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그 여름의 기억 2/달리면서 혹은 걸으면서, “우리의 삶이 저와 별로 다를 바 없나니, 흐르는 강물처럼”

청솔고개 2020. 8. 9. 13:49

그 여름의 기억 2, “우리의 삶이 저와 별로 다를 바 없나니, 흐르는 강물처럼”

                                                                                                    청솔고개

 

   제천을 거쳐서 강원도 상동 탄광으로 이어지는 나의 여정은 이어진다. 기차 시간이 안 맞아서 제천에서 버스로 상동까지 갔는데 친구가 일하고 있는 탄광촌은 (아마 이름이 ‘평화촌’이라고 기억된다) 읍 소재지에서 30 리 떨어진 산 위에 있다는 게 아닌가? 발가락은 화끈, 욱신거리는데 30 리 밤길 산길이라, 그러나 되돌아 설 수는 없는 일, 탄광 노동조합 일을 본다는 친구를 만나서 같이 밤을 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근처 가게에서 빵 한 봉지, 우유 한 봉지 사서 베어 물고, 해질 녘을 넘기 10여분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에 뒤돌아보니 정복을 입은 경찰과 사복을 입은 한 사람이 나를 불러 세운다.

   “당신 거수자로 신고가 들어왔는데 잠깐 좀 볼까요?”

   “…………."

   나는 순간 아까 상동읍내 가게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나오는데 근처로 지나가던 초등학교 5,6학년짜리 몇몇이 의심쩍은 시선으로 나를 뚫어지게 보던 게 떠올랐다. 아마 그 애들이 신고했을 것 같았다. 정말 '반공, 방첩, 멸공, 승공' 등의 용어가 일상화 되던 시절이었으니까. '고 녀석들 신고 정신 하나 투철하네.' 나는 속으로 생각되었다.

   “당신, 목적지가 어디요?” 정복이 먼저 고압적으로 물어온다. 나도 당당하게 눈에 힘을 주어 답했다.

   “요 위 평화촌에 둘도 없는 친한 친구가 근무하는데 오늘 만나봐야 해요.”

   내가 거동 수상자로 몰리다니, 군번도 묻기에 거침없이

   “1266****”이라고 거침없이 답했으나 그래도 자꾸 수상쩍은 시선으로 쳐다본다.

   나는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나도 당신 같은 공무원이라요. 올 1월 초에 강원도 양구 전방에서 만기 제대하고 복직해서 현재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요. 의심나면 지금 내려가서 당장 전화로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뇨?”

   나의 단호한 태도에 의심의 눈길은 다소 가셔졌지만, 이제는 이 밤길에 그 산 위 동네까지 간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짓이라면서 만류를 한다.

   “마침 잘 되었어요. 내가 지금 발톱이 빠져 걷기가 힘드는데 당신네들이 지나가는 차 있으면 좀 잡아서 태워주면 안되겠소?”

   그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보고는 좀 기다렸다가 지나가는 철근 실은 대형 트럭을 잡아 주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인가, 임기응변(臨機應變)의 기지인가. 위기를 기회로 창출하는 삶의 지혜인가. 순간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발상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내 키보다 더 높은 그 트럭의 조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일대는 탄광지역이라 흐르는 계곡 물도 탄가루가 섞인 검은 물이다. 해지고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다 보니 더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그 광경에 음산하고 끔직한 느낌에 온 몸이 소스라치는 듯한 새로운 체험은 계속할 수 없음이 다소 아쉽기는 하였지만……. 별일 없었으면 하늘이 더없이 가까워 보이는 이 산길을 밤새도록 걷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름 모를 나방과 풍뎅이, 반딧불이가 날리는 한여름 밤을 오롯이 혼자 차지하고 싶었지만.

   운전자는 마지못해서 나를 태워주긴 하였지만 썩 고운 눈길은 아니었었다. 한 10분 달렸을까? 이 길이 초행인 이 운전자도 엊그제까지 장마와 홍수로 파헤쳐진 이 산길을 요령 있게 운행할 수 있는 베테랑은 아니었나보다. 계속 급경사로 오르는 바람에 그만 뒤로 드리워진 철근 더미가 땅에 닿아서 질질 끌리는 게 아닌가? 차는 기우뚱하고 뒤로 슬슬 미끄러지는 것 같았고, 안전에 대한 방어본능이 작동한 나는 엉겁결에 그만 배낭과 물건을 꽉 쥔 채 그 높은 조수석에서 뛰어내리고 말았다. 대형 트럭이 조수석이 그만큼 높다는 사실을 그 때 실감했다. 빠진 발톱이 타격되어 정신마저 아뜩할 지경이었다.

   허위허위 영월군 상동읍 평화촌 탄광마을을 기다시피 해서 올랐다. 땀과 먼지와 탄가루가 범벅이 된 온몸과 얼굴을 누가 보았으면 정말 거수자[거동수상자, 擧動殊常者]라고 여길 만 했을 것이다.

드디어 한 두어 시간 기어 올라가니 멀리 훤히 대낮 같은 탄광 입구가 보인다. 난생 처음 보는 이른바 막장이다. 막장 근무 교대하려던 한 사람이 나를 보더니 이제는 정말 거동수상자로 여겼던지 흠칫 놀라는 표정이다.

   나는 이럴수록 침착해지는 느낌을 즐기면서

   “친구가 여기 있습니다. 평화촌에 묵고요. 노조사무원으로 일한다는데……. 혹시 ㄱ**이라고…….”

   그제야 안심한 듯 친구 하숙집으로 안내해 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친구는 오늘 아침에 서울 출장 갔다나! 이를 어쩌나. 낭패로다. 헤비고 뜯고 해서 이 친구 만나러 왔던 공(功)은 간 곳 없었다.

   하숙집 주인아주머니도 고향 이웃 시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친근한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친구 하숙방에 자면 되요. 총각, 걱정하지 마요.”

   나는 염치불고하고 들어 밀었다. 세수하라면서 주는 대야에 담긴 물이 글쎄 바닥을 겨우 가릴 정도의 양이다. 손 씻고, 얼굴 훔치고 발까지 담그고 나니 물이 거의 검은 물감 색이다. 저 아래에서부터 물을 길어 올려야 되니 여기는 물이 이렇게 귀하단다. 한 상 조촐하게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올 리가 있나. 마침 또 교대시간이 돼서 친구와 한 방에 같이 묵고 있는 광부 한 사람이 교대 근무하러 나가기에 같이 따라 나갔다. 바로 옆에 있는 갱구에 들어가 보았다. 갱도 입구에 불은 대낮같이 밝혀져 있는데 밤을 잊은 광부 살이가 정말 힘겨워 보였다.

한 광부는 나를 아는 체하며,

   “나도 형씨를 멀리서 보았는데 정말 뭐라도 나타난 줄 알았지요?”

   나도 호기심이 생기나 짐짓 모른 체하면서 안도의 목소리로

   “뭐, 말입니까?”

   “무장 간첩 말입니다. 정말 온 몸에 검정 탄 칠을 하고 머리도 짧게 깎고, 쐼지하며, 거기다가 배낭까지, 영락없었어요.”

   “정말 큰 일 날 뻔 했네요. 다시 한 번 더 신고 되는 날에는 나는 그 날이 제삿날이라도 될 뻔 했네요.”

   아침까지 느긋하게 얻어먹었다. 주인아주머니의 살뜰한 배웅 인사를 뒤로하면서 근처 역에 12시에 도착한다는 태백선을 타러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저 아래 아득한 골짜기에는 어제 저녁부터 거쳐 왔던 읍내 시가가 있다. 뭔가 아쉬운 듯 아래를 자꾸 내려다보면서 고원을 가로질러 터벅터벅 걸어갔다. 상동 역에서 당시 벌써 전기철도로 된 강릉 향발 완행열차에 오르니 내 마음은 벌써 동해 최북단 화진포에 가 있었다.

   이날은 종일 강릉 가는 열차에 몸을 맡겼다. 그 탄광촌이 있는 아득하고 황량한 고원의 풍정은 20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나의 뇌리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 후, 그 친구도, 그 평화촌도 두 번 다시 만나지도, 찾지도 못했다.

나는 도대체 그때 무엇 하러 거기까지 갔던가? 지금도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그 답을 찾아본다. 친구 만나러, 아니면 탄광촌 보러. 이도 저도 아닐 것 같다.

   나는 그냥 흘러 또 흘러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적확한 표현일 게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살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니까.

   

   그래서 “우리의 삶이 저와 별로 다를 바 없나니, 흐르는 강물처럼” 말이다.

   [이 글은 2002. 10.에 쓴 것을 다시 정리한 것임]

                                                               2020.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