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다육이 양육법 1/ 사막과 같은 이 마른 땅에서 이런 기적을 일으키다

청솔고개 2022. 1. 11. 23:55

                                                                         청솔고개

 

   내 척추관협착증이 심해지고부터는 산행이 힘들어진다. 나는 심한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또한 그동안 내 생활 중심이 됐던 상담 케이스도 없어졌다. 6년 동안 나의 자존감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던 이 일이 당국의 사업 철수로 신년도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두 가지 큰 걸 상실하고 있다. 결국 나의 정신의 중심을 잡아 줄 게 없다. 그래서 그 틈새에 내가 눈을 돌린 것은 베란다에 그냥 버려두다시피 한 다육이 화분 너덧 개였다. 내가 지난 오륙년 동안 거의 매일 올랐던 먼 산이 그 배경이 되는 양지바른 베란다에는 언제부턴가 내 다육이 식구들이 많이 늘었다.

   처음엔 이런 작고 앙증맞은 다육이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전번 주택에서 이사할 때 많은 화분은 다 두고 왔지만 다육이가 담겨진 화분만큼은 옮기기 쉬워서 가져왔었다. 5년 뒤에는 그 다육이가 분주, 분갈이를 거듭해서 너덧 개로 늘어났다. 언제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하게 달라지는 다육이를 보면서 소확행이라는 행복해지는 법을 여기서 배울 수 있겠다 싶었다. 더구나 나의 두세 번째 버킷리스트였던 상담일조차 무산되고부터 공허감은 더 커졌다. 이런 상실감을 채워주던 것은 그 후 오일 장날마다, 아니면 상설 시장 근처 난전을 지날 때마다 많게는 다섯 포기, 적게는 한두 포기씩 다육이 사 모으기였다.집에 있는 빈 화분에다 일단 다시 옮겨 심는 것이다. 그냥 얇은 플라스틱 화분보다는 사기화분에 옮겨 놓으면 그 품격이 달라 보였다.

   더구나 그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정말 소확행이었다. 다육이 키우는 법을 인터넷에서 부지런히 배워서 물주는 법, 공기 통하게 하는 법, 햇볕 쬐는 법도 익혔다. 가장 신통한 것은 내가 그 옆을 지나치다가 부주의로 잎 하나를 떨어뜨려서 너무 안스럽고 내 실수에 대해서 자책하는 나머지 *이망무지로 그걸 화분흙에다 그냥 꽂아두었는데 나중에 거기서 실금 같은 발이 나오는 게 아닌가. 이건 기적이었다. 더구나 그 발이 거의 허공으로 향한다. 나중에 더 자세히 보니 다육이 줄기가 위로, 혹은 옆으로 뻗어나가는데 거기에도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발들이 솜털처럼 나 있다. 그건 분명 털이 아니라 뿌리다. 이후 센 바람에 떨어진 다육이 잎에서 다시 초소형 어미다육이 모양을 한 잎이 자라나는 것을 보았다. 이 작은 생명은 이런 방식으로 생존하고 유지되는구나. 어떻게 사막과 같은 이 마른 땅에서 이런 기적을 일으키다니 하는 감동을 내게 선사하는 것이다.

 

   다육이는 절대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는 다육이 물주는 법도 많이 안내돼 있는데 조금씩 다르다. 한 번 줄 때는 흥건히 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그냥 감질나게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처음엔 다육이가 너무 목말라 하는 것 같아서 물을 좀 많이 주었더니 견디다 못한 다육이 대여섯 개가 그냥 썩어버린 아픔을 겪었다. 마치 자식을 키우다가 잘못해서 죽게 하는 아픔 같은 것을 느꼈다. 시행착오 끝에 다육이 물주는 법은 이렇게 정했다. 잎이 좀 사들사들하거나 약간 쭈글쭈글해지면 그 다육이한테만 물을 주는 것이다. 일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두 번 식으로 기간을 정해서 주면 반드시 못 견디는 다육이가 나온다. 맞춤형 물주기다. 왜냐하면 다육이는 마른 땅에 생존하는 데 특화된 식물이기 때문에 통통한 잎에 필요한 물을 저장해 놓는 것이다. 마치 사막의 낙타가 반추위 하나에 물과 영양분을 저장하듯이. 그 후로 나는 수시로 다육이 옆을 지켜보면서 직접 잎을 만져보고는 약간 주름이 지거나 쭈글쭈글해지는 감촉이 있으면 소주잔 같은데 물을 담아서 살짝 살짝 주어 보는 것이다. 절대로 다육이가 과습하면 사람이 과음, 과식하는 것처럼 결국 잘못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 집 베란다에는 다육이 화분이 벌써 스물네 개나 된다. 그 종류는 열 개 남짓하다. 이제 이 다육이한테 영양제를 주는 법도 안다.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자주 줘도 안 되고 또 너무 소홀히 해도 안 된다. 이런 생명은 흙, 물기, 바람, 햇빛이 그 영양소다. 이 요소들이 알맞게 보충되고 특히 흙의 영양이 적절히 유지되면 잘 성장한다.

   나는 얼마 전에 내 카카오 톡의 이미지 사진으로 내 얼굴에서 다육이로 바꾸었다. 그 다육이는 내가 실수해서 부러뜨린 윗동이 안쓰러워 마른 흙에 옮겨 꽂아 놓았는데 일 년이 지나고 나니 뿌리를 내리고 충실히 자라 나를 기쁘게 해주었던 놈이다. 주인의 부주의로 부러졌을 때 참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었다. 평평한 화분에 이런 식으로 부러지거나 떨어진 다육이 잎이나 줄기를 더불어 심었는데 다 잘 자란다. 더구나 냇가에서 퍼다 온 모래흙에는 이름 모를 몇 종류의 풀씨가 숨어 있었다. 따스한 양지바른 베란다에 두니 그 풀씨가 싹을 틔워서 멋진 넝쿨 식물이나 봄풀로 자라서 그 아래 다육이를 보호하듯 멋지게 덮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참 좋은 그림이다. 그래서 내 이미지로 삼은 것이다. 우리 세상살이도 이렇게 부러져 힘든 존재에 대해서 때로는 그늘이 되고 때로는 친구가 돼 상생하는 모습이 됐으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이 어우러진 모습을 볼 때마다 한없는 위로와 행복감을 느낀다. 이제 내가 수술로 얼마나 이 다육이와 헤어져 있어야 할지 모르는 형편이 된다. 나 없이도 이 다육이 식구들이 스스로 잘 자라줄지 그게 큰 걱정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에서 집안에서 화분을 키울 때는 정말 살갑고 소중하며 키우는 보람을 느꼈는데 방랑승 체질인 당신이 집을 떠나 있어보니 그 소유가 불편한 집착이 되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제발 이 다육이 식구들은 그런 처지가 안 됐으면 좋을 것 같다.      2022. 1. 11.

 

[주(注)]

*이망무지로 : '에멜무지로'의 토박이 말. 그 뜻은 '결과를 바라지 않고, 헛일 겸 시험 삼아 하는 꼴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