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여행길/중국 서안, 장가계, 상해 기행보고서 1
청솔고개
2004. 7. 29. 목. [첫째 날]
5시 기상. 여행 준비로 방마다 어수선하다. 떠나기 전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복잡하다.
특히 둘째의 컴퓨터 데이터 멸실 건이 걱정이다. 뭐를 두고 떠나서 마음이 이리도 어지러운지.
7시까지 둘째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아침 식사 후 10:40까지 정형외과에 가서 이른바 족근염(足筋炎) 치료를 받았다. 물리치료까지 겸했다.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긴밀한 몇몇에게 전화로 가볍게 여행 사실을 전했다. 이런 출국 신고라 할까, 마치고 나니 다소간 마음의 빚을 탕감한 것 같다. 그냥 면피용 심리적 작용이다. 아내가 아버지께도 출국 신고를 했다니 아내의 현명지사로다. 이번에 우리가 가는 곳은 중국 후베이 성, 강남보다도 더 먼 곳, 천리만리 떨어진 곳이니 이렇게 단단히 신고라도 하고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2층 옥상에 올라가서 엊그제 따다놓은 이름도 모르는 물풀에서 앙증맞은 하얀 꽃봉오리가 솟아난다. ‘생명은 바로 기적’이라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14:35, 집결 약속한 근처 공원 시계탑에서 출발. 이제 이번 여행 중 화두(話頭)를 하나 정해야지 하는 생각이 앞선다. 여흥을 북돋우기 위하여 더불어 소주 몇 잔하고 담소화락 하였더니만 볼일이 급해져서 공항까지 가는데 애를 먹었다. 2시간은 족히 눌러 참았던 끔직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중간마다 몇 팀씩 태워서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20:40. 첫째에게 국내에서 마지막 통화하였다. 탑승 절차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중국민항 동방항공이다. 이름 난 대로 절차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21:30부터 기다려서 22:00에 서안[西安, 씨안, XIAN]행 MU2084에 탑승. 22:17에 이륙. 00:45, 서안 함양 국제공항 도착. 지금부터는 한 시간 빠른 중국현지 시간이다. 00:40(한국시간 01:40), 입국 수속 완료. 옌볜[延邊, 연변]이 고향이고 인동 장씨 2.5세라는 장ㅇㅇ 가이드가 마중을 나왔다. 올해 서른 좀 넘은 나이고 외가는 우리나라 영남 지역이라고 소개한다. 바깥기온은 섭씨 20도로 예상보다는 훨씬 쾌적한 날씨다.
가이드의 다소 어눌한 재빠른 설명이 이어진다. 중국의 인구가 12억에서 15억으로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소수민족에게만 두 자녀 허용, 한족에게는 한 자녀밖에 둘 수 없으며, 만약에 두 자녀를 두고 출생신고를 하면 500만 원 정도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것이다.
한참 가니 六利堡[육리보]라고 기록돼 있는 톨 게이트가 보이고 드디어 서안 시로 접어 들었다. 서안 시는 산시성[陝西省, 섬서성] 중국 정부의 서북 대개발 출발점이며 그래서 중국의 중심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양자강[양쯔 강, 長江, 장창] 즉 을 중심으로 강남 ․ 강북으로 나뉘며 이 지역은 황토가 많아서 황토고원이라고도 한다. 거리에는 무더위를 피해서 장정들이 웃통을 벗어 붙인 채 땀으로 번들거리는 모습을 하고 두런두런 거리면서 삼삼오오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실크로드의 자욱한 황토 먼지 내음이 차창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듯하다. 어둠 속에서도 메말라 축 늘어진 수양버들 행렬은 실크로드의 관문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숙박할 당성빈관[唐城賓館, TANGCHENGBINGUAN]은 공항에서 50㎞ 정도 떨어진 곳. 도착하니 01:30. 방 배정에 걸린 시간 30분, 06:30 기상, 07:00 식사, 07:30 출발 등 내일 일정을 안내해 준다. 1106호에 도착하니 거의 새벽 두시(한국 시간 3시), 그래도 시차가 이만하니 다행이다. 차 한 잔 달여 마시고 02:40에 잠자리에 든다. 그러면서 또 괘종시계가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이번 여정에 또 안 가져왔다고 자탄(自歎)해 본다. 중국의 첫 밤, 서역 새벽에 이백(李白)의 당시(唐詩) <자야오가(子夜吳歌)>가을 편을 떠올리며 나직이 되뇌어본다.
長安一片月(장안일편월) 장안의 한 조각 달
萬戶擣衣聲(만호도의성) 집집마다 다듬이질 소리
秋風吹不盡(추풍취부진) 가을바람 불어 멎지 않으니
總是玉關情(총시옥관정) 이 바람은 모두 옥문관의 임 향하는 마음이네
何日平胡虜(하일평호로) 언제 오랑캐를 평정하여
良人罷遠征(양인파원정) 임은 먼 싸움터에서 돌아오려나
중국 동진의 '자야(子夜)'라는 여인의 노래가 오히려 강남의 오나라 이웃에서 더 많이 불렀으므로 ‘오가(吳歌)’라 하였으며 여기서 장안(長安)은 바로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이 산시 성[陜西省] 서안시(西安市)를 가리킨다. 옥관(玉關)은 서역으로 왕래하던 길목인 중국 서북 변방의 관문으로 이 시의 배경과 정취를 이 시안[西安]의 한밤에 비록 추풍지절(秋風之節)이 아닌 여름의 한 복판이지만 느껴보고 싶다. 시안을 둘러보면서 옛 당대(唐代) 장안(長安)의 정취와 흔적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이 여행에서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2020.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