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고향 마을 1, 초년 복(初年福), 혼인 복(婚姻福), 재물 복(財物福), 남편 복(男便福)에다가 자식 복, 건강 복까지 더하면 너무 지나치다

청솔고개 2023. 2. 14. 12:06

                                                                청솔고개

   오늘은 거의 40여년 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고향 마을을 찾았다. 물론 이런 저런 일로 나 혼자서 고향 마을을 찾은 적은 더러 있었다. 다만 내가 양주(兩主)를 모시고 가는 점에서는 첫 방문이다. 내가 태어난 ‘외말’이라는 마을을 찾아가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생존해 계시는 마을 어른들을 찾아뵙는다는 점에서의 뜻이 깊다.

   이번 모임은 우리 고향 마을 죽마고우들 끼리 모은 송죽회(松竹會) 이름의 상포계(喪布契)에서 지난겨울에 논의된 경로잔치다. 고향 마을에 자리 잡고 있던 친구 두엇이 미리 오늘의 행사를 위해 사전 준비에 많은 수고를 하였다.

   나는 엊저녁에 부모님께 전화로 오늘 행사에 참석하실지 그 의향을 여쭈어보았다. 솔직히 별로 관심을 보이실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예상 외로 아버지는 반색하신다. 반가워하신다. 또 며칠 전 아내가 큰집에 가서 어머니께 오늘 행상에 대해 미리 말씀드렸었는데 어머니가 아주 좋아하시더라는 것까지 아버지가 말씀해 주신다. 이것도 그간 어머니가 보이신 성향으로 보아 좀 뜻밖이다. 어머니는 허리 수술의 후유증, 잘 풀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자식들의 문제로 인해 최근에 올수록 의기소침, 은둔 형으로 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는데 잘 된 것 같다.

   어머니는 친정에서는 4남1녀 중 한가운데였었다. 위로 오라버니 둘, 아래로 남동생 둘 사이 고명딸로 귀염 받으며 곱게 자라신 편이라고 주변에서 말씀하시곤 했다. 열아홉 살에 우리 집으로 시집와서도 중농(中農)의 집안이라 경제적으로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학생이었던 아버지와 혼인한 후 아버지는 바로 국민 학교교사로 발령 받아서 당시로서도 안정적인 직장이라 큰 풍파 없이 지내셨다. 그런대로 편하게 지내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슬하에 당시 맏아들인 나를 포함해서 하늘의 옥황상제도 부럽지 않다고 하는 삼남 이녀를 두셨다.

   사람의 운은 쉽게 점쳐질 수 없다는 듯이 이런 초년의 편한 운은 이어지지 못한 것 같다. 이른바 자식 위험이라 할까. 내 바로 밑 두 남동생의 혼인 운(運)이 제대로 펴지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가족들에게 걱정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하나는 아예 혼인에 뜻이 없어도 부모의 강권에 마지못해 숱한 선 자리에 출석하긴 했지만 결과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이었다. 이후 늘 가족들에게는 이런 희망고문의 연속이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주 하늘은 참 공평하다고 자위(自慰)해 보곤 한다. 초년 복(初年福), 혼인 복(婚姻福), 재물 복(財物福), 남편 복(男便福)에다가 자식 복, 건강 복까지 더하면 너무 지나치다는 논리다.                                        2023.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