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학부모 교육이다 2/2
청솔고개
어떤 교육계의 원로의 이런 말씀이 무척 공감이 간다. 그 분의 말은 그분이 일본대사관에 교육담당관으로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을 때 경험담을 바탕으로 시작되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교육 문제 단면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교육의 본질을 너무 왜곡하고 있는 데서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수집한 자료 중 한․미․일 학부모 인식 조사 결과가 바로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학교의 역할로 문화와 지식의 습득을 가장 큰 주제로 삼는데 비해서 한국은 인성과 예절을 가장 큰 해결되어야 할 주제로 인식하였다. 일견 보면 우리 사회가 교육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어 보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현실은 가정에서 이미 거의 완성되었어야 할 예절, 인성, 습관 등의 교육을 학교에 전가(轉嫁)하고 무한 책임을 물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도에 문제 있네, 교사가 무책임하네, 학교에서는 도대체 교육을 하고 있는지 하면서 끝없는 책임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도 어느 정도 질 수 있는 책임이어야 책임의식이 생기지 끝없는 책임은 책임 없는 거와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러한 발상이 얼마나 정치논리이며 행정 편의주의 적으로, 교육만능주의로 치우치는지 알만하다. 정말 안일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다. 학교 교육의 본질은 교과교육이다. 솔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교사는 교과교육의 전문가가 되어서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력 개발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물론 학교 교사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정받는 것 같아서 한 때는 기분이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라고 하면 뒤로 나자빠지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
정말 경청하고 여기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 분의 이야기를 전제하면서 혹자는 그러면 지금 가뜩이나 인문계고교에서는 보충수업이다 자율학습이다 하면서 학력 위주로 가고 있는데 이걸 방치해 두란 말인가 하는 반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공교육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공교육이 부실해서 교육위기가 생긴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말의 뜻을 암만 헤아려 보아도 이해가 아니 된다. 우선 공(公)․사(私)교육의 구분부터 잘 못되었다. 공교육은 마치 절대 선처럼 전제하고 사교육은 무슨 형편없는 부실기업처럼 취급하면서 교육으로 기능하면 안 되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면 사(私)자(字) 다음에 교육이라고 이름 붙여서는 안 되고 국가에서 모두 그 기능을 몰수하던지 정지하던지 해야 할 게 아닌가? 버젓이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인 허가해 놓고 이렇게 야단법석은 또 무슨 말인가.
그리고 여기에도 묘한 논리적 모순을 호도하고 은폐하고 있다. 지난 97년 이후 교육개혁의 회오리가 교단을 강타하고 있을 때는 학교가 지나친 한 줄 세우기 위주, 진학성적 위주로 가기 때문에 특기적성이나 창의력 사고력을 죽이고 있다고 하면서 이런 식의 교육은 혁파되어야한다고 선정적으로 몰아붙였다. 그래서 소위 많은 개혁의 성과가 가시화되었다. 그러면 그렇게 계속 일관되게 나갔으면 좋았겠는데 불과 4-5년도 안 되어서 공교육이 사교육에 경쟁력을 잃고 있으니 이대로 두면 공교육은 붕괴될 것이라고 또 다른 위기론을 들고 나왔다. 앞선 개혁은 학교현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제도와 관행과 기존 사고를 뜯어고치는 대대적인 외과적 수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수술의 결과는 보지도 않고 또 다른 공교육 위기론을 들고 나오면서 그렇게 까지 문제시되었던 일반계고등학교 심지어 중학교까지 이름만 바뀌었지 실지로는 학과보충수업을 포장한 특기․적성수업, 야간, 심야 자율학습이 횡행하고 있으니 교육계에 평생 잔뼈가 굵은 필자도 헛갈릴 판이다. 그러면 이러한 학과보충수업을 포장한 특기․적성수업, 야간, 심야 자율학습의 대대적인 부활이 공교육의 경쟁력을 회복시켜줄 수 있다는 논리인데 이건 바로 개혁대상 1호였던 학력 위주의 지나친 한 줄 세우기, 진학성적 위주의 학교 교육이 공교육 경쟁력회복의 주역으로 둔갑한 것이 아닌가. 지난 5년 간 교육개혁의 대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체벌, 촌지, 철밥통 교원정년이 바로 그것이란 말인가?
이제 결론은 명백하다. 우리 모두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교육 적어도 학교교육의 본질은 교과교육이다. 물론 40년 전의 열악했던 교과교육을 답습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럴진대 교사는 진정 무엇으로 먹고 사는가? 40년 전이 아닌 최신 학습지도, 생활지도 이론으로 무장해서 교과교육에 전념토록 해 주어야 교육이 그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문제 해결 방책은 분명해졌다. 이제는 학부모 교육이다. 이것을 통해 지금까지 아팠던 교육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
이러면 학부모의 역할도 분명해진다. 기본적인 생활습관과 인성은 학부모가 책임져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고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그냥 학교에 무한 책임을 전가한다면 교육의 앞길은 더욱 혼란스럽고 위태하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 주민, 학부모, 학생, 학교 교원, 교원단체로 구성된 교육공동체가 대 연합을 해서 공조할 것은 공조하고 역할 분담할 것은 분담을 해서 새로운 교육공동체 의식을 고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금 범국민적 차원에서 학부모 교육을 강화해야 함을 역설한다. 적어도 교육의 본질과 원리 정도는 알고 역할을 분담해서 교육의 중요한 일익을 책임지고 담당하게 함으로써 더 이상 학교교육에 이 문제가 부담으로 작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몰이해와 편견을 해소하는 데도 이만한 방책은 없다. 얼마나 많은 교육에 대한 몰이해가 교육력을 낭비해왔는가. 이는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언론도 학부모로 구성되어 있지 않는가? 그래서 교육에 대해서는 전문가 아닌 사람도 없고, 전문가도 없다는 말이 있지 않았는가. 정말 모두가 확실한 전문가적 일가견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물론 1-2년에는 안 된다. 최소한 10년 정도 인적 물적 투자를 해서 학부모의 인식을 개혁하는 학부모 교육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것이 전제가 되지 않고는 어떤 교육적 묘책도, 획기적인 개혁안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지난 40년 간 숱한 교육개혁, 입시정책 개선도 무용지물이 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현재 또는 앞으로 학부모 신분이 아닌 국민이 있는가. 한사람도 없다. 학생의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누나, 형님, 언니, 오빠, 삼촌, 숙모…….모두가 현재 학부모이고 앞으로 본인이 직접 학부모가 된다.
‘부모는 가장 좋은 교사다’라는 말도 있듯이 학부모 교육을 통한 가정에서의 개별 교육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력 있고 살아 있는 교육이다. 다만 질 높은 학부모 교육을 통한 질 높은 가정교육을 전제로 할 때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특히 후대 신세대로 갈수록 가정에서 하나둘밖에 없는 자녀의 인성과 생활습관에 대해서 이와 같은 일대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의 실천을 통한 해결은 어렵다. 내 가정에서 이를 귀담아 듣고 가능한 것부터 실천함으로써 하나의 거대한 교육혁명의 물결처럼 퍼져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나?
가정교육의 지침은 너무나 많다. 물론 범정부적 차원에서 실천 가능한 효율적인 지침도 마련할 수 있고 우리의 전통 가정교육의 사례를 오늘날 효과적으로 전용하면 된다. 유교의 덕목도 잘 만 시행하면 멋진 가정교육의 지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자녀 상담의 기본을 부모는 알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100가지 이론보다 한 가지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자녀와 10분 대화하기, 자녀와 30분 토론하기, 자녀와 1시간 같이 책 읽기 등 자녀와 같이 하는 시간을 매일은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런 시간을 가져보자. 자녀의 잘못을 일방적으로 힐책하기보다 나의 잘못된 본으로 말미암아 자녀가 잘못을 범하지 않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하나라도 당장 실천해 보자.
2020.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