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입원 첫날밤은 무사히 넘겼다. 밤새 간호사들의 출입과 각종 처치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드디어 디데이 1일, 내 긴장되는 마음과는 너무나 달리 한강 너머 먼 하늘은 무척 맑았다. 이럴 땐 겨울은 정말 강철로 된 무지개인가 보다. 종일 이어지는 검사와 처치로 내가 정말 수술을 앞둔 환자의 신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먼 미래를 내다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죽음이라는 그 순간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외의 어떤 목적이 있음직하게 의미 부여하는 것은 우리를 위안하게 함에 불과하다고 본다. 나는 처음 수술을 결정할 때를 다시 떠올려 본다. 나의 남은 내 생애, 그냥 버티면 완전 보행 장애자로 버려지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그래서 에멀무지로의 심경으로 수술 결정을 단행한 것이다. 이제 와서 물러설 수 없는 것이다. 가족과 주변에는 이미 선포했으니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런 의미로 일생일대의 결단이라고 감히 성격 지을 수 있다.
드디어 밤이 내렸다. 내일이면 그간 5개월 여 동안 대장정의 클라이맥스에 오른다. 정말 일생의 최고봉을 오르고 다시 내려오는 데 무사하길 기원해 본다. 그래도 구체적인 그 대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 내가 스스로 강하다고 믿는 여지가 있어서 그런가?
저녁 식사 후 수술 팀의 일원인 담당 여의사가 우리를 부른다. 수술에 대한 상세 설명이 있다고 한다. 아주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이 30분 이상 이어졌다. 척추 3,4,5번 뼈를 잘라내고 이 뼈 조각을 채워 넣는 것을 포함한 대체물을 삽입하고 나사못으로 고정한다고 한다.
아내와 같이 간호사실에 가서 설명을 듣고 수술 동의서 서명을 하려니 더 긴장이 된다. 특히 부작용이 문제가 된다고 내일 수술 팀 의사가 소상히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부작용은 지금까지 사례로 보아 100의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백의 1/2은 통계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제 병실로 돌아왔다. 앞으로 꼭 14시간 후이면 수술실로 출발한다. 주면에다가 나는 평생 입원 한 번 안해 보고 수술한 번 안 해봤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해댔던 게 생각난다. 혹 옆에서 아내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언젠가 한번 당신도 호되게 당하게 될 거라는 경고성 발언을 들은 적도 있다. 이제 내가 당할 시점이 다가 오고 있다. 아침부터 주치의가 와서 겁을 주더니 오후엔 간호사가 신경외과 척추 수술 안내문을 가지고 와서 또 겁을 준다.
수술 6,7시간 동안은 전신마취 상태, 총 시간은 8~9시간 남짓. 한 번도 겪어보지 않는 그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잠자는 상태, 꿈꾸는 상태, 아니면 살짝 죽은 상태일까? 오늘 밤 12시부터 물도 먹지 말라고 엄명이 내렸다. 수술 후 병동에 와서도 6시간 후에 물 마실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커피건 뭐든 맘껏 마시고 싶다. 거나한 최후의 만찬처럼 저녁을 한 끼 한다. 간호사, 전공의 등 몇몇이 이어서 내 다리와 발의 근력을 테스트 한다. 걸어 다녀 보라고 한다. 나는 있는 대로 힘을 다해 본다.
이어서 8시 좀 지나 둘째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수술인 걸 알고 위로 격려의 뜻으로 한 전화였다. 장장44분 긴 통화가 이어졌다. 아들과 아비의 이 곡진하기 짝이 없는 통화다. 혹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비장감도 저절로 깔려진다. 내가 수술 전반에 걸쳐 들은 설명의 요지를 전해 주었다. 막바지에는 만의 하나 혹여 내가 잘 못 될 수 있는 경우를 대비해서 이미 알고 있는 내 블로그 이름을 다시 알려주고 내가 가족을 비롯해서 주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거기에 다 담겨 있다고 강조해 주었다. 블로그의 콘텐츠는 끝까지 남겨두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내 생애깁기는 노트북 보안폴더에 다 담겨 있다는 말도 일러주었다.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도 다시 일깨워주었다. 이런 일을 다 마치고 나니 마음이 아주 차분해진다. 한강의 야경이 오늘따라 더욱 찬연하다. 밤경치만 보면 지금이 한겨울임을 인식할 수 없다. 내일 이맘때 쯤 저 야경을 다시 맞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다시 다잡았다.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야겠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블로그에 올릴 글을 짧게 올렸다. 그래도 내일 것도 두 줄 정도 작성해서 예약 포스팅으로 걸어 놓았다. 수술 후를 가상해서 남겨 보았다. 이제 낼 수술을 위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만 남았다. 잠을 푹 자야 할 텐데 하면서도 수술만 해도 9시간 가까이 된다니 잠자는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계산이 나온다. 그래야 내일 저녁잠을 한숨이라도 더 많이 잘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내 생애 가장 긴 밤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아내도 많이 긴장한다. 아내의 맑고 고운 얼굴을 한번 다시 보아 둔다. 2022.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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