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일의 철학 1

청솔고개 2022. 12. 19. 00:12

청솔고개

    나는 지금 현직에서 나온 지 9년 째 접어 든다. 퇴직 둘째 해에는 한수원 창고 정리 계약직에 5개월 가까이 일했었다. 그 일은 내 평생 종사한 교직의 일과는 아주 다른 색다른 체험이었고 나에게서 일과 삶을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다음해부터 작년까지 6년 동안은 교육지원청의 학업중단위기학생을 위한 맞춤형 상담활동을 하였다. 이 일은 나에게 내 생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내가 내 마음으로써 어떤 마음에게, 그 누구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였다. 새로운 세계였다. 깊게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탐구하는 이상심리학(Abnormal Psychology)의 기본인 ⁰DSM-5영역 350여개 정신장애 목록에서부터 얕게는 일상생활 라이프 사이클까지 아우르는 일이었다. 아쉽게도 올해부터는 그 사업이 다른 방식으로 바뀌게 되어 본의 아니게 손을 떼게 되었다.

    현직에 있을 때는 다음 날 한 주가 시작된다고 해서 일요일 오후가 가장 부담스러웠고 금요일 오후만 되면 주말을 맞이한다는 기분에 마냥 들떴었다. 일이 없는 지금, 나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또한 내일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처리해야 할 과제가 더러 생긴다.  예컨대 법무사 사무실이나 시청, 법원 등기계 출입하여 업무를 봐야 할 경우, 집수리를 위해 업체와 조율할 일 등등에는 상반된 두 가지 방식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하나는 일을 착수한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워 최대한 미루는 양태이며, 다른 하나는 그러다가 더 늦어지면 어떡할까 하는 위기감이 엄습하여 허겁지겁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일단 그러한 일에 빠져 들면 최대한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삶의 에너지까지 충전됨을 깨닫게 된다. 마치 자동차가 운행하면서 배터리를 자가 충전하는 것과 흡사한 이치다. 우리의 일에는 이러한 알 수 없는 힘과 매력이 잠재돼 있다. 일 수행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2022. 12. 19.

 

[주(注)]

⁰DSM-5 :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은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PA)에서 발간한 책자이다. 이 책자의 목적은 인간의 심리적 증상과 증후군을 위주로 정신장애의 분류체계를 확립하여 진단, 치료, 경과 과정, 예후 등을 보다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적용하려 한 것에 있다. [김청송, 사례 중심의 이상심리학(경기도: 싸이북스,2017),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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