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아버지 2021, 3

청솔고개 2022. 5. 5. 22:57

                                                                                                             청솔고개

   2021. 6. 11. 가끔 아버지나 병원과의 통화는 내게 현실감을 깨우쳐주어서 자그마한 내 존재 이유라도 각성시켜주는 것 같다. 내게 만약에 가족이나 주변 아는 사람이 하나 없다면 나는 벌써 많은 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내 존재의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 돌봄 일이다. 이 과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 단계에서 남미 안데스와 파타고니아 방랑 후 필생의 역작 한 편 남기고 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허나 자꾸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서 그러한 절망감에 내가 저려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아버지 간식은 집에 있는 과자나 건강보조식품으로 마련했다. 병원에 전해주고 큰집에 가서 동생 냉장고에 상추와 젓갈, 음료 등을 넣어 놓았다. 피아노 있는 방에 가서 아버지의 현충일 리본, 국가유공자복장, 바디, 장죽 등을 폰에 담아 왔다.

 

   2021. 6. 21. 오후 한 시 지나서 요양병원에 가서 아버지 입원확인서를 뗐다. 바로 옆 시의 면허시험장으로 갔다. 가다보니 2년 전 2020. 1. 9. 무척 추울 때 아버지를 모시고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아버지께서 수시적성검사를 통과하시고 무척 좋아하시면 자신 있으셔 하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돌아오는 길은 오어사, 기림사 길로 해서 왔다. 당시 아버지도 나처럼 이런 길을 참 좋아하신다고 생각했었다. 기림사에 들어가서 좀 걸으시다가 심하게 느껴지는 추위와 기력이 달려서 그냥 바로 차에 오르셨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벌써 조금씩 자신감을 잃으시고 계시는 것이었다.

   아버지 운전면허 10년 적성검사 연기 업무는 담당자가 아주 친절하게 잘 처리해 주었다. 오는 길은 오랜 만에 양포 앞 해변 길로 해서 왔다. 내비게이션 목적지 **랜드펜션까지는 아주 가까웠다. 그런데 그렇게 절경이었던 이 해변은 ‘** 수산’이라는 간판이 달린 창고 같은 건물이 점령해 버렸다. 가뜩이나 다리 저림이 돌발해서 힘드는데 아래까지 확인해 볼 여력이 없어서 아쉬운 마음 두고 바로 다시 출발했다. 포구 뒷길로 해서 터널 지나 산행 입구에 도착하니 5시 40분 쯤 됐다. 차 안에서 준비해간 밥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오늘은 또 어떤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몇 번이나 허리 젖힘을 해야 숲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결국 20번 젖히고야 가까스로 숲에 도착했다. 108을 셌다. 오늘은 이 나만의 명상, 그냥 바람처럼 스쳐가듯 108을 셌다. 숲 저녁의 청청한 기운이 나를 휘감는다. 다시 산비탈길 8분 정도해서 갈림길 지나 내려왔다. 선선한 산 저녁바람이 상쾌하다. 어둠살이가 내린다. 이럴 때가 참 좋다. 특히 산과 들에서.    2022.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