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2월에는

청솔고개 2022. 2. 13. 21:51

                                                                                                    청솔고개

   사람이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나는 요즘 나날이 그걸 실감하겠다. 몸의 쇠퇴도 문제이지만 마음이 늙는 게 슬픈 일이다. 그 늙음의 증좌로 세상과 삶에 대한 호기심, 관심, 기대감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걸 느끼겠다. 젊은 시절에는 가슴을 뛰게 했거나 파안대소하게 하던 일, 눈물을 흘리거나 분개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던 일이 이제는 어차피 그러려니 하면서 시큰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감동이나 공감의 강도가 점차 줄어드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젊은 시절에는 그걸 흔히 혈기, 결기, 혹은 청춘의 힘이라는 말로도 표현되기도 한다.

   평생 내 마음의 불편,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이러한 가슴 뛰게 하는 감성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틈만 나면 1년 전 혹은 2년 전, 아니면 10년도 더 전에 내가 어떤 감동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었던가, 알고 싶어서 그 때의 기록을 들춰보기도 한다. 기록을 통해서도 그러한 감동, 감성이 현저히 감소함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감성이 죽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심해 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마음 들여다보기 위한 글쓰기, 음악 듣기, 여행, 산행 등 다양한 노력을 해 보아도 그 한계는 극복하기 힘 들것 같다.

   몸의 힘이 떨어지는 것 못지않게 마음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은 나의 우울 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젊은 시절 고비마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마음의 위기를 맞닥뜨리더라도 그 이후마다 희한하게도 더 큰 호기심, 감성, 감동의 물결이 몰려와서 이를 극복하곤 했었다. 여태까지의 내 삶은 그렇게 해서 유지된 것 같다. 10대 중반의 첫 위기는 실체를 알 수 없었던 종교단체 가입으로 인한 영적 체험으로, 이후 10대 후반에 밀려온 정신적 위기는 대학 입학 달성으로 견뎌낸 것 같았다. 대학 생활에 대한 적응위기는 대학생활 자체에 대한 기대감과 낯섦으로 이겨냈다. 타향 생활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 낯선 환경에 대한 신선함으로 극복했었다. 또한 매 학년마다 불어 닥치었던 우리나라 현대사의 대사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발 디딤과 눈뜸으로 버텨냈었다.

   대학 4년 말에 자초한 미증유의 복합적이고 개인적 위기는 졸업과 신임교사 임용이란 개인사로 돌파해 나갔었다. 그 후 짧은 현직 교직생활에서의 실망감은 군 입대로 각각 헤쳐 나가곤 했었다. 실로 위기라는 말이 위험과 기회로 이루어졌다는 말이 실감난다.

   살아오면서 해마다 2월이면 나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마음이 들떠진다. 이제는 그러한 근무지나 근무처의 이동, 보직의 변경, 새로운 동료나 아이들의 만남의 기대와 설렘은 없어진 지 오래됐다. 다만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올해 다가 올 새 봄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 것인가 하는 기대감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올해 버들강아지는 언제 눈을 틔울 것인지, 올해 매화, 생강나무, 산수유는 언제 희고 샛노란 꽃망울을 피울 것인지 하는 기대가 있다. 올해 얼음은 언제 녹아서 산속 개울물은 졸졸 소리를 낼 것이며 그 개울물 속에 개구리는 언제 기지개를 켤 것인지도 궁금하다. 매년 가던 남산 골짜기의 도롱뇽 알이 올해도 잘 부화해서 그 새까만 눈을 구경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이제 그러한 기대감은 아랫대로 이어진다. 딸 내외도 2월이 되면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온갖 발표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루하루 설레는 모습을 지켜본다. 나도 그런 것이 사람 사는 일이라는 걸 이제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내게 마지막 이러한 계절에 대한 작은 기대나 설렘마저 몽땅 사라져버린다면 나는 또 어떻게 남은 생을 영위해야 할 것인지 고심하게 될 것 같다.

   아무래도 내게 마지막 남은 한 줌의 기대나 설렘마저도 증발해 버리는 날이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해마다 2월이 오면 내 마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게 된다.  2022.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