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1. 4. 22. 새벽부터 또 아버지가 전화를 하신다. 아버지께서 오늘 병원 외출에 많은 기대가 있으신 걸 짐작하겠다. 충분히 안심시켜 드리고 3시 정도 병원에 간다고 말씀드렸다. 아침 8시 30분 지나서 내가 접수하러 시내 피부과의원에 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일단 접수는 해 놓았지만 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집에 와서 좀 쉬었다가 둘째한테 연락도 오늘 도와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새벽부터 오전까지 아이의 상담 종결 후속작업으로 마음과 몸이 다 바쁘다. 어쨌든 2회기 먼저 종결하니 여유가 있어서 좋다.
2시 좀 지나 둘째를 만났다. 병원 주차장에서 전화했더니 간호사가 아버지 모시고 나온다. 아버지 얼굴의 살이 많이 빠지신 것 같다. 둘째가 아주 살갑게 아버지한테 인사를 드린다. 이번엔 엘리베이터가 있는 다른 피부비뇨기과에 갔다. 내가 전에 다니던 곳이다. 요양 병원측에서 휠체어를 사용하게 해 준다면서 생각 없이 그냥 가져가 버려서 경황 중 따질 수도 없었는데 주차장에서 병실까지 양 옆에서 부축하니 좀 걸으신다. 다행이다. 진료까지는 많이 기다렸다. 의사는 정신적인 요인, 신장 안 좋아서 , 혹은 어떤 독소 작용 등을 그 원인으로 거론한다. 일단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처방받았다.
아버지께 어딜 바람 쐬러 교외 드라이브 하실까 여쭈었더니 큰집에 한 번 가보자고 하신다. 거의 10달만의 잠깐의 귀가(歸家)이시다. 마당이 깨끗이 치워져 있어서 좋다. 바로 피아노 있는 방에 들어가셔서 이별의 노래, 낙화유수 등의 멜로디를 쳐보신다. 안경을 가지고 오지 않아 악보가 잘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하신다. 마당에 나와서 남쪽 벽 위쪽에 그린 사람 얼굴, 해 달의 벽화를 당신께서 그린 것 맞나 되려 하고 물으신다. 내가 아버지 외에 누가 여기 그림 그리셨겠느냐, 하고 말씀 드렸다. 그래도 내가 아버지 당신 안 그린 것 같다고 하신다. 아버지께서 피아노 치는 장면 포함 이 장면을 좀 폰에 담아 두었다. 언젠가 내가 사무치게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이것을 꺼내 보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먼저 가신 어머니처럼.
드디어 병원에 다시 들어갈 시간. 가로수가 신록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아버지께 자주 보시라고 권해드린다. 다시는 못 나올 것은 아니지만. 오늘, 내일을 알 수 없는 게 구순(九旬)의 나이 아니신가. 주차장에 도착해서 연락했더니 병원 측에서 모시러 나왔다. 휠체어 타고 이동하는 경황 중에 둘째가 제 할아버지께 이별의 인사라도 제대로 한 것 같지 않다. 나도 병원 원무과 접수처에서 서류 꾸미는 그새에 아버지가 안 보이신다. 일견 서운함이 밀려온다. 어쨌든 탈 없이 병원에 복귀하셨으니 다행이다. 모든 상황에서 볼 때 아버지의 외출에는 불안해 지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집에 와서 비빔면으로 식사 같이했다. 아이보고 “오늘도 수고 많았다. 고맙다. 너 덕택으로 내 인생 과제 하나 해결한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2021. 5. 7. 오늘 아버지 면회하러 10시 15분 쯤 둘째 태워서 요양병원으로 갔다. 오늘 장날이라 골목이 무척 복잡하다. 겨우 차 대 놓고 휠체어 내려서 면회실 앞에 갔다. 아버지는 벌써 나오셨다. 얼굴이 무척 초췌하시다. 그런 아버지의 인상이 신기하고 희한하게도 영락없는 할머니 모습이다. 방문 기록하랴 아버지와 대면 인사 하랴 마음과 몸이 많이 바쁘다. 아내는 아버지 모습을 뵙더니 또 울먹인다. 아버지는 또 몸 가려운 것 호소하신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처럼 그냥 들어드리는 것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아버지의 말씀 중 매일 매일 매 순간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는 말씀이 내 가슴을 때리는 것 같다. 그래도 내일 어버이 날 맞이해서 꽃 한 송이라도 드릴 수 있고 휠체어도 일단 들여 놓아서 마음의 여한은 없는 것 같다. 허락된 10분, 너무 짧다. 아버지는 손을 강화유리 사이 틈을 향하여 집어넣어 잡으시려 한다. 전번에도 그랬지만 오늘은 그 모습이 더욱 절절해 보여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장날 골목을 억지로 빠져 나와 모처럼 셋이서 교외 못가를 드라이브를 했다. 향토 시인 시비가 있는 전망 좋은 언덕 아래에는 가득 찬 호숫물을 배경으로 이팝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시내 가로수로 만개한 이팝꽃과는 또 다른 꽃의 아름다움 발견이다. 아내는 내내 갇혀 있다가 모처럼 바깥바람 쇤다고 그런지 감탄사 연발이다. 하얀 새 한 마리가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저 새가 우렁이도 먹을 것 같다고 하니 둘째는 못 먹을 같다고 주장한다. 문득 어느 한 해, 오월의 하늘 아래 셋이서 잠시 거닐었던 그 한 순간의 추억은 삶의 찬연한 섬광처럼 남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순간을 제법 회상하게 되는 것이다. 한 십 여분 쉬었다가 다시 못 둘레 길 드라이브 하고 난 뒤 횟집에서 식사 같이 했다.
도서관에서 책 반납, 대출 후 나오는데 갑자기 허망감이 엄습한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한다. “내 마음을 내가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 강렬함. 나는 분명 지니고 있다. 이런 마음의 절망 상태도 살짝 뒤집으면 큰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종이 앞뒤 뒤집듯이. 이런 모든 그 순간 마음의 세밀한 기록으로만 남길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고 그것만이라도 살아가는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숲에서 도로고 나오니 햇살이 찬연하다. 내 마음은 언제, 저 햇살처럼 찬연해질까. 2022.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