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9개월 7일 만의 만남 2/ 한 노승(老僧)이 초승달을 깔고 앉아있고 그 위로 둥근 박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해와 달 같기도 한 게 두 조각 나 떨어져 하늘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솔고개 2021. 4. 1. 16:15

9개월 7일 만의 만남 2

                                                                          청솔고개

   좀 전에 아버지 면회를 마치고 돌아 나오면서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눈매가 사뭇 잊어지지 않는다. 우리 사남매는 근처 콩국 집에 가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누이동생들에게 식사 후 큰집에 가보자고 해서 같이 갔다.

   누이동생들은 참 오랜만에 큰집을 찾는다. 큰집에 내 바로 밑에 동생이 기거한다고는 하지만 아버지 부재의 큰집은 빈집이나 마찬가지다. 누이동생들은 아침 면회 때 아버지 손도 한 번 못 잡아드린 데 대한 아쉬움을 혹 큰집에 남아 있을 아버지의 흔적으로 달래려고 하려는 것은 아닌가 싶다. 누이동생들은 큰집 마당과 방안을 둘러보면서 “이게 아직 여기에 있네. 이건 엄마 쓰시던 수건…….” 하면서 아버지 엄마에 대한 기억을 애써 붙잡으려는 듯하다. 서쪽 갓방 벽에 테이프를 찢어 붙인 걸 보고 아버지의 독창적인 표현에 대해 신기해하고 화제로 삼기도 한다.

 

   특히 마당 앞쪽 담벼락에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한 노승(老僧)이 초승달을 깔고 앉아있고 그 위로 둥근 박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해와 달 같기도 한 게 두 조각 나 떨어져 하늘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특별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나중에 아버지께 꼭 여쭤보고 싶다. 꽃밭 가장자리에는 아직 독이니 화분이 그대로 널려 있다. 막내 누이동생에게 큰집에 온 기념으로 뒹굴고 있는 사기 화분 하나를 건네주었다. 친정아버지 정표(情表)라도 삼으라는 뜻에서였다. 또 첫째 동생에게 부탁해서 재작년 묵은 쌀 한 포대기를 막내 누이 차에 실어주도록 했다. 친정아버지 어머니도 없는 친정에 오면 딸네들은 얼마나 쓸쓸하고 마음이 허전할까 싶다. 내가 누이동생들에게 이래라도 마음을 쓰니 안온해진다. 누이동생들이 빈집에서 친정어머니 아버지의 남은 온기라도 좀 느꼈으면 좋겠다.

   이제는 우리 사남매가 헤어질 시간이다. 나는 누이동생들의 손을 잡으면서 오늘 와줘서 고맙고 조심해서 잘 가라고 떠날 인사말을 전했다. 동생을 태워주고 집으로 향하려는데 큰 누이동생한테서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하니까 어머니 계신 묘원의 지번을 알려달라고 한다. 오늘 온 김에 산소(山所)에 들러서 어머니 뵙고 가겠다고 한다. 내가 가겠다고 하고 앞에서 묘원 가는 길을 선도했다. 가는 길은 안태고향 마을을 지난다. 이 안태고향마을이 두 누이동생들에게는 참 오랜 만의 방문일 것이다. 나중에 누이동생들에게 마을 지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어본다는 게 그만 잊어버렸다.

   두 누이동생들이 그래도 제 엄마를 잊지 못하고 찾아뵈려는 마음 씀이 가상하다. 어머니 산소 서쪽 소나무 숲 밑에는 진달래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두 누이동생들은 생전에 엄마가 꽃을 참 좋아하셨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맘껏 꽃을 볼 수 있으니 정말 잘 됐다고 한다. 생전의 어머니 마음을 잘 헤아려드리는 딸내미들이다. 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달래를 가리키면서 한 송이 꺾어서 놓아드리라고 하니 둘레가 모두 꽃밭인데 꺾어 드리는 것보다 고이 놔두고 그냥 보시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한다. 누이동생들의 생각이 참 깊다고 느꼈다.   [2021. 3. 23. 화. 맑음]   2021.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