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마음의 힘이 거의 다 빠져 버린 채 평생을 보내는, 한 친구의 동생 이야기다. 그는 세상 살아가는 게 너무 무섭고 힘들고 나날이 낯 설어서 세상에 다가설 용기를 아예 내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기초수급자이어서 취약계층 지원 에너지 바우처 금액 15만 3천원 사용도 은행가서 절차 밟는 게 너무 불편하고 할 줄 모르는 것 같아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포기하겠다고 몇 차례나 제 형에게 이야기 하더라는 것이다. 제 형이 너무나 딱해서 동생 형편에 큰돈인데 왜 그리 쉽게 포기하려고 하느냐, 그렇게나 동생이 못하겠으면 처리해서 내가 사용할 게 했다고 한다. 당국에서 발행한 행복카드 충전 여부와 카드 사용 날짜 확인이 힘들어서 그랬다고 한다. 그냥 15만원 상당의 금액을 포기하려고 하는 걸 그 형이 바쁜 가운데서도 직접 만나서 카드의 사용일시를 확인해 주고 충전 상황도 세 번이나 주민센터 담당자한테 확인했다고 잘 일러주니 그제야 수긍하고 안심하고 받아들이더라는 것이다.
마음의 힘이 거의 고갈된 사람은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취약한 문제해결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배터리로 말하자면 5%이하 남은 형국이다. 주변에서나 국가, 사회에서 끝없이 충전해 주지 않으면 그냥 방전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성향의 대상자에게 정신장애자로 판정해서 보호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형은 그래도 제 동생이 시 보건소 정신건강상담센터에서 사회 진출과 적응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11년째 개근하다시피 하는 모습이 너무도 가상하고 눈물겹기까지 했다고 한다. 처음 그 친구의 동생은 하루에 거의 10시간 이상 골목, 들판, 산길을 헤매다가 밤 11시 가까이 집에 들어왔는데 그러다 보니 평균 서 너 달에 한 켤레씩 신발이 닳았다고 한다. 이제는 마음의 힘이 많이 충전되었고 자신의 자식과 가족에 대한 관심도 많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거칠고 힘든 삶의 질곡에 빠져서 마음의 힘이 다 방전되더라도, 또 다시 날마다 채워 넣으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포함한 생의 의지는 거룩한 본능임을 일깨워 준 것 같다고 친구가 말했다.
문득 이런 노래가사가 떠오른다. 가수 신유가 부른 ‘잠자는 공주’다. “세상이 미워졌나요 누군가 잊어야만 하나/ 날마다 쓰러지고 또다시 일어서지만/ 달라진 건 없는가요/ 세상길 걷다가 보면 삥 돌아가는 길도 있어/ 하루를 울었으면 하루는 웃어야 해요/ 그래야만이 견딜 수 있어” 2023.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