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나는 현직에서 내려오는 그날, 나의 이 억울함을 글로써 보란 듯이 세상에 알리려고 나름대로 준비했었다. 그런데 이런 작업에 본격 착수하려고 생각하니 또한 심각한 회의가 생겼다. 과연 나의 이 글을 누가 얼마나 읽어 줄 것인가 하는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럴듯한 표지와 주목 받을 만한 제목, 콘텐츠로 단장한다 하더라도 세상에서 나의 글을 읽어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것이었다. 여기 무명 가수가 있다 하자. 본인은 멋진 노래를 부른다고 하지만 대중들이 그 노래에 흥미와 관심이 없어 외면하면 어쩔 것인가. 혼자만의 가수일 뿐이다. 내게도 어떤 형태로든지 나의 글을 보아주는 독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절실하였다.
어떤 콘텐츠가 세상에서 주목 받으려면 확실한 실익(實益)이 있거나, 절대적이고 극적인 인생유전(人生流轉) 체험의 스토리거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이거나 해야 한다. 아니면 그게 리얼리티든 판타스틱이든 독자가 꼬박 밤을 새워 독파(讀破)할만한 것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내가 글을 낸다면 과연 어디에 속할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 데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나의 자복서(自服書), 내 마음의 행로를 그린 지도책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선후배 동료들이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책을 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처음에는 나도 그러고 싶었다. 세상에 나와서 평생을 남만큼 살았는데 그래도 이름 석 자 걸고 펴낸 책 한 권쯤 있어야 뭔가 격에 맞는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들이 물론 상업적 직업적 작가는 아니지만 그 책에 정가가 매겨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책을 독자로서 내가 돈을 주고 직접 구입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그 책을 지은 사람들이 그냥 배포하는 것이다. 무차별 살포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들은 명함 돌리듯이 그냥 책을 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구든지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명함을 상대방에게 전할 때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 뒤 한 번도 그 명함이 활용되지 않고 그냥 길거리에 버려졌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각종 선거 때 내 돌리는 명함은 받자마자 그대로 내버려져 주위를 더럽히고 결국 행인들의 발에 밟히기까지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내 이름 석 자가 이렇게 발끝에 유린당하는 쓰레기 같은 그런 대접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2023.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