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길 따라’ 제1일 (김포공항, 프랑크플루트 공항, 숙소)

청솔고개 2020. 12. 6. 22:41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길 따라’ 제1일 (김포공항, 프랑크플루트 공항, 숙소)

                                                                       청솔고개

 

   늦가을 새벽의 서늘한 기운에 온몸을 적시며 어둠을 뚫고 황황히 짐을 꾸려서 집을 나섰다. 아내는 몸살로 힘든 모습이다. 내 마음이 아프다. 초췌한 육신에 남편마저 먼 곳으로 떠난다고 하니 맘마저 스산하고 허허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설상가상, 무슨 힘이 나겠는가. 허나 대구공항 행 버스는 06:00에 출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기내 가방, 휴대용 가방, 큰 가방 등 3개를 들고 택시를 타는 것부터 쉽지 않다. 대구 공항에 08:20까지 집결해서 인원 및 제반 사항을 점검하고 09:50에 국내선 KE1540편으로 김포공항 도착 및 출발, 이어서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이트 공항에 도착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여러 가지 후속 업무가 따르는데 우선순위에 따라 황황히 처리하고 이번 새 여행길을 기록할 평소에 갖고 싶었던 고가의 명품 ‘아남 니콘’ 카메라를 구입해서 사용법도 익히지 못한 채 훌훌 떠나왔다.

   대구 공항에 도착하니 연수단원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보인다. 삼삼오오 인사 나누고 모두들 이 연수에 대한 남다른 기대감이 어린 표정이었다. 대구서 09:50에 KE1540편으로 서울 김포공항으로 출발하였다. 김포공항에서의 출발 예정시간은 13:45이다.

   드디어 출발이다. 우리는 이제 유럽으로 간다. 모두들 자못 들뜬 기분으로 얼굴마저 상기되어간다. 정시에 프랑크푸르트 행 KE905편은 이륙했다. 비행기는 일로 서녘으로 해를 따라 간다. 아마 계속 간다면 해가 지는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차창 밖으로 보니 한낮의 휘황한 햇살이 천상의 보석 광처럼 고귀하다. 천공(天空)에서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가. 기내 모니터에 표시되는 이동 경로는 이 여정의 멀고도 지난함을 보여 준다.

   경로 선은 중국 대륙, 시베리아 북서부, 중앙아시아를 관통한다. 책에서나 보았던 바이칼 호 상공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중학교 2학년 때 관람한 이광수 원작 ‘유정’영화에 나오는 남정임과 남궁원이 만났던 설원, 그 아득한 원시의 고향이 바로 저긴가. 나는 차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벅찬 느낌을 아내에게 전하고 싶어서 준비해간 붓 펜과 편지지를 펼쳐서 그대로 마구 써내려 간다. ‘아! 바이칼 호, 시베리아 설원, 툰드라의 그 생명의 시원(始原)’ 아래 눈 덮인 저 황야에는 고독한 시베리아 산(産) 늑대의 울음이라도 곧장 들려올 것 같았다. 그리고 벌써 눈에 덮여서 길인지, 경작지인지, 집터인지 모를 자국들이 마치 서해 염전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도착(11.22.18:00, 고국시간 11.23.00:20, 8시간차)후, 교외에 소재하고 있는 노보텔 웨스트사이드(Novotel West Side, 호텔 체인점) 426호실에 숙소를 정했다. [1997. 11.22(토, 제1일/12일)]

                                                                                                              2020.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