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고향 마을 6, 보리밭이 드넓게 펼쳐진 마을 어귀를 빠져 나오는데 창공에서는 노고지리가 어지럽게 노닐고

청솔고개 2023. 2. 19. 00:51

                                                                            청솔고개

   “어머니, 앞으로는 고향 마을에 자주 오세요. 아버지한테 부탁드리든지 시간 있으면 제가 한 번씩 모셔올게요.” 나는 진심으로 말씀 드렸다. 결코 이 말이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리는 헛말은 안 되어야 할 것 같다는 다짐을 스스로 했다. 어머니는 별다른 기대가 없으신 듯했다. “나한테 과연 그런 날이 오겠나?”하신다. 그 얼굴에는 흘러가버린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얼굴에 묻어나시는 것 같다. 회한과 애련함이 스쳐간다. 고향 마을에서의 지난 날 한때, 세상모르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서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어머니, 이제 세월 따라 쇄락해 가는 당신의 심신에 위로가 될 말로 이런 건 어떨지. 그래서 한동안 과거의 위상이 무너졌다는 것 때문에 속으로 자존심이 상해하시면서 고향 분들을 거의 안 만나려 했었던 어머니께 이번 방문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게 될 것 같다. 모두들 어머니를 잊지 않고 환대해 준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자식들 때문에 쌓인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지는 계기다 됐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어머니, 부자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했지요.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알아요? 언젠가는 우리가 다시 시작할 게요.”하는 말로 어머니께 위로를 드리고 싶다.

   지금도 한번 씩 상포계 친구 모임에서 그때 설 명절이 되면 우리 집으로 제일 먼저 세배를 왔었다고 자주 말한다. 그 이유는 세배 후 우리 할머니가 쌀 자반이면 쌀 자반, 콩자반이면 콩자반, 오꼬시 등 아낌없이 그득 차려 내놓아서 맘껏 배를 채울 수 있어서, 그때는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고 말한다. 나도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기억을 되살려 보고 한 때 고향 마을에서 우리 할머니가 인심은 크게 잃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조차 뿌듯해진다.

   보리밭이 드넓게 펼쳐진 마을 어귀를 빠져 나오는데 창공에서는 노고지리가 어지럽게 노닐고, 쇠비산 너머의 뻐꾸기 울음이 온 마을에 메아리친다. [앞의  '고향마을' 1~6은 2006. 4. 에 쓴 것을 조금 고쳐서 연재한 것임] 2023.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