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땅 (1/2)
청솔고개
“여보!. 이 나뭇잎 좀 빨리 내다 버려요. 너무 지저분해요.
아내의 성화가 빗발친다.
나는 여유 있는 목소리로
“그건 우리 집 식구들의 양식인데 왜 내다버려요?”
라일락, 감나무, 살구나무가 꾀 크게 자라서 나뭇잎이 질 때면 아내는 영락없이 이렇게 짜증을 낸다. 그럴 때면 나는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원리를 또 설교한다.
땅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영양분을 먹여야 한다. 영양분이란 바로 자기 몸에서 난 잎들이 져서 만들어진다고.
이렇게 18년 동안 우리 집 뜰은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을 하나도 버리지도 않고 북돋워 주었더니만 족히 한 자는 넘게 복토(覆土)가 되어 흙이 마당 보도블록으로 흘러내릴 지경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땅에 뿌리박고 사는 우리 나무 식구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은 계속되고 있다. 아내는 나의 지속적인 교육(?)에 설득된 듯 무슨 썩을 만한 것은 모두 한 뙈기도 안 되는 화단에 쓸어 넣는다. 그래서 우리 화단은 겉으로 보면 마치 쓰레기장 같다. 그러나 거기에는 생명이 숨 쉬고 있다. 나는 화단을 일굴 때 가장 먼저 흙 속에 묻혀 있는 종잇조각, 비닐 조각, 스티로폼 부스러기 등을 골라낸다. 이것들이 흙을 옥죄어 숨을 막히게 하는 암적(癌的)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땅은 또 활발하게 숨을 쉬고 자란다.
땅은 생명의 원천이다. 땅은 이렇게 숨 쉬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그 위에서 생존할 수 있다. 땅은 인류가 이 땅에 살기 전 아득한 태곳적부터 형성되어 왔다. 모든 자연, 역사, 생명도 땅에서 시작되었다. 육사도 그의 시에서 땅의 신성성과 역사성을 웅혼하게 노래하였다. 땅은 살아 있다.
우리 조상들은 땅을 무척 중히 여겼다. 왕조를 흔히 사직(社稷)이라고 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사직은 토지와 흙의 신을 내포한 개념이다.
땅은 하나의 목적이다. 땅은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누천년 이 땅에 뿌리박고 한 뙈기 땅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생존 자체를 걸었다.
이렇게 소중한 생존의 터전인 땅이 최근 와서는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 우리는 땅을 되살려야 한다.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땅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흔히 고대인들이 이 세상의 사물을 형성하고 있는 근원으로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들고 있다. 모든 사물은 이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것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땅의 포용력은 이렇게 넓고도 깊다. 바다보다도 대지가 어쩌면 그 포용력이 더 크다고 본다. 땅의 가장 큰 힘은 그 자체의 ‘위대한 썩음을 통한 회복 탄력성’이다.
우리 사회의 인간들이 갈수록 썩어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너무 썩어서 해당 법률들이 조목조목 있는 데도 불구하고 ‘부패방지위원회’니 ‘바르게살기운동 본부’ 같은 걸 만들어서 인간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땅의 썩음은 아름답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새 생명을 싹틔울 수 있는 것처럼 나무의 줄기, 가지, 꽃, 잎, 열매도 떨어져 썩어야만 된다. 땅은 이 모든 것을 포용하여 새 생명의 자양분을 마련하는 것이다. 땅의 썩음은 이토록 아름답다. 아니 모든 유기물을 분해하여 물질의 근본으로 회귀하게 하는 위대한 힘이 있다. [위의 글은 2002년 봄에 쓴 것임]
2020.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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