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그 여름의 여행길/중국 서안, 장가계, 상해 기행보고서 2, 현종과 양귀비 두 사람의 사랑의 장소로 소문난 '화청지(華淸池)' 연못과 양귀비가 목욕한, 지금도 섭씨 43도의 온천물이 나오는 해상..

청솔고개 2020. 8. 17. 10:15

그 여름의 여행길/중국 서안, 장가계, 상해 기행보고서 2

                                                                  청솔고개

   2004. 7. 30. 금. [둘째 날 전편]

   수잠을 자다가 05:30에 모닝콜로 깼다. TV는 저절로 꺼진 것 같다. 누가 껐는지. 아내는 아직 곤히 잠들어 있다. 쉰이 내일인데도 귀밑머리랑, 홍조 띤 볼이 내게는 여전히 앳된 옆모습이다. 그래서 천정배필이라고 하는가보다. 언제나 사랑스럽다. 둘째 날 여정을 점검해 본다.

   여정의 이튿날이 밝았다.

   먼저 대안탑(大雁塔)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은 잘 개발 ․ 정비되어 어제 보던 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 시안은 황토고원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런 물이 지천이고 찜질방 관광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더운 곳이라고 했다. 이틀 전만 해도 37도 정도의 살인적인 더위였는데 오늘은 바람도 설렁설렁 불고해서 복 받은 날씨라고 가이드는 마치 이게 자기의 덕이라도 되듯이 몇 번이고 강조한다. 연 평균기온이 13.3도 이고 -10도~37도 정도의 기온 분포라고 했다. 연평균 강수량은 604㎜ 정도. 시안 시 전체 인구는 560만 명, 이곳 도심 인구만 320만 명, 거의 대부분의 건물은 우리의 80년대 개발의 어수선한 모습 그대로다. 다소 혼잡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숨은 활력을 느낄 수 있다.

   다음은 자은사대안탑(慈恩寺大雁塔)에 대한 야후 검색 내용이다.

   자은사대안탑(慈恩寺大雁塔) 중국 산시 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의 자은사에 있는 사각형 7층 전탑. 자은사는 648년 당시 당(唐)나라의 황태자였던 고종(高宗)이 죽은 어머니를 위하여 지은 절로서 옛 절을 재흥한 것이다. 때마침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을 맞이하여 절 안의 번영원에서 경전을 번역하도록 하였다. 당시의 대안탑은 현장(玄奘)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도양식을 본떠 5층탑으로 창건되었으나, 701년 7층 전탑으로 개축하여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전체 높이 약 59m, 기단 높이 4.5m, 기단 둘레 약 41.5m이고 탑의 제 1 층은 둘레가 약 25m인 대탑이다. 사방 출입구의 상부 문설주에 선각(線刻)이 있으며, 그 중 서쪽 미석(楣石)의 불전화(佛殿畵)는 당나라 때의 건축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태종의 유명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書)》가 이 탑 안에 보존되어 있다.

   여기서 당 고종(唐 高宗)의 이름은 이치(李治)다. 대안탑 앞에는 <대당서역기> 저자인 당의 고승으로 흔히 삼장법사로 알려진 현장(玄奘)의 동상이 지키고 있었다. 여기서 앞으로 바라보니 시원하고 새로 닦여진 길이 그 옛날 장안의 주작대로(朱雀大路)를 연상케 한다. ‘주작대로는 너비가 88m에 이르는 대형도로로 도성 전체를 크게 2부분으로 나누고 있다.’라고 기록에 남아 있는 장안의 성벽과 주작대로를 정말 볼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가이드는 장안이 중국 역사의 중심을 꿰뚫는 고도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려 애를 쓴다. 어제 내린 공항에서 호텔까지 18개의 능이 있다는 둥, 그 능을 깔고 달리고 있다는 둥.

   여기 시안 시는 이모작 지역이나 벼는 건조한 기후로 재배할 수 없고 밀, 옥수수 등을 주로 재배한다.

   이어서 여산 산록에 있는 온천욕 화청지(華淸池)로 향했다. 연못가에 있는 양귀비의 조각이 눈길을 끌었다. 그 당시 미인은 여기 양귀비처럼 오동통한 형이었는가 보다. 양귀비(楊貴妃)와 당 현종(玄宗), 안사(安史)의 난[안녹산, 安祿山, 사사명(史思明)의 난], 백거이(白居易)의 장한몽(長恨夢) 등의 당시 중국 역사적 사실이 떠오른다. 여기는 양귀비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있었다. 양귀비의 온천 욕탕, 목욕하고 알몸으로 말렸다는 긴 회랑이나 난간, 정자 같은 것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백이 지은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는 양귀비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절창(絶唱)으로 남아 있다.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구름은 그대 옷자락, 꽃 보면 그대 얼굴인 듯

   春風拂檻檻露華濃(춘풍불함노화농) 봄바람이 난간을 스치고 이슬이 반짝여 촉촉하기 그지없소

   若非群玉山頭見(약비군옥산두견) 군옥산 산마루에서 볼 수 없었다면

   會向瑤台月下逢(회향요대월하봉) 요대 달빛 아래서 우리 만났으리오

   一枝濃艶露凝香(일지농염로응향) 농염한 꽃가지 하나 이슬에 꽃향기가 젖어 있소

   雲雨巫山枉斷腸(운우무산왕단장) 무산의 구름비는 군왕의 애를 끊도다

   借問漢宮誰得似(차문한궁수득사) 한나라 궁중에서는 누구와 비견할까

   可憐飛燕倚新粧(가련비연의신장) 사랑스러운 비연마저 새 단장 해야할까봐

   名花傾國兩相歓(명화경국양상환) 모란과 절세미인 둘이 서로 기뻐하니

   常得君王帶笑看(상득군왕대소간) 군왕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넘치도다

   解釋春風無限恨(해석춘풍무한한) 봄바람이 한없는 시름 다 날려버리니

   沈香亭北倚欄干(침향정북의난간)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서 있도다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 ․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로 그의 시명(詩名)은 장안을 떨쳤으나, 그의 분방한 성격은 결국 궁정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장안을 떠나게 되나 그 직접적인 원인은 청평조사 중 양귀비를 한(漢)나라 성제(成帝)를 유혹한 조비연(趙飛燕)에 비유한 부분이 있어 이백은 추방당하였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당 현종 시, 이백, 두보와 더불어 3대문장가인 백거이(白居易)는 양귀비를 노래한 900여 자에 달하는 <장한가(長恨歌)>를 지었다. 안녹산 사사명의 난으로 필경 양귀비를 잃고 난 현종은 양귀비를 그리워하다가 도사의 힘을 빌려 태진이라는 선녀를 만나니 현종이 이를 필시 양귀비의 혼백이라고 여기고 주고받는  간절한 사랑 노래다태진이라는 양귀비의 혼백이 전하는 이 시구는 널리 알려진 남녀 사랑의 백미를 보여준다.

   다음은  <장한가(長恨歌)>에서 양귀비가  도로 사자(死者)에게  애절한 어조로 전하는 부분이다.

   含情凝睇謝君王 一別音容兩渺茫 (함정응제사군왕 일별음용양묘망)

   정을 가득 담아 군왕께 감사합니다. 한번 헤어진 이후에는 군왕의 목소리와 모습은 아득하고

    昭陽殿裏恩愛絶 蓬莱宮中日月長 (소양전리은애절 봉래궁중일월장)

   소양전에서 입은 사랑도 거두셨으니 홀로 봉래산 궁중에서 머문 세월은 길고 또 길었습니다

   回頭下望人寰處 不見長安見塵霧 (회두하망인환처 불견장안견진무)

   고개를 들어 아득한 인간세상을 내려다봐도 먼지와 안개만 장안(長安)을 가리고 있습니다

   唯將舊物表深情 鈿合金釵寄將去 (유장구물표심정 전합금채기장거)

   오로지 옛것으로 깊은 정을 표하고자 자개함과 금비녀를 보내드립니다

    釵留一股合一扇 釵擘黄金合分鈿 (채류일고합일선 채벽황금합분전)

   비녀는 한 가락만 남기고 함도 한쪽만 남기니 금비녀와 함은 깨어졌지만

   但教心似金鈿堅 天上人間會相見 (단교심사금전견 천상인간회상견)

   마음이 금비녀와 자개처럼 굳세고 변치 않는다면 천상이든 인간세상이든 서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臨別殷勤重寄詞 詞中有誓兩心知 (임별은근중기사 사중유서양심지)

   이별을 앞두고 간절히 거듭 전하는 말이 있어 둘만이 알고 있는 서약이 있으니

   七月七日長生殿 夜半無人私語時 (칠월칠일장생전 야반무인사어시)

   칠월 칠석날 장생전 인적 없는 한 밤에 이같이 한 맹서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별을 해야 할 즈음, 양귀비는 다시 사자(死者)에게 이렇게 말한다.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면 비익조 되기를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 자라면 연리지가 되기를 서로 원했습니다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하늘과 땅이 가없다하여도 끝이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우리 한은 잇고 이어져 끊어질 날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비익조'(比翼鳥)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새로, 암수가 한 몸이 되어 난다는 데서 사이가 좋은 부부를 상징하고, '연리지'(連理枝) 또한 중국 전설에 나오는 나무로, 뿌리는 둘이지만 가지는 합쳐져 하나가 된다는 데서 부부의 깊은 애정을 상징한다. 현종과 양귀비는 이 '비익조'와 '연리지'처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한 것이다.

   우리는 가이드의 서비스로 양귀비가 목욕한 온천수에 손을 담가보았다. 제법 뜨거웠다. 나는 당대(唐代) 경국지색(傾國之色)의 향흔과 체취를 찾아서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려보았지만 좀처럼 머릿속이나 오감으로 실감나지 않는다. 하얀 이마, 코, 턱 등 삼백(三白)과 붉은 입술, 뺨, 손톱 등 삼홍(三紅)의 미인 양귀비가 이 온천수에 배꽃, 복숭아꽃, 모과꽃, 사과꽃, 백련화, 홍련화, 살구꽃 등 7가지 꽃잎을 소주에 담가 맑게 여과시킨 액을 화장수로 온몸을 닦고 저 높은 회랑에서 알몸으로 말리면서 금시라도 현현(顯現)하는 환각에 사로잡히고 싶다. 온천욕 역시 양귀비의 미모를 돋보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현종과 양귀비 두 사람의 사랑의 장소로 소문난 '화청지(華淸池)' 연못과 양귀비가 목욕한, 지금도 섭씨 43도의 온천물이 나오는 해상탕(海常湯)은 천 년 전 그 날의 말없이 영화를 전하고 있다.  2020.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