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여행길/중국 서안, 장가계, 상해 기행보고서 4
청솔고개
2004. 7. 31. 토. [셋째 날 전편]
08:20에 출발. 최ㅇㅇ 가이드의 차분한 안내를 정리해 본다.
장가계에서 무릉구로 이동하는데 약 50분 걸리는데, 도중 교통 공안에게 적발되어서 승강이하다가 제법 지체가 되었다. 09:10, 이전에는 여기서 차에서 내려서 구경하였다던 백당계곡에서의 도로공사 등으로 1시간도 더 걸렸다. 백당계곡의 기암괴석, 골마다 흐르는 옥수(玉水) 등 범상치 않은 봉우리 등은 벌써 장가계 풍광의 맛보기로 보여준다. 쳐다본다고 목이 아프다. 09:15 경 무릉구를 지나간다. 오늘 저녁 묵을 숙소가 여기 있다고 했다. 무릉원을 벗어나는 길가에 백장협(百丈陜)이란 기암절벽은 영화 촬영 장소로 많이 쓰이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높이가 百丈 (백 사람 키)이라 할 정도이니 가히 짐작이 갈만하다. 한마디로 서안은 귀가 아픈 관광이라면 장가계는 다리가 아픈 관광이라는 별칭이 있단다.
장가계시는 원래 대용 시였는데 관광 목적상 이름을 고친 거란다. 여기에는 전체 주민의 60%를 점하는 전체 소수민족 중 인구수로 여섯 번째를 점하는 토가족 자치주이다. 이 소수민족의 말은 있는데 글자는 원래 밀가루 떡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배가 고파서 이 문자를 보관하고 있었던 조상들 중 한 사람이 먹어버려서 전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그대로 믿어야 할지. 이 토가족의 생활 풍습은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했다. 특히 매운 것을 좋아한다든지, 김치, 무로 된 반찬, 순대 등을 즐겨먹는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키가 작고 몸피가 가냘파서 장수를 한다. 야생 원숭이를 시켜서 야생차를 따오게 하는 등, 차를 즐겨 마시어서 중국의 장수촌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는 남자는 노래를 잘해야 하고 여자는 잘 울어야 인기가 있다고 한다. 결혼식장에서는 곡하듯이 잘 울어야 하고 장례식에서는 매시간 망인에게 시간을 고하는 뜻에서 폭죽을 터뜨리는데 4일간이나 이어진다고 했다. 마을 처녀총각들이 만나서 보내다가 처녀가 총각의 발을 밟으면 프러포즈하는 의미인데 이 때 만약 남자가 뜻이 없어서 거절한다면 남자는 처녀 집에 가서 3년간 노력봉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 잘 못 살아서 밥을 먹을 때는 비빔밥을 해서 밖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먹는데 이유인 즉 ‘우리는 굶지 않고 밥을 이렇게 먹고 있소’하고 과시하는 뜻이라고 했다. 대체로 2층집을 지어서 생활하는데 1층은 뱀 등의 짐승이 엄습할 수 있으므로 창고나 주방으로 쓰고 이층에서 대체로 침실 거실 등 생활공간을 정한다고 했다. 토가족 마을을 지나면서 가이드의 토속미가 물씬 풍기는 소수 족에 대한 소개를 하는데 창밖 계단식 논에는 한국처럼 벼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었다. 여기는 기후 상 2모작이 가능하다고 했다.
장가계라는 지명의 유래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한 고조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수성지업(垂成之業)에 고심하고 있던 차, 천하를 도모한 영웅은 그 부하들의 모반 위험이 상존하는 바, 한 고조도 그의 심복 부하 한신과 장량을 도모하고자 하였는데 의(義)를 중시하는 한신은 본인이 이미 이러한 죽음을 알고서도 주군의 뜻대로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였지만 장량은 유방을 떠나 이곳을 은거지로 삼아서 망명도생을 꾀하였는바 장 씨들의 그 일족을 이루었다는 데서 지명의 유래라고 하였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이러한 명승과 풍광이 이루어진 배경은 약 3억8천만 년 전 이곳은 바다였었는데 육지로 솟아올라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기묘한 형상을 빚어낸 것이라고 했다. 여기 봉우리는 모두 석영암이 주성분이고 속은 진흙으로 채워져 있어서 마치 촛대나 기둥 같은 바위로 된 봉우리 상상봉에도 소나무 등이 자랄 수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정말 오랜만에 방망이로 빨래하는 주민의 모습을 보니 40여 년 전 우리 마을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바로 그대로다.
보봉호 유람선, 무릉원 천자산 케이블카, 어필봉, 원가계, 황룡동굴, 십리화랑, 금편계곡, 토가족 민속 마을 관광 순으로 탐방 일정이 정해져 있다. 이밖에 높이 1,500m의 기암괴석 사이로 137m의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천문산은 지나가면서 멀리서 둘러보았다. 보봉호 유람선 타기 위해서 이 일대를 종합적으로 관광할 수 있는 전용 셔틀 버스로 보봉호 오르는 등산로 입구까지 갔다. 굴을 통과할 때는 맞은편 교행할 차를 위하여 일방통행용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입구에서 산길을 걸었다. 불편하던 발꿈치가 그런 대로 참아준다. 산길을 가기를 30분 정도, 산등을 넘으니 시원한 보봉호가 펼쳐진다.
그 동안 일행 중 89세 최연장자를 모시고 온 딸, 사위의 간청으로 그 노인 분은 가마를 타고 선착장까지 이동했다. 체구가 작은 노인분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가마에 태우고 가파른 언덕을 짜증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오르는 가마꾼들에게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그들이 대견하기 하였다. 물을 부은 듯이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2인용 가마(교자)를 메고 낑낑대는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보봉호 선상 유람하기 위해서는 선착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무척 혼란스럽다. 인파가 몰릴 때를 대비해서 질서를 잡아주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뙤약볕 아래에 온 몸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다. 보편적인 조급증의 발동인가? 중국인들의 톤 높은 목소리가 꼭 싸우는 듯하였지만 모두들 여행기분을 간직하려고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소리 등에 짜증은 나지만 모두들 마음 다스리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가까스로 출입구를 찾아서 배에 오른다. 5년 전에 갔던 베이징의 용겹협 호수와 비슷한 분위기다. 10:15에 보봉호 유람선을 타고 30분 정도 물과 봉으로 어우러진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본다. 서늘한 계곡바람이 호수위에 일렁이니 삼복의 계절을 잊을 것만 같다. 이른바 이를 풍류라고 하는 걸까. 풍류 그 자체다.
배를 타고 들어서는데 호수의 굽이굽이마다 토가족 소녀들이 배위에 정자처럼 지은 오두막집에서 우리를 환영한다. 이어서 애잔하여 긴 여운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특유한 그들 소수민족의 민요를 불러준다. ‘첨밀밀’ 같은 등려군이 부른 ‘아임 스틸 러빙 유’ 등 최근 중국 가요에 대해서 내가 다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 소녀가 부르는 중국 민요는 슬픈 메아리처럼 되어 심산유곡을 휘감아 돈다. 노래 제목은 몰라도 어릴 적에 배운 ‘워짱 꽈일러’나 조용필이 번안한 듯한 ‘이별의 인사’, ‘스잔나’라고 하는 70년대 영화 주제곡에서 느낀 분위기가 그대로 배어 있는 것 같다. 이 작은 몸매의 소녀들은 지겹기도 할 것 같은데 진홍색의 고유의상으로 치장하고 이방인들에게 이쁜 미소를 선사하고 있다. 우리도 아낌없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풍광, 악곡이 있고 명창이 있으면, 한 잔의 술이 필요한데 미처 준비가 안 되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모두들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한 흥이 도도하다.
10:30에 토가족 민속공연을 하는 야외 간이무대가 있는 곳에 내렸다. 반환점이다. 무대는 온통 토가족의 생활상을 형상화한 민속화와 홍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머리에 화관을 치장한 토가족 안내자가 환영의 인사를 하는 듯하였다. 이어서 붉은 옷을 입은 처녀 다섯과 녹색 옷을 입은 둘이 그들의 고유한 춤과 노래를 선사하였다. 꽃춤이라고 했다. 총각들 몇도 등장했다. 모두들 가냘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체구가 아담하였다. 이국 처녀들의 춤사위, 그녀들의 가늘고 자그마한 몸매, 종아리, 허리, 애잔하기도 하고 흥겹기도 한 가락 등이 내게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을 저미게 한다. 문득 구이린에서의 장족아가씨에가 받은 인상이 떠오른다. 나는 연방 카메라의 셔터를 터뜨렸다. 그들의 표정, 그들의 감정까지 잡고 싶어서 클로즈업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11:30에 코스를 반환했다. 돌아오는 뱃길에는 가이드의 진행으로 여흥을 즐겼다. 몇몇이 도도한 취흥을 주체하지 못해서 한국의 흥겨운 가요를 열창했다.
12:00, 절벽에 교묘하고 장대하게 만들어진 나선형 계단을 통해서 내려왔다. 그 착상이 나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중국 산수화에서 봄직한 멋진 폭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백의 시구절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날아올랐다가 바로 떨어진 물줄기가 삼천 척’, ‘望廬山瀑布, 망여산폭포’에서]이 떠오른다. 협곡을 막아서 감쪽같이 자연 호처럼 만든 기술이나 보봉호의 물을 통하게 해서 폭포를 만든 아이디어 역시 기상천외하다고나 할까? 모두들 단체 및 개인 기념촬영을 했다.
이어서 12:10-13:00 동안 서비스로 발마사지를 받았다. 웅담, 진통소염제 등 상품 홍보를 겸한 공짜라서 그런지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발뒤꿈치 통증으로 고생하는 내게는 언감생심, 안성맞춤이다. 모든 게 국영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상품 세일즈 기술은 집요하고 철저한 것 같다. 2020.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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