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오늘날 제사(祭祀)란 4/ 문화적 상대주의를 인정하자는 뜻이다

청솔고개 2022. 12. 24. 01:58

                                                                                                                 청솔고개

   가가예문(家家禮文)이라는 말이 있다. 집안마다 고유한 예법과 문화가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뜻이다. ‘남의 집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행태와는 다른 문화적 상대주의를 인정하자는 뜻이다. 오늘날 이런 문화적 상대주의는 특히 식문화(食文化)에서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개고기식용 논쟁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또 길고양이 돌봄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다. 앞엣것은 개[犬]에 대한 신구 세대 간 인식의 차이로 인한 것이고 뒤엣것은 특정 대상에 대한 특정 성향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념의 간극(間隙) 때문이다.

   기제사에 대한 관념과 인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한때 해방 직후 어둡고 혼란한 시대에는 우리의 전통 문화와 사상이 심하게 매도되고 무시되었었다. 그 대표적인 또 다른 사례가 무속신앙(巫俗信仰), 민속신앙(民俗信仰)이었다. 당시 우리는 이를 미신(迷信)이란 말로써 가장 저급하고 무지한 대상으로 재해석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많은 식자들은 비합리적이고 혹세무민하는 그 무엇으로 경멸하였었다. 그런데 이런 무속신앙을 제외하고 우리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논할 수 있을까?

   이런 인식이 형성되는 데 가장 큰 배경은 바로 일제36년 강점기를 거치면서 지속적, 반복적으로 다져진 일제의 조선민족열등화 정책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열강들의 문화우월주의 혹은 문화식민주의였다. 그 당시 많은 식자들은 우리의 것은 모두 열등하고 비효율적이며 불합리한 것으로 치부하였다. 서구 문물, 또는 서구를 몇 세기 앞서 직수입한 일제의 것은 이른바 선진문물로 불리며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그야말로 미신(迷信)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사조를 부추기는 주류들은 이른바 선진문물을 배우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제국, 혹은 일본 등지에서 공부하러 갔다가 들어온 유학파중의 일부였다. 그들 중 다수는 귀국해서 자기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당대 사회의 주류에 끼어들어 낡은 우리의 고유문화, 전통문화, 정신문화의 무조건적 부정이 곧 혁신인 듯 설쳐댔다. 개선을 넘어선 배척하자는 주장을 일삼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남선의 민족개조론이다. 그들은 우리 문화 비하의 첨병이 되었었다. 이런 행태는 근현대사 100년 혹은 8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었다. 그러나 그 기간에도 민족주의 사관을 주창하는 많은 인사들은 이러한 식민사관이나 서구문화우월주의에 대한 극복과 저항을 계속하였다. 우리 전통문화의 독창성과 민족사적 의의를 탐구하고 유지 전승하려는 노력은 이어졌었다.    2022.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