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청솔고개
오늘도 산행 가는 길에 중간에 병원에 들러 아버지께 드릴 간식을 챙긴다. 부드러운 카스텔라 빵, 건빵, 초콜릿 등 아버지께서 평소에 좋아하시거나 특별히 원하시는 것들을 종이 가방에다 담고 겉봉에 아버지 병실 호실과 성함을 굵은 펜으로 적었다. 봉지를 테이프로 두 군데 봉한다. 혹 기울어지면 쏟아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구나 하는 자괴감에 잠긴다. 그러면서도 이걸 받아보시면서 기대하실 아버지의 표정보다 아버지가 순간순간 엄습하는 답답함과 외로움을 어떻게 감당하고 계실까 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나도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를 못 뵌 지도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아버지는 당신의 기준으로 볼 때 지금의 상황이 거의 감옥 생활이라고 여기신다. 처음 병원에 드셨을 땐 거의 하루에 한 번은 기본이고 심할 때는 대 여섯 번 이상 전화를 하시었다. 전화 내용인즉 거의 고정돼 있다. “병원에서 제대로 진료해 주지 않는 것 같다. 의사에게 어디 아프다고 해도 귀 기울이지 않고 건성으로 빙긋이 웃기만 하고 제대로 진료해 주지 않는다, 모든 건 보호자가 요청해 와야 한다고 한다. 간호사들이나 간병사들이 너무 불친절하다. 그래서 마음이 미칠 듯이 답답하다. 밤에는 거의 잠을 이룰 수 없고 통증이 더 심해져 다시 바깥 병원에 가서 입원해서 진료 받고 싶다. 여기 답답해서 도저히 못 지내겠으니 하루라도, 안 되면 한 나절이라도 집에 좀 다녀오고 싶다. 잠시라도 집에 데려다 달라. 잠시라도 집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 여기서 이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죽어도 집에 가서 죽고 싶다. 여기서 그냥 조용히 잠자듯이 갈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으면 그리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고 간청하신다. 점점 그 호소의 강도가 강렬해지신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아버지가 가장 힘드는 것은 저녁 식사 후 잠 들 때까지 병상에서 견디는 것은 죽기보다 더 힘든다고 호소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감염병 시국이라서 집에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고 일단 퇴원하면 다시 입원이 불가능하다는 점, 집에 가서 단 한 시간 있더라도 대소변이 해결이 안 된다는 점을 강변하면서 그 생각을 돌리게 하는데 급급했었다. 또 하나, 이 아들도 갈수록 다리 저림과 아픔이 더 심해져서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나름대로 대응 방책으로 이런 호소를 하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렇재, 너도 이제 나이가 그만한데…….”하시면서 끝을 흐리신다. 그러면 다시 나는 또 똑 같은 말을 반복해 드린다. 코로나19가 잠잠해 질 때까지 잘 견디셔야 한다는 걸 얼마나 자주 강조했는지 모른다. 사실 지금은 누구든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된다. 그리고 마지막 꼭 전해드리는 말씀은 이 기세가 곧 좀 수그러질 테니 그러면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이 병원에 계실 때 아버지나 아들이 어머니께 해 드린 것처럼 간호사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매일 문병해서 휠체어 밀어들이면서 말동무 해드리고 최대한 자주 모시고 집에도 갔다가 바람도 쐐 드리고 시내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드리겠다고 언약하곤 한다.
그런데 달이 흘러가고 해가 바뀌어도 그 약속은 자꾸 미루어진다. 그 동안 한 번도 외출 못하고 가족 얼굴도 한 번 구경 못한 아버지께서 그 속에서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울까 생각하니 오늘 새벽 따라 이 자식의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다. 이게 이제는 아버지께 희망고문이 된 것 같아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처음 전화가 막무가내로 자주 올 때마다 당신께서는 거동불편으로 대소변을 해결할 수 없는 처지라 도저히 자식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을 강조해 드리곤 하였다. 솔직히 나도 긴병에 효자 없다는 세상의 모든 자식의 양가감정을 절실히 체감하였다. 아버지의 많은 요구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결해 드려야 하는가, 그 방안을 알 수 없어서 두어 번 주치의를 면담했을 때 조언을 들은 것에서 나의 이런 행동에 대한 합리화 이유를 찾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얼마 전부터 그렇게 자주 오던 전화도 이틀에 한 번씩 사흘에 한 번씩 뜸하게 오더니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도 안 올 때도 있다. 처음에는 애써 희망적인 상황 전개로 해석해서 이제 적응을 좀 하시나 했는데 얼마 전 한 번 전화에서는 그 목소리가 너무 힘이 없으시고 발음도 더 어눌하게 들려서 내 가슴이 답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러다 아버지 얼굴 한 번 제대로 뵙지도 못하고 떠내 보내드리는 큰 불효를 짓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 나의 불효가 대수가 아니라 아버지의 절대 고독, 절망의 심중을 한 번도 제대로 위무해 드리지 못하고 가시면 그 한을 어찌 다 감당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새벽에 잠이 깨서 날이 새도록 앉아서 아버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잔잔한 울음이 삼켜진다. 내 눈가에 눈물이 밴다. 아버지와의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내 평생 동안 성장의 고비 고비마다 아버지가 동행해 주셨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나를 자전거 뒷자리에서, 대학 시절은 틈 날 때마다 하숙집에 오셔서 짜장면 안주에 고량주 한 잔 같이 하고 삼류 극장에서 영화 보고 못 둑을 함께 걷기도 하였고…….등등.
내일은 다시 전화 드려봐야 할 것 같다. 오는 전화는 하시는데 받는 전화는 거의 안 된다. 아버지가 낮에 주무시거나 폰을 잘 다루지 못하셔서 못 받으시면 열 번이라도 새로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다. "아버지 정말 사랑합니다. 부디 새 봄 꽃필 때까지는 몸 잘 보중하시고 부디 잘 견디시길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이 자식이 아버지를 한 번은 꼭 잘 모시겠습니다. " 라고. 아버지와의 생이별이 언제까지나 이어질지 기약이 없는 세월이다. 2021.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