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지팡이 유감(有感)

청솔고개 2022. 5. 2. 23:15

                                                                                                             청솔고개

   나는 대략 2,3년 전부터 지팡이를 자주 이용한다. 척추관협착증으로 하초에 힘이 빠지고 중심 잡는 게 힘들어져서 보행과 안전을 위함이다. 척추관협착증 수술 이후는 허리, 배, 등짝까지 두른 보조기와 함께 나의 보행의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보호 장구인 셈이다. ‘지팡이’는 ‘걸을 때에 짚는 막대기’란 뜻을 지녔고, ‘짚다’의 ‘짚-’에 ‘-앙이’가 붙어서 굳어진 낱말이다.

   나는 수술 전후 벌써 4개월 동안 차 운전과 자전거 타기를 못하니 요즘 유일한 이동 수단은 ‘걷기’다. 그것도 지팡이를 짚어가면서 느릿느릿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걷는다. 지난날부터 “불편한 게 결코 아니다. 다만 천천히 갈 뿐이다”라고 하는 어떤 장애자의 외침을 늘 마음속에 새기며 한 걸음, 한 걸음, 구도하듯이, 명상하듯이, 아가가 걸음마 연습을 하듯이 몇 년을 견뎌온 셈이다. 내가 지팡이를 이용하니 자연스레 주변에 나처럼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싶어서 둘러보는데 왠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참 희한한 일이다. 각종 교통표지나, 안내에도 지팡이 짚고 있는 사람을 디자인해서 장애자나 노약자로 상징하고 있는데 정작 지팡이 짚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안 보인다. 물론 산행 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른바 등산용 스틱을 사용하고 있는 산꾼들이 더러 보이기는 한다.

   왜 노인들이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을까? 일일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사회 생활하면서 지팡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주변에서 노약자 취급 받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이나 인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른바 노인 취급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지팡이 신세 질 그런 인간이 아니다.”하는 자기 신념에 충실하려고 하는 듯하다. 그런데 내가 지팡이 애호가가 돼 보니 이런 허세는 결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불필요한 행동 같다. 지난날 나의 부모님 경우에도 지팡이 사용을 경로당 출입과 함께 극히 기피하시려는 모습을 접하고 왜 그러실까 하고 이해가 안 됐는데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이 되고 보니 조금은 짐작이 된다.

   지난날 한 때는 노인은 그 사회에서 지혜와 권위의 표상이었다. 내가 10대, 20대만 해도 그랬다. 그 시절은 마을의 어른으로서 정신적인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느 어느 어르신께 여쭈어 보라,”하면 대개 원만히 해결되었었다. 지금은 어찌하여 노인의 위상이 이리됐는가. 심한 표현으로 천덕꾸러기, 아니면 뒷방 늙은이의 시선으로 사회에서 노인을 보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된다. 그 시절 마을의 노인은 괴춤이나 등짝에 꽂은 장죽(長竹)의 길이로서 그 노숙(老熟)함의 정도를 표출했었다. 어쩌다가 마을의 망나니 같은 인간도 가장 긴 장죽을 꽂은 어른을 만나면 그냥 넙죽 엎드리곤 하는 것이었다. 마을의 질서와 기강은 이렇게 저절로 확립되는 것이다. 요즘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일일이 법이나 송사에 의존하기 앞서 대개 이런 식으로 해결되는 것이었다. 혼탁한 물도 큰물을 만나면 스스로 자정작용(自淨作用)으로 맑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요즘 나의 지팡이로써 여러 군데 긴요하게 사용하고 있다. 일단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가면 아무리 급한 차량도 거의 99% 기다려준다. 노인의 교통안전망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난폭한 성향을 가진 운전자도 지팡이 짚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노인을 지나치지는 못하는 것이다. 또한 버스에 오를 때 더욱 그 위력을 발한다. 지팡이를 짚고 버스 에 오르면 청장년들은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닌 딴에는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나는 심하게 흔들거리는 버스 간에서도 이렇게 허리 수술 뒤끝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아직 우리에게는 지난날의 미풍양속이나 미덕의 한 편린이라도 볼 수 있어서 흐믓하기도 하였다.

   하루빨리 지난 시대의 청려장(靑藜杖) 하사(下賜)나 기로소(耆老所)와 같은 풍속, 인식이 전승, 보편화되어야 뒤틀어진 가치관을 곧게 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2022.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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