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내 생애의 가장 긴 날 4

청솔고개 2022. 2. 10. 21:10

 

                                                                                                                           청솔고개

   죽음이 차라리 나을 뻔 했던 시간도 결국 흘러간다. 병실에 와서 첫날 밤, 밤새 한 잠도 못 잤다. 40시간 동안 10분 정도 잠 든 셈이다. 내 생애 대 기록이다. 어지럽고 기억도 몽롱하고 시간의 전후도 혼란이 된다. 밤새 애꿎은 아내만 귀찮게 했다. 어디 살짝 다녀온다고 해도 그냥 못 가게 했다. 아내한테 간청도 하고 짜증도 내고 큰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다. 전전반측(輾轉反側), 왼쪽으로 한 두 시간, 가운 데 한 두 시간, 오른 쪽으로 한 두 시간 잠자리 자세를 아내한테 부탁하는 게 밤새 내가 한 일이었다. 등을 뚫어서 수술부위와 연결된 피 주머니도 여전하다. 흡사 IS의 성전 전사 차림 같다.

   그래도 새벽은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 내가 비로소 통증과 침상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는 날이다. 빨리 날이 밝기만을 고대했다. 옆 병상 환자에 대한 배려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담당 의사가 왔다. 오늘 아침 식사 후 보조기를 착용하고 앉는 연습부터 한다는 것이다. 드디어 내 시간이 왔다. 다른 간호사가 보조기 착용은 점심시간 이후일 듯 한 말을 툭 던진다. 보조기 착용이 일순이라도 더 연장된다는 것은 내게는 청천벽력이다. 그래서 다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착용하게 해달라고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측은한 표정을 지어 간청하고 또 재촉했다. 아침 8시 좀 지나 담당의사가 회진 왔다. 의사가 오늘 아침 식후 보조기 착용한다는 걸 분명히 선언했다. 주치의의 말의 권위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때만큼 의사가 고마운 존재로 인식된 적은 없었다.

   드디어 담당 간호사의 도움으로 보조기를 착용해 보았다. 많이 어색하고 어떻게 적응하고 사용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화장실에도 살짝 가보고 워커 보행기를 잡고 복도도 걸어보았다. 이상하게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럽다. 진땀도 난다. 바로 들어왔다. 그래도 이제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살 것만 같았다. 오늘 아침까지 누워서 아내가 먹여주는 밥을 먹었는데 점심때는 내가 앉아서 밥을 먹었다.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준다.

   며칠 동안 미루어 두었던 몇몇 친구들에게 답신 전화를 했다. 나의 고통의 시간을 기억해 준 이 친구들에게 진정하게 감사하다. 그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병실의 하루도 저물어 간다. 얼어붙어 하얀 눈이 덮인 한강을 몇 장 폰에 담아 두었다. 훗날 나의 소중한 추억의 한 장이 될 것이다. 절체절명의 지극한 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이제 진정으로 살아난 것이다. [2022. 1. 20.(목)의 기록임]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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