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어머니, 앞으로는 고향 마을에 자주 오세요. 아버지한테 부탁드리든지 시간 있으면 제가 한 번씩 모셔올게요.” 나는 진심으로 말씀 드렸다. 결코 이 말이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리는 헛말은 안 되어야 할 것 같다는 다짐을 스스로 했다. 어머니는 별다른 기대가 없으신 듯했다. “나한테 과연 그런 날이 오겠나?”하신다. 그 얼굴에는 흘러가버린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얼굴에 묻어나시는 것 같다. 회한과 애련함이 스쳐간다. 고향 마을에서의 지난 날 한때, 세상모르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서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어머니, 이제 세월 따라 쇄락해 가는 당신의 심신에 위로가 될 말로 이런 건 어떨지. 그래서 한동안 과거의 위상이 무너졌다는 것 때문에 속으로 자존심이 상해하시면서 고향 분들을 거의 안 만나려 했었던 어머니께 이번 방문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게 될 것 같다. 모두들 어머니를 잊지 않고 환대해 준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자식들 때문에 쌓인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지는 계기다 됐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어머니, 부자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했지요.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알아요? 언젠가는 우리가 다시 시작할 게요.”하는 말로 어머니께 위로를 드리고 싶다.
지금도 한번 씩 상포계 친구 모임에서 그때 설 명절이 되면 우리 집으로 제일 먼저 세배를 왔었다고 자주 말한다. 그 이유는 세배 후 우리 할머니가 쌀 자반이면 쌀 자반, 콩자반이면 콩자반, 오꼬시 등 아낌없이 그득 차려 내놓아서 맘껏 배를 채울 수 있어서, 그때는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고 말한다. 나도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기억을 되살려 보고 한 때 고향 마을에서 우리 할머니가 인심은 크게 잃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조차 뿌듯해진다.
보리밭이 드넓게 펼쳐진 마을 어귀를 빠져 나오는데 창공에서는 노고지리가 어지럽게 노닐고, 쇠비산 너머의 뻐꾸기 울음이 온 마을에 메아리친다. [앞의 '고향마을' 1~6은 2006. 4. 에 쓴 것을 조금 고쳐서 연재한 것임] 2023. 2. 19.
아재, 아재, 나의 아재 2/ 삼촌은 나보다 열두 살 더 많으셔서 나와는 띠 동갑이다. 삼촌이 열세 살 때 내가 태어난 셈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삼촌을 “아재, 아재”하면서 졸졸 따라다녔.. (0) |
2023.03.08 |
아재, 아재, 나의 아재 1/ 내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이토록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하나뿐인 동생인 삼촌마저 가시면, 그나마 아버지 뵙는 듯 삼촌을 뵙는, 이러한 남은 희망까지 .. (0) |
2023.03.07 |
고향 마을 5/ 멀고 먼 그 시절이 손에 잡힐 듯 여기 가까이 있는 것 같다 (0) |
2023.02.18 |
고향 마을 4, “바람 같은 세월이여, 정 넘치는 내 고향에 무상(無償)의 내 고향 사람들이여!” (0) |
2023.02.17 |
고향 마을 3, 고향 마을 할머니댁으로 엄마 손에 이끌려 아장아장 걸어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1) |
2023.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