상승할수록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내 정신의 밑바닥까지 뒤집어버릴 것 같은 현기증을 수반한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무릉원(武陵源)이 되었다면 이곳이 바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로다. 나도 이제 그 별천지(別天地)에 들어가서 옛사람의 그늘에서 속세를 잊어버리고 나이를 잊어버리고 신선(神仙)이라도 되려나.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하나 생기려나. 속세의 100년이 별천지의 하루라던가. 그래서 신선은 나이를 먹지 않는 건가. 그래서 이름 하여 천자산(天子山)이라 하였던가. 천자는 중국황제의 별칭이니 여기에 천자라는 이름 외에 다른 존칭이 무에 필요하겠는가. 봉우리의 모습은 지상에서 빚을 수 있는 모든 형상을 망라해 놓은 듯했다. 그래서 누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명명했던가. 어찌 보면 식물원에 즐비한 선인장군락을 보는 것도 같고, 어찌 보면 용의 이빨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심해 해조류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밭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 장가계(張家界)는 지구가 약 3억6천 만 년 전에는 바다였었는데 솟아오르는 바람에 이런 형상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촛대, 고사목, 타다 남은 숯 같은 갖가지 형상의 봉우리에 울창한 수림이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은 이 바위의 주성분이 석영이고 그 속에는 흙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가이드는 일러준다.

   일행 중 한 젊은이는 중국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나름대로 확보돼 있는바, 좀처럼 중국의 것에 대해서 감탄하는 가벼운 처사(處事)나 입놀림 같은 것은 아니하는데 이 순간 그 견딜 심이 이 순간 무너져 버린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노니는 것 같다’고 했다. 젊은 사람의 중국에 대한 반감, 자존심 같은 것을 일순 포기하게 하는 천하절경.

   14:50에 공중곡예사 같은 기분으로 케이블카로 천자산 제1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작년에 미리 와보았던 우리 친구 하나는 우리들이 감탄사를 연발하자 이건 초요기에 불과하다. 산수의 빼어난 절경을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그대로라고 신명나서 안내한다.

   원래는 반대편 엘리베이터로 올라서 이쪽 케이블카로 내려오게 되어 있는데 그건 같은 코스지만 이 천하절경을 감상하는 데는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우리들이 점심을 좀 늦게 먹고 시간을 조정하는 바람에 오히려 제대로 가고 있다고 했다.

   전망대에서 서쪽을 보니 어필봉(御筆峯)이 대협곡(GRAND CANYAN) 앞에 떡 버티고 있다. 사진에서 처음 보는 순간 어필봉의 배경은 미국의 그랜드 캐넌을 연상하였던 모습 그대로다. 미서부의 그랜드 캐넌은 그 협곡의 폭이 무척 넓은 편이었는데 어필봉 협곡은 그 사이에 붓끝을 위로 세워놓은 좁고 가느다란 봉우리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키 자랑을 하고 있는 점이 달라 보였다. 그래서 그 형상이 마치 황제가 사용하던 몇 개의 붓을 꽂아 놓은 듯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 뒤로 천대서해가 넓게 펼쳐 져있고, 뒤쪽으로 선녀헌화 바위가 있다. 그 아래 계곡이 넓고 옆으로 길게 뻗어있어 높은 바위허리에 흰 구름이 걸린 모습은 옛날 신선도에나 나오는 경치 같은, 그 모습을?천대서해‘라 부른다고 했다. 뒤쪽에 있는 곳에는 선녀가 꽃을 뿌리는 형상 같은 바위라 해서 ‘선녀헌화’(仙女獻花)라 명명하였다.

   이어서 하룡공원으로 향했다. 여기서는 멀리 보이던 어필봉이 더욱 그 웅자를 내보이고 있었다. 대협곡을 이루고 있는 마다 천만년의 신비와 정기가 서리는 듯했다. 좀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보았다.

   배경을 카메라에 담아두고 싶어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토가족 아가씨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옆으로 다가온다. 그런 데 옆에 서버리면 웅장한 어필봉 배경을 가려버릴 것 같아 만류했더니 막무가내로 모델이 되자고 선다. 급기야 좀 언짢은 표정으로 심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었는데 지나고 나니 내가 좀 심하게 했나하는 생각이 든다. 허기야 이 염천 땡볕에 갈 길은 바쁘고 땀은 비 오듯 오는데 이런 것까지에도 신경을 써야 하나 하는 짜증도 나기도 하고……. 그러나 내 짠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요청에 응하겠는데, 이 염천에 새빨간 긴 옷을 입고 모델이 되자고 자청한 것도 그들로서는 엄연한 업무이고 생존인데 마음의 여유라도 부려서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더라면 하는 마음이다. 문득 구이린 장족 아가씨의 애련한 모습이 겹쳐진다.

   이렇게 바쁘게 사진 찍고 승강이하다보니 곧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좀 떨어진 곳에 계단이 나있는 정자처럼 된 전망대가 있었는데 결국 거기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뒤에 생각하니 사진 촬영의 적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한 번 와봤다는 친구가 하룡공원에 왔으니 하룡선생의 석상이라도 보고가야지 하면서 급히 나를 인도한다. 작품 사진을 찍으려면 꼭 필요하대나. 하룡선생은 마오쩌뚱 등을 도와서 중국 혁명을 성사시킨 공로자라고 했다. 석상의 얼굴은 제대로 꾸몄으나 몸통은 좀 투박하게 새긴 것 같았다.

   다음은 바로 셔틀버스를 타고 숲속으로 달렸다. 원가계로 이동한다. 내려서 걷거니 하다가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진 만학천봉(萬壑千峰)의 기기묘묘(奇奇妙妙)한 신품(神品)을 보고 이어지는 탄성(歎聲)이 한숨소리처럼 이어진다.

   선계(仙界)같은 이곳에도 곳곳이 나무꾼인지 선녀인지 졸졸 흘러내리는 실개천 같은데서 빨래하는 초동(樵童) 급부(汲婦)가 보인다. 장가계는 멀리서 바라보는 원경이라면 원가계는 좀 더 가까이서 그 비경(秘境)의 속살을 헤집어 보는 것이라고나 할까? 산허리를 돌아서 '천하 제일교'를 맞이하였다. 원가계에서 아름답다는 천하제일교는 높이 200m의 커다란 두 개의 바위를 이어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넓이 2m, 길이 20m의 천연 석교이다. 두개의 바위가 커다란 석판으로 저절로 연결 된 것인데 마치 인공적으로 설치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다리 위를 거니다 보니 한없이 아득하다. 내가 밑도 끝도 모를 심연 위 한 송이 작은 꽃이나 티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절망감이 든다.

   이어서 ‘오녀출정(五女出征)’이라고 명명된 전망대에서 현판을 살리면서 아내와 같이 기념촬영을 하였다. ‘갈수록 태산’이라는 속담의 의미가 아주 역설적으로 새겨지는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이다. 이 봉과 저 봉을 이어주는 든든한 철교(鐵橋)도 건너고 가는 데마다 조망할 수 있도록 난간을 설치해 놓은 이름 모를 전망대마다 내게 있는 넋도 얼도 다 내어준다. 그야말로 혼미(昏迷)한 상태에서 미혼(迷魂)이라는 건곤주(乾坤柱)를 맞는다. 이름 그대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장대한 바위기둥이다. 이어서 이제 이별의 의식이라도 치르듯 천상의 선녀가 나부시 절하면서 나를 배웅하는 배선대(拜仙台)며, 모두모두 안녕이다. 만학천봉(萬壑千峰)모두에게 이별의 인사를 나눈다. 미혼대(迷魂臺)라 해서 나의 영혼을 혼미하게 미혹한다는 뜻을 지닌 마지막 전망대에서의 조망을 하고 나서니 17:15경이다. 정말 이별이다.

   셔틀버스 타기 위해서 30분 넘게 기다렸다. 그런데 중국인 관광객이 먼저 새치기해서 먼저 타버리는 게 아닌가. 그때까지 질서를 지키면서 묵묵히 나라의 위신을 견지했던 우리 팀들도 인내의 한계를 느꼈다. 동행한 다혈질의 한 친구가, 함께 섞여들어 슬며시 끼어들어 갔던 한국 관광 팀도 싸잡아 성토해댄다. 모두들 더위에 지친 터라 모처럼 시원한 대갈일성에 박수를 보낸다. 제발 이곳까지 나와서 나라 망신 그만 두자고 속으로 나도 충고해 보고 싶다. 17:45에 승차, 17:52에 하차했다. 18:15까지 걸어서 18:35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산 출발하였다가 18:50에 산 아래에 도착하였다. 마지막 부분은 바위 속을 뚫어서 설치했을 터라 그냥 직벽 암굴로 내리꽂히는 기분이다. 만약 전기라도 나가버린다면 그 다음엔? 공교롭게도 날이 흐리더니만 비가 내리고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일진광풍(一陣狂風)과 더불어 운무를 토해낸다. 엘리베이터로 내려오는데 사진에서나 봄직한 비구름이 피어오르면서 봉우리마다 귀기(鬼氣)같은 것이 감돌고 더욱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는 자연의 신묘한 조화를 연출한다. 나는 되든 말든 셔터를 마구 터뜨렸다. 이 천지 조화가 산위에서 이루어졌더라면 이번 장가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고 갈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탄식이 흘러나오지만 밑에서 연봉에 피어오르는 아름다움과 신비함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으렷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우리가 타고 내려온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불가사의이다. 두서너 개 바위가 연해져 있는 직벽에 설치해 놓은 엘리베이터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마침 벼락이 치고 있는데 중간쯤 내려오던 엘리베이터가 그만 멈추는 게 아닌가. 정전인가. 우리는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엘리베이터 작동을 지켜보았다.

다시 장가계 시내로 내려간다. 벌써 거리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비는 언제 왔느냐하는 듯 하늘은 말갛게 개 있었다. 저녁 식사도 역시 점심때와 같은 식당을 이용하였다. 식사 때문에 일행들이 불평이 슬슬 터져 나온다. 정말 이런 문제는 애매하지만 여행 분위기상 거론하고 싶지 않은 분야 아닌가?

   긍립(亘立)호텔에 묵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웃지 못 할 일이 생겼다. 살아가는 행운이랄까? 우리 내외가 들어간 객실은 특실 이른바 스위트룸 아닌가! 방이 세 칸으로 나누어져 거실, 침실, 욕실 등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다른 점은 거실의 작은 침대, 고급 탁자와 1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넉넉한 소파, TV 두 대, 금고비치, 더블베드, 샤워할 수 있는 유리통 욕실 등등.

   행운도 같이 할 겸 일행이 우리 방 거실에서 모여 한 잔 하면서 담소화락, 여독(旅毒)을 풀었다. 그리고 우리 내외의 행운을 같이 즐거워하였다. 그래서 지인(知人)들이 좋은 거다. 그래서 이 밤에는 정말 푹, 만단정회(萬端情懷)라도 풀어야 할 것 같은 예감.

                                                                  2020.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