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1. 8. 7. 점심 식사 전에 아내가 아버지 병 위문 가도록 요청했더니 흔쾌히 동의해줘서 고맙다. 아내가 수건에 물 적셔서 아버지 눈가를 닦아드렸다고 한다. 그 마음 씀이 고맙다. 오후 5시 다 돼서 둘째 태우고 이어서 동생도 태워서 할아버지 묘소에 갔다. 잡초로 들어가는 길이 분간이 잘 안 된다. 길 복판에는 내 키만큼 자란 풀무더기도 있다. 가는 데마다 작은 산 모기가 기승을 부린다. 또 폭우가 쏟아진다. 경황 중 급히 뵙고 그냥 되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2021. 8. 8. 오전 11시 40분까지 큰집에 가서 동생을 태워서 병원 3층 중환자실까지 갔다. 둘째 아들의 존재감도 있어야 한다. 동생의 이런 자존감과 역할을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신 건강에 대한 치유의 효과에도 필수적이다. 동생한테 만나 뵈었을 때 간단하게 아버지 도와드리는 방법을 알려줬다. 동생은 20분 지나서 나왔다. ‘아버지의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서 수혈해야 한다는 것, 이 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뇌 사진 촬영에 대한 동의 사인을 해 줬다’고 한다. 아마 CT나 MRI 촬영으로 파악된다. 잘 처리했다고 격려해 주었다. 태풍의 영향인지 비가 살짝 온다. 벌써 시원한 느낌이 든다. 이건 효자 태풍이다.
비가 계속 흩뿌린다. 내 다리 저림이 갈수록 심해서 50미터도 잘 걷지 못한다. 이제는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걸치는 것조차도 불안정하다. 심할 때는 그냥 넘어질 것 같아서 자전거를 끌고 간다.
2021. 8. 9. 밤새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바람도 선선하고 비도 흩뿌린다. 아내가 일하고 있는 시립노인전문병원 진입로 오른쪽은 백일홍나무가 막 빨간 꽃을 피워대고 있어서 참 보기 좋다. 오늘 아버지 면회는 내 차례다. 들어가니 아버지는 살짝 아시는 체 하다가 또 잠에 빠져드신다. 팔다리도 좀 주물러드리고 눈가도 닦아드렸다. 발음은 여전히 어눌하시다. 좀 나아진 기색이 안 보인다. 오후에는 고향 마을 큰 종숙모 댁에 갔다. 마을 어른들도 몇 분 계셨다. 아버지 병원 입원, 내 허리 통증 등 최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마당에서 보는 비 온 후 갠 하늘이 정말 아름답고 산뜻해서 거의 신비스러울 지경이었다. 문득 만해의 ‘알 수 없어요.’에서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구절이 떠오른다. 천 년이나 지켜낸 마을 당수나무 느티나무와 위용이 오늘따라 대단해 보인다. 익어가는 노각, 옥수수, 능소화, 뫼꽃 등이 더욱 곱고 탐스럽다.
2021. 8. 10. 태풍의 더욱 거세어지는 것 같다.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시원하다. 집의 창변에 빗물이 어린다. 먼 산이 더욱 멀리 흐릿하게 보인다. 내가 그 산에 들어가 본 지 오래 됐다. 참 가고 싶다. 오늘도 아버지 찾아뵈어야하는데, 이렇게 가긴 하지만 어떤 기약이 없다. ‘기약 없는 앞날’, 그래서 우리 삶이 대개 이럴 것 같다. 암만해도 다리 저림이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럴 경우 나는 절망을 넘어선 ‘초절망’이라는 말을 새로 쓰고 싶다.
병원 주차장에 내려서 중환자실까지 가는 데 천리만리나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응급실 출입문으로 들어가려니 여기 오늘도 코로나19 환자 몇이나 다녀갔으니 2층 출입문으로 해서 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다시 계단으로 오르는데 죽을 맛이다. 날은 덥고 잘 걸어지지 않아서 용을 쓰니 땀은 비 오듯이 등줄기로, 이마로 훑어지는 것 같다. 심할 때는 제 자리에서 중심 잡기도 힘든다. 아버지는 오늘도 10초에 한 번씩 “답답하다, 풀어두가, 배고프다.”를 반복하신다. 내가 아버지 얼굴 가까이 입을 대고, “무척 답답하실 것이라는 점, 아버지는 뇌의 핏줄이 막힌 중환자라는 사실, 조금만 더 참으시면 곧 나갈 수 있으시다는 점, 정 힘드시면 묶인 것 풀어달라고 의사한테 한 번 말씀 드려볼 것”이라는 점 등을 나직이 하나하나 말씀드려본다. 그래도 막무가내다. 24시간이 아니라 거의 8일 동안 묶여 있으니 이건 고문 중에 산 고문이시다. 정신이라도 혼미하면 그냥 넘어 갈 텐데 정신은 아직 맑으시니 정말 견딜 수 없으실 것 같다. 그런 아버지의 절규가 내 가슴을 때리는 것 같다. 건너편 병상에는 딸인 듯 한 보호자가 그냥 축 늘어져 있는 제 아버지를 안고 서럽게 울고 있다. 아무래도 아무 의식도 없고 갈 시간만 기다리는 상황 같다. 그래도 이 판국에도 내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는 게 신통하다. 수년 전 어머니가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에는 홍시 먹고 싶으시다 해서 자주 준비해서 먹여드리던 기억도 떠오른다.
절친 하나로부터 전화가 와서 내 현실감각은 다소 회복된다. 시장 소머리곰탕국밥집에서 반주로 낮술 한 병을 나눠마셨다. 기분이 좋아진다. 더욱 꼬부라지려는 허리와 주저앉아지려는 하체를 바로 세우고 자전거를 끌며 타며 단골 찻집에 갔더니 문을 닫았다. 근처 찻집에 가서 6시 가까이 그간 쌓인 이야기 고픔을 해소했다. 2022.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