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1. 8. 16. 오늘은 동생더러 아버지 면회하도록 했다. 잘 한 것 같다. 동생 태우고 병원 주차장에서 내리니 내 다리가 거의 말을 듣지 않는다. 특히 오르막은 거의 힘을 쓸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쉬었다. 3층 면회실 앞에 도착하니 시간이 촉박했다. 동생한테 면회절차를 다시 알려주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밖의 대기석에는 여남은 명 쯤 되는 한 떼의 면회객들이 의자를 차지하고 있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들 가족 중 누가 중환자실에서의 임종이 임박한 듯했다. 들리는 이야기가 장지니, 장례 절차니 하는 것을 의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중 한 둘은 아주 울 듯한 표정으로 양팔로 얼굴을 묻기도 하곤 한다.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은 늘 이렇게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을 가지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 근처 강둑에 가서 모래흙을 담아 올 생각이 들었다. 크고 작은 비닐봉지 네 개에 담으니 제법 무겁다. 간이 손수레를 가져갔다면 아주 좋을 뻔했다. 강가 둑에는 벌써 초가을 전령사인 달맞이꽃이 점점이 맺혀있다. 지난 초여름의 철늦은 금잔화도 아직 남아 있다. 저 멀리 강 위쪽에 백로 한 마리가 외롭게 놀고 있었다. 이 평화로운 이 분위기를 담아 보려고도 했다. 강둑의 모래는 아주 깨끗하고 멋졌다. 이런 곳을 찾아낸다는 것,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해낸 내가 참 기특하기 짝이 없다. 벌써 햇살은 제법 엷어진 것 같고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하고 강물은 맑고 그 흐름이 한가하기까지 하다. 이 모래사장은 늘 깨끗하고 순결해 보인다. 강안 모래톱의 풀 더미는 더욱 말쑥하고 탐스럽다. 풍성하기까지 하다. 몇 차례 낑낑대면서 미리 준비해간 좀 두꺼운 비닐봉지 속에 꽃삽으로 고운 모래를 담는다.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뒤뚱대면서 맑은 모래봉지를 차에 실으니 마음은 이미 부자다. 이런 데에 내가 마음이 빠져들다니 생각할수록 신통하다. 이 모래로 베란다에 있는 꼬맹이들을 북돋우려 생각하니 이미 내 마음은 부풀어 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손수레를 가지고 내려와서 한껏 활용해서 옮겼다.
모처럼 저녁 산책을 했다. 강가 산책길에는 이미 백일홍이 만발해 있고 황화코스모스도 제법 탐스럽다. 아내와 같이 보자고 했던 달맞이꽃은 찾아보지 못했다. 이 순간 또 하나의 추억의 장을 쌓았다. 이렇게, 이렇게 삶은 흘러가는 것이다. 오늘 낮 강물 저 멀리 펼쳐져 있던 늦여름의 구름더미처럼.
2021. 8. 17. 오전 11시까지 서둘러 병원3층 중환자실 면회소 앞에 가서 간호사에게 면담 약속을 알렸다. 간호사는 다시 2층 신경외과 담당의사에게 가서 면담 신청해 놓았다고 전하라고 한다. 밀려드는 환자 때문에 1시간 이상 기다려 12시 다 돼서야 주치의를 잠시 볼 수 있었다. 주치의는 환자가 이제 안정이 많이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퇴원 후 지낼 병원은 정해져 있는지 묻는다. 내가 도로 요양병원에 모시려고 한다고 하니 그러면 퇴원은 오늘 오후라도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내일 오전 중으로 재입원하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면담시간은 5분도 안 걸렸다. 아버지의 다른 병세는 묻고 싶지도 않았다. 평소 그동안 아버지는 허리와 등 근골격계, 심장, 폐, 신장, 정신 건강 등 위장, 대장을 제외하고는 다 처방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경우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였다.
면담 마치고 올라가니 12시 15분 쯤 됐다. 다시 전화해서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잠이 깨 있었다.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 같다. “답답하다, 배고프다”를 여전히 반복하신다. 오늘은 이제 기회도 없을 것 같아서 다시 누이동생한테 영상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아버지가 그래도 큰딸은 알아보신다. 대화가 좀 된다. 이만한 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일이 또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른 변수가 끼어들까 봐 긴장도 되고 걱정이 된다.
절친 하나와 점심 먹고 좀 있으니 비가 그친다. 골목 근처 새로 난 자그마한 찻집에 가서 4시까지 얘기를 즐겼다. 오늘은 주로 지난 날 군 시절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때는 그래도 피가 끓는 이십대, 나의 꽃다운 시절이어서 둘 다 상기된 표정과 기분을 즐겼다.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를 끌고 오는데 다리가 거의 마비될 지경이어서 땀이 막 흐른다. 오늘도 많은 걸 이루었다. 나날의 삶은 이렇게 날줄과 씨줄의 촘촘한 짜임으로 된 한 벌의 옷을 깁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생애 깁기이다.
2021. 8. 18.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서둘러 아내와 같이 병원 3층에 도착해서 간호사에게 연락했다. 병원비 납부 등 여러 가지를 처리했다. 11시에 요양병원 담당자들이 왔다. 이제 아버지 뵙는 것도 당분간 뜸할 것 같다. 아버지는 연신 ‘답답하다’고만 외치신다.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다. 아내가 앰뷸런스에 동승하고 나는 내 차로 다시 병원에 따라갔다. 재입원에 관한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사인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앞으로도 이렇게 얼마나 많은 봉별(逢別)을 해야 하는가. 세상의 많은 부자간에, 가족 간에. 아버지가 인지와 의식이 많이 손상되지 않아 아들과 며느리를 알아보시는 게 다행이다. 재활을 맡은 새 담당의사가 아버지께 나를 가리키면서 내 이름을 물으니 막 말 배우는 두세 살 어린 아이의 발음으로 답하시는데 집중하고 들으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를 가리키며 물으니 “며느리요”하신다. 그나마 다행이다.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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