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7일 만의 만남 1/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서는 황천(黃泉)이라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어떤 강이 흐른다고 한다. 그 강을 두고 헤어지는 마음이 이러할까 싶다
청솔고개2021. 3. 31. 12:47
9개월 7일 만의 만남 1
청솔고개
3주 전 쯤 요양병원 당국으로부터 아버지 면회 일시를 약속 받았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아버지의 면회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막상 대면하면 아버지 얼굴을 어떻게 뵐까, 무슨 말씀을 드릴까, 그 동안 많이 상하지는 않으셨는지 하고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동생 셋도 면회 온다고 한다. 더욱이 서울, 대구 등 멀리서 시간 내기가 어려울 텐데 두 누이동생들이 더 기특하다. 9개월 동안이나 감염병 창궐 시국으로 본의 아닌 이산가족 처지가 됐다. 이산가족 상봉하는 기분이 이럴까 싶다.
오늘 드디어 9개월 7일 만에 아버지 처음 뵙는다. 어떻게 뵐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려오고 또 기약 없는 이후의 세월에 암울해지기도 한다. 만남의 기대에 설렘도 있다. 다시는 못 뵈면 얼마나 큰 후회가 남겠는가 하는 불안도 많았다. 마음이 자꾸 복잡해진다. 7시 50분 좀 지나 큰집 첫째 동생을 태워서 역에 도착하니 8시 15분이다. 아직 열차 도착할 시간이 남았다. 좀 기다렸다가 시간 맞춰 도착한 큰 누이동생에게 연락해서 만났다. 날씨가 참 포근하다. 봄날이다. 또다시 어떤 모습과 마음가짐으로 아버지를 해후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병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10분이다. 4병동 담당자에게 전화하니 20분은 더 기다려서 약속한 30분 돼야 면회가 허용된다고 한다. 그때 막내 누이동생도 도착했다. 안내하는 대로 가니 후문 출입구에 설치한 임시 면회소로 갔다. 아버지가 벌써 유리문 너머 와 계신다. 우리는 절차대로 신상을 기록하고 발열을 체크하였다. 이 비대면 면회소는 가운데 통유리로 돼 있다. 드라마에서 더러 보았던 구치소나 교도소 면회실 같았다.
아버지 얼굴을 뵙는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짧게 자른 머리에 얼굴의 살은 좀 빠지신 것 같다. 안색은 괜찮으신 것 같다. 유리 문 안팎으로 마이크 하나씩 쥐어 준다. 마이크를 들고 아버지가 맨 먼저 이런 말씀을 하신다. 당신이 피부과 전문병원에 입원해서 이 미칠 듯 한 심한 가려움만은 없애고 싶다고 하신다. 다른 약은 안 먹어도 좋다고 하신다. 통화할 때마다 하시던 그 호소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조용히 그 말씀 들어드린다. 휠체어에 태워 아버지를 모시고 나온 간호사가 이 병원에서도 충분히 치료를 하고 있다고 말해드린다. 이 역시 그동안 들었던 내용 그대로다. 나도, 화상이나 피부종양 같은 증상은 몰라도 아버지의 심한 가려움증은 병원에 입원할 정도는 아니고 이 병원에서도 약을 충분히 쓰고 있으니 건조한 계절적 원인일 수도 있으니 겨울과 봄철이 지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씀드렸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아직까지 우리들을 확연히 알아보시니 참 다행이다. 각기 동생들의 가정사와 아이들 안부까지 물으신다. 아버지는 오늘 못 온 둘째 동생에 대한 걱정의 말씀도 하신다. 그 말씀 끝에 두 누이동생들이 웃으면서 아버지가 지금 그런 걱정 하실 일은 아니라고 말씀드리면서 아버지 건강만 챙기시라고 간곡히 전한다. 우리 가정사에 대한 아버지의 이런 걱정을 곁에서 듣던 간호사도 따라 웃는다. 드디어 예정된 면회 시간이 다 돼 간다고 곁에서 귀띔 한다. 다시 첫째, 셋째, 막내 순으로 각자 아버지께 한 마디씩 간곡하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10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약속 시간이 좀 지나 32분쯤 일어섰다. 서로의 얼굴은 두꺼운 유리문 너머 보았지만 가로막혀 부모자식 사이에 손 한 번 잡아볼 수 없었다. 이 모두 세월 탓으로 해야 할 것 같다. 모두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부디 건강 유념하시라는 말을 전해 드렸다. 백신 맞으면 이제 곧 더 자유롭게 외출도 하시고 바람도 쐬실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버지께서 이 말을 믿으실는지 모르겠다.
올해 아흔 둘이신 아버지와 이번 대면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감해진다. 준비해간 아버지 간식을 유리문을 살짝 열어줘 전해 드릴 수 있어서 마음의 위안이 된다. 간호사가 간식이 담긴 종이가방을 받아서 아버지 무르팍에 올려놓는다. 아버지는 그 간식봉지를 소중한 듯 두 손으로 잡으신다. 마치 초등학생 같은 모습이시다. 이런 모습에 내 마음이 짠하기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되돌아서 병실로 곧장 들어가시는 게 아쉽고 서운하신 듯 아버지는 자꾸 손을 흔드신다. 우리를 되돌아보곤 하신다. 체념이나 달관이라도 하신 듯 한 담담한 아버지의 표정이시다.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도 손을 흔들어 드렸다. 드디어 들어가신다. 우리도 안 보이실 때까지 지켜보았다. 또 헤어짐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서는 황천(黃泉)이라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어떤 강이 흐른다고 한다. 그 강을 두고 헤어지는 마음이 이러할까 싶다. 우리의 면회만 끝나기를 기다리던 다음 차례 네 명의 가족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1. 3. 23. 화. 맑음] 2021.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