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6(농막의 봄, 2012. 3. 31.~2012. 4. 15.)

청솔고개 2022. 3. 21. 21:27

                                                                                                                            청솔고개

2012. 3. 31. 토. 맑음

   오전에 세차를 하였다. 마음이 좀 개운해진다. 뜰의 목련나무에 꽃망울이 맺힌다. 꽃을 보아도 아름다움과 기쁨을 모른다면 내 마음은 도대체 어찌 되어가는 걸까. 점심 때 아내의 권유로 동생 농막을 찾았다. 우리 형제가 왜 이리 되었는지. 새삼스레 처지와 신세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동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아직 제 앞가림하기엔 좀 부족한 듯하다. 내가 빨리 채워 넣어 주어야 할 텐데. 인근 식당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씩하고 형제의 우의와 관계를 확인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큰집에 들렀다. 두유와 보리빵 한 통을 사들고 갔더니 좋아하셨다. 어머니께서 나를 보시더니 울먹이셨다.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다. 손을 잡아드렸다. 아버지는 건재하시다. 동생 근황과 농지원부 건을 말씀드렸다.

 

2012. 4. 3. 화. 갬

   돌풍, 강풍이 무척 심하다. 집에 오니 아내가 동생 농막이 걱정이 된다고 하면서 같이 가보았으면 하는데 내가 술을 마셔서 갈 수 없으니 내일 새벽이라도 가보았으면 했다. 아내가 동생에게 신경 써 주어서 내심 고마웠다.

 

2012. 4. 7. 토. 맑음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근처 식당에 가서 고디국 식사 대접해 드렸다. 계속 마음이 어둡다. 또 슬프고 절망적이다. 두 분을 동생 농막에 모시고 갔다. 동생은 안 보인다. 요즘 동생이 농막 일에 마음이 불편한 것 같다. 농막 일의 지속 가능성이 좀 흔들리는 바람에 내 마음도 더욱 힘들어지는 것 같다.

 

2012. 4. 15. 일. 맑음

   어머니를 모시고 꽃놀이 갔다. 솔직히 어머니께서 내년 꽃놀이를 꼭 보신다고 장담할 수 없지 않는가. 못으로 가는 길이 벚꽃천지였다.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차가 많이 막히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벚꽃 정취를 만끽하시도록 해 드렸다. 참 좋아하셨다. 일단 빠져 나와서 돌아오는 길에 있는 유명 보리떡 집에 가서 떡을 사고 난 후 다시 들어갔다. 꽃나무 그늘 밑에서 잠시 방석 깔고 앉아서 조용한 시간도 가졌다. “어머니! 꽃이 좋지요?” “그래, 좋다마다!” 정말 좋아하셨다. 이 아름다운 봄 풍경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생각하니 마음이 애잔해진다. ‘엄마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사세요. 누가 뭐래도 말예요.’ 나는 속으로 빌어보고 되뇌어 본다. 만개한 꽃들이 눈처럼 지는데 소리도 없다. 오후 3시의 역광의 광휘가 그 찬연한 종말을 더욱 비장하게 한다. 엄마와 같이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니 이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한 순간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의 가장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꽃을 배경으로 많이 찍어 드렸다.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을 두 번씩이나 왕래하면서 원 없이 꽃그늘에 묻혀 있다가 농막에 나갔다. 어머니는 아직도 동생에게 마뜩하지 않은 기색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어머니의 시선에 동생의 표정이 변하는 것 같아서 내가 안절부절못하겠다. ‘제발 엄마 그만 하세요.’하고 속으로 소리친다. 동생도 그 눈치 정도는 있지. 같이 식사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신다. 이래선 안 되는데. 우격다짐으로 동생과 같이 순두부 식당에서 저녁 식사하고 헤어졌다. 가슴이 아프다.    2022.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