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삶과 죽음 3, 죽음에 대한 당사자의 이러한 선택권 보장은 언젠가는 행복추구권이라는 인권과 연계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청솔고개 2023. 2. 4. 00:05

                                                                                  청솔고개

   중증 치매는 물론이거니와 거의 식물인간처럼 된 상태에서라도 신체감각을 통한 통증은 감지될 수 있다고 하는데, 정작 자신이 아무 것도 호소할 수 없고, 아무런 대응행동도 할 수 없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최악의 상황이 자꾸 떠올려진다. 내가 미구에 언젠가 그리 된다면 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거의 공포 수준이다.

   병상에서 환자를 위한답시고 주사바늘을 뽑는다, 코 줄을 뺀다 하면서 사지가 결박당한 상태에서 그 크기와 깊이를 아무도 짐작조차 수 없는 고통을 순간순간 오롯이 나 혼자 당하고 있다? 그러면 누구나가 생존의 본능 표출보다 이런 고통이 소멸되는 죽을 날짜만을 무의식적으로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이승인지 저승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죽은 듯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더군다나 욕창의 단말마적 고통마저 호소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바로 현대판 생지옥이다.

   내가 지난 가을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 중에 존엄사(혹은 안락사) 의 과정을 다른 얇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존엄사가 법적으로 허용된 나라가 그 배경이 되는 것이다. 80세 후반의 아버지의 요청에 의해 법원, 담당 의사, 자식들을 비롯한 가족들의 존엄사 협응 과정을 생생히 기술한 내용이어서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다. 우선 그 내용 자체가 내게 무척 불편했다. 한편 생각을 바꾸어 존엄사를 갈구한 80대 후반의 당사자 입장에 돌아가 생각해 보았다. 오죽하면 그런 선택을 하고 가족에게 협조를 구했을까. 법원의 판결,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충분한 동의 의사 확인, 이에 따른 담당의사 지정 및 담당의사의 존엄사 방법 결정에 따른 처방, 그 결행의 일시, 장소, 현장 입회인이 결정된다. 당일 당사자가 가족들과 같이 식사 테이블에서 와인을 곁들인 맛있는 아침 식사 후 사전 승인된 계획대로 진행이 되는 것이다. 무슨 장엄한 의식 같기도 하고 그냥 한 끼 최후의 조찬 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 구성원 중 단 한 사람만이 외출하고 부재하듯이 연기나 안개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낯설지 않아 보이고 오히려 익숙한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이다. 상식과 보편에 입각해서 보면 이는 분명 비극적이고 끔찍한 상황일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한 당사자의 이러한 선택권 보장은 언젠가는 행복추구권이라는 인권과 연계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2023.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