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다육이 양육법 2/ 떨어진 콩알만 한 잎이 쪼그라들고 마르면서 거기에서 좁쌀 같은 더 작은 육종이 눈을 틔운다

청솔고개 2023. 2. 8. 22:30

                                                                              청솔고개

   우리 집 베란다의 크고 작은 화분에 올망졸망한 다육식물들이 이 겨울을 견디고 있다. 쪼끄마한 것, 통통한 것, 복스러운 것, 약해 보이는 것들이 혹한의 날씨에 생존을 이어가겠다고 나날이 침묵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고개 숙여 눈높이 맞춰 잘 크고 있는지 살짝살짝 만져보기도 한다. 사막 건조지대가 원산지라 생육 특성상 그 통통한 잎에 물을 저장하고 견디는 게 마치 끝 간 데 없는 지평선을 넘어 점으로 사라지는 사막의 낙타 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이 통통하던 잎이 쭈글쭈글해 지면 물을 공급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 얼마나 더 자랐나, 새 순은 좀 커졌나 하면서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햇빛이 더 잘 드는 곳, 바람이 더 잘 통하는 곳으로 옮겨 주기도 하고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기도 한다. 이런 작업 후에 화분을 다시 들여다보면 영락없이 다육이의 연약한 잎이 떨어져 있거나 줄기가 부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내 딴에는 이 다육식물들을 잘 돌본답시고 급히 몸을 돌리거나 팔을 치켜 들다가 부주의로 그런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들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이를 어떻게 만회할까 고심도 했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손가락 하나가, 귀 하나가 떨어져 나간 거나 진배없는 거다. 이걸 그냥 쓰레기통에 치워버리기에는 고것들이 너무 복스러워 보였고 안쓰럽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그 떨어진 잎을 그 옆에 살짝 묻어주어 보았다. 그랬더니 길어도 한 달쯤만 지나고 나면 그 떨어진 콩알만 한 잎이 쪼그라들고 마르면서 거기에서 좁쌀 같은 더 작은 육종이 눈을 틔운다. 한 뼘도 안 되는 화분 위에 큰 기적이다. 여기 다육이의 생존법에서 나는 또 다른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이법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실수로 떨어져 나온 다육이 잎이나 줄기에 있는 양분과 수분을 먹이로 해서 새 생명이 움터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문득 아득한 35억 년 전에서 20억 년 전까지 핵이 없는 세포로 원시 지구의 바다에 있던 분자를 이용, 성장, 번식한 원핵생물에서 이후 현세의 원생동물(原生動物)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생명의 족보를 상상해본다.

   이렇게 무한한 시간, 광대한 공간, 기적적인 생명현상을 통찰해 보면 나 역시 미세한 단 세포에서 발원된 존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23.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