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길 따라’ 연재에 앞서
청솔고개
지금으로부터 꼭 23년 전, 당국의 교사 국외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유럽 3개국을 연수 취지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보았던 유럽의 한 부분을 처음 만난 셈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괴테의 그 여행길을 답파(踏破)하면서 피어나는 여정(旅情)과 감동을 담은 서신을 기간 중 몇 차례 아내에게 보내기까지 했다. 그 때, 내가 느낀 감동, 여정, 충격 등을 지금이라도 남길 필요를 느껴서 정리해 보는 것이다. 유럽 3개국을 둘러본 지도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매순간의 인상이 내 가슴에 물결쳐 온다. 그때 아내에게 보냈던 서신들에서도 생생한 기억이 묻어난다. 그래서 지금 다시 그 여정을 따라 기억과 감동의 여행을 떠나 본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우연의 일치인지 , 가슴속의 열망에서 그리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오래 전부터 괴테의 한 저서에 내 마음이 꽂혀 있었다. 바로 괴테의『이탈리아 기행』이다. 이 책을 책방에서 벌써 1년 전부터 사서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괴테가 200년도 더 전인 1786년 9월부터 1788년 6월까지 약 20개월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독일인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일기, 메모, 여행 보고를 모은 기록이며 또한 702쪽의 방대한 자료집이기도 하다. 나는 그 때 천재의 이탈리아에 대한 인식이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되면서 천재의 이탈리아 기행 여정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나는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고 괴테는 훨씬 오랜 기간 체류를 기록한 것이라 감히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극히 일부라도 견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기록에서 작가는 사회상과 예술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물론이었지만 특이하게 식물학, 광물학, 동물학, 기상학, 지질학 등 자연과학의 각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연재의 제목을 이렇게 꾸며 보았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길 따라’,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연수보고서 1997. 11. 22(토)-12. 3(월)]
괴테는 그의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그가 37세의 새벽에 칼스바트의 자기 집에서 떠나는 광경을 너무나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기록하였다. 내가 여행을 떠날 때, 특히 새벽에 혹시 떠날 때는 괴테의 이 떠남의 모습은 내게 어떤 강렬한 메시지나 영감을 준다. 벌써 몇 차례나 체험했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가능하면 나의 여행길과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여정을 견주어 가면서 그 천재가 떠난 길을 시공을 초월해서 동행해보고자 한다. 이 여행기록문의 제목도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길 따라’라 했다. 이 후부터 ‘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왔다……. ’ 처럼 된 글꼴로 표현된 것은 모두 앞에 소개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혀준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아래 "~"속은 13쪽-17쪽에서 발췌한 것)
“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테니까. 8월28일 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려고 했던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아마 나를 붙잡아둘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여행 가방과 오소리 가죽 배낭만을 꾸린 채 홀로 역마차에 몸을 싣고 7시 30분에 츠보타에 당도했다. 안개가 자욱이 낀 아름답고 고요한 아침이었다. 위쪽의 구름은 양털처럼 띠무늬를 이루고 있었고, 그 아래쪽 구름은 묵직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이 내겐 좋은 징조처럼 보였다. 나는 그토록 찌푸렸던 여름을 뒤로 하고 상쾌한 가을을 만끽하게 될 기대에 부풀었다. 12시에는 따가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에거에 도착했다. 그때서야 나는 이곳이 내 고향과 똑같은 위도 상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또 다시 북위 50도 이남의 맑은 하늘 아래에서 점심식사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바이에른 지방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이 발트자센 수도원이다. 이것은 성직자들의 값진 자산인데, 그들은 일찍이 다른 사람들보다 현명했다." 2020.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