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비로소 디데이다. 그냥 초읽기에 몰리는 심정이다. 새벽 0시부터 금식이라 물도 못 마셔서 입이 바싹 마르다. 한 시간 후면 나는 수술실로 이송된다. 수술 이후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본다. 미지의 삶이라 불안과 기대가 교차한다. 이런 느낌이 처음 방문하는 여행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
어제 둘째와의 전화 끝에 내일 아침 서로 시간 맞으면 통화하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메시지로 대체하는 게 옳을 것 같아서 이렇게 간단하게 보냈다. "둘째야……. 좀 있다가 7시 20분 수술실로 출발……. 아들! 수술 잘 받고 나올게……. 아마 수술 후 중환자실을 경유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너하고는 내일 오후라야 통화 가능할 것 같다.오늘 9시에 결정 된다니 어머니한테 전화하면 될 것 같다……. 그럼 잘 있어라……. 모든 게 잘 될 거야……. 우리아들도 파이팅!!!"
7시 20분 쯤 이송 담당이 왔다. 아내와 손 한 번 잡지도 못하고 별다른 이별의 인사도 못 나누고 황황히 실려 나갔다. 떠나면서 언뜻 스쳐 보이는 아내는 거의 울 듯 한 얼굴이었다. 가볍게 손 한 번 흔들어주었다.
한참 둘둘거리며 침대가 이동한다. 아마 3층인 듯했다. 어딘지도 모르는 데로 향한 통로가 긴 회랑을 따라 구비 구비 이어져 있다. 드디어 수술실 앞이다. 잠시 기다리더니 들어간다. 안은 모든 게 스텐으로 된 수술 기구의 차가운 정돈 상태 그대로였다. 환자 이송 담당자가 수술 잘 받으라고 하면서 나간다. 바로 수술실 관계자가 이제 좀 기다렸다가 8시에 마취를 하고 준비 과정을 거쳐 9시 쯤 수술 시작한다고 했다. 드디어 8시가 닥쳤다. 바로 마취 주사액을 주입하는 것 같았다. 또 내가 수면내시경 하던 때처럼 너무 각성돼 혹 잠이 안 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생긴다. 또 내가 기저귀를 안 찼는데 대소변은 어떻게 처리하나고 물었더니 마취담당이 마취되면 오줌 줄을 연결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후는 전혀 생각이 안 난다. 꿈도 없다. 잠도 아니다. 그냥 죽은 상태라 해야 맞다.
오후 5시 쯤 됐을까 뭔가 웅얼웅얼하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리려니 온몸은 옴짝 달싹할 수 없고 뭉개져 떨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에 진저리가 쳐 진다. 누가 와서 내 이름을 묻고 ‘정신이 드느냐, 여기 어디냐, 오늘 며칠인가’ 하고 몇 가지 질문을 한다. ‘두 팔 들어 만세를 해보라, 오른 발, 왼발을 움직여보라고’도 한다. 이런 하나하나의 행동 뒤에는 극심한 통증이 뒤따랐다. 팔다리는 약간 움직일 수는 있었다. 무릎을 굽힐 수도 있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문득 먼저 중환자실을 거쳐 간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났다. 말도 못하시고 그 긴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나머지 활동은 통증 때문에 움직이라고 해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드디어 수술이 끝나고 이렇게 깨났구나' 하는 생각만이 들었다. 언제 병실에 올라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내일 오후는 돼야 하는데 상태에 따라 하루 더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자세로 여기서 20시간 가까이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니 공포와 절망이 엄습해 왔다. 문득 이럴 것 같았으면 이번 수술 결정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자책과 후회의 감정이다. 수술 이후의 결과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지금 현재 내게는 전혀 위로나 희망이 안 된다. 이건 내 일생일대의 실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간호사가 다가왔다. 주로 시간을 물었다. 목은 타들어가지만 수술 이후 6시간 금식이라면서 물 한 방울 주지 않았다. 몇 차례 요청했지만 보고한 후 조처해주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물론 잠이 올 턱이 없었다. 현재의 미증유의 통증이 모든 걸 빨아들여버리는 거대한 블랙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교대시간이 돼 간호사가 바뀐 것 같았다.
다시 물을 요구했다. 또 보고해 보겠다고 한다. 그놈의 보고란! 입안이 건조해져서 급기야 혀가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뭔가를 물어서 대다할 때 내가 생각해도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를 것 같았다. 간호사들은 그래도 내 말을 다 알아 듣는 게 신기했다.
밤 10시가 지났다. 이제 4시에 수술 끝났다면 물을 먹어도 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항변을 했더니 또 말씀 드려보겠다고만 반복한다. 그런데 바로 옆 침상에는 텐트 같은 뭔가를 설치했다가 해체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듯하며 다수의 간호사가 여기에 활기차게 동참하는 것 같았다. 설마 여기서 텐트 판매 매장을 차리지는 않았을 거고……. 그런데 목을 침상에서 뗄 수 없는 입장이니 도대체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내 마음 속에 이 지옥의 시간 14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하는 거였다. 그나마 오아시스 같은 것은 내가 요청할 때마다 좌, 우, 중앙으로 자세 변경을 도와주는 것이다. 살짝 달리했음에도 놀랄 만큼의 기분 전환이 되는 것이 놀라웠다. 또 다시 간호사가 바뀌었지는 모르지만 뭔가 상황이 달라져서 다른 간호사인 듯 한 관계자가 다가오기에 또 물 요청을 했더니 “줘도 되나요?” 하고 옆에 묻는다. 나는 이제는 물, 그 구원수를 마실 수 있나 기대가 된다. 나도 또 6시간 벌써 지난 것 같은데 제발 달라고 간청했다.
사람에 대한 고문 중에 가장 잔인한 게 이 물 안 주는 고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 박총철에 대한 물고문과는 정 반대다.
어렸을 때 그리스, 로마를 배경으로 한 사극 영화에서 주인공이 적국에 잡혀서 뭔가 항복을 강요당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 목이 타는 듯 한 극심한 갈증을 이용해서 항복을 강요하곤 한다. 물을 흘리면서 물을 주지 않는 방식이었다. 차라리 그 갈증을 악용해서 하는 고문 같은 상황에서 옆으로 물이라도 흘려 내리지 말 것이지 주인공은 온 힘을 다해서 혀와 입술을 빼내면서 한 방울의 물 기운이도 맛보려고 거의 짐승 같은 모습을 한 게 떠오른다. 그렇다. 나도 여기서는 어쩌다가 적에게 부상당하여 죽어가면서 괴로워하는 짐승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리 야생 늑대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물은 주지 않았지만 내가 거듭 호소하자 생수를 적신 거즈뭉치는 몇 번 입에 넣어주었다. 처음에 물 한 방울이라도 체내 들어가면 잘못될까 싶어 애서 입술에만 물고 있었는데 이빨로 살짝 물어보니 물기가 조르르 흐른다. 혀로 미끄러져 목으로 흘러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미세한 한 방물 수분도 들어가니 순간 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거즈가 입안에 들어오면 이빨로 잘근잘근 물어서 수분을 짜내 먹었다. 그 수분도 제법 되는 것 같았다. 이만만 해도 살 것 같았다.
드디어 물이 공급됐다. 신천지를 만난 것 같았다. 고개를 옆으로 해서 기도로 넘어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많이 마셨다. 살 것만 같다. 간호사에게 옆에 몇 차례 뭔가 설치하고 철거하는 게 뭔지 물어봤더니 투석 작업이라고 했다. 중환자실이니 이런 처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래도 잠이 안 온다. 잠만 푹 들어버리면, 아니 단 10분이라도 잠 들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괴로움을 극복하려는 나의 노력은 지금도 째깍째깍 시간은 흘러가니 언젠가는 내일 오후 1시든 2시든 온다는 사실만을 계속 떠올린다. 거의 필사적이다. 그 외 내 생애 지난 날 있었던 많은 기억들 떠올리기, 물마시기와 자리 고치기로도 기분전환이 돼 살 것만 같다. 그냥 누워있으면서 그 기대감 유지하기로 버텨본다. 어떻게 새벽까지 내가 그렇게 죽기 살기로 버텼는지 참 불가사의다. 2022.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