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내가 그 작가들에게 쉽게 받은 책들은 왠지 잘 읽어지지 않았었다. 공짜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얼마 후 공공도서관에 그들의 책 중 일부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그 책을 빼 본 적도 없었다. 그 책 말고도 나의 흥미와 구미에 맞는 신간들이 즐비하게 서가에 꽂혀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먼저 눈과 손이 가는 것이다.
내가 만약 줄잡아 수 백 만원의 내 돈을 들여 내 책을 내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내 책에 대한 최선의 대접은 공공도서관에 진열되는 것이었으리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참 억울하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 억울함을 이렇게 표출하고 싶지는 않다. 나날이 쏟아져 나오는 오프라인 상의 신간들과 실시간으로 인터넷 공간에 발행되는 간행물로 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같다. 나는 그 자비출판 비용으로써 뭔가 다른 더 확실한 나의 것을 잡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보다 직접적으로 독자들을 대면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를 '인터넷 매체에서 포스팅 형식의 출판'이라고 명명했다. 오래 전에 별 생각없이 마련해둔 블로그를 찾아내고 3년 전부터 거기에 본격적으로 글을 올렸다. 나는 매일 한 편의 글을 올린다는 원칙을 세웠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19 상황과 아버지의 간병 때문이기도 했다. 일상에서 대면접촉 시간이 최소화되다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생겼다. 수시로 입원하신 아버지의 병실을 밤낮으로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삶 자체와 거기에 따르는 생로병사의 과정에 대한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 주체할 수 없는 생각과 감정을 처리하는 게 절실해졌다. 바로 언제 어디서나 노트북과 인터넷 여건만 갖추게 되면 포스팅 작업은 진행될 수 있었다.
내가 지난 3년 동안 이런 작업에 매달리지 않았더라면 도대체 어떻게 그 숱한 고비를 무사히 넘게 되었으며 그 많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을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척 답답했을 것이고 암울하고 참혹했을 것이다. 상상이 안 된다.
나는 이러한 나의 글쓰기 행위를 통하여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발견해 냈다. 글쓰기 과정 자체는 나를 객관화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이를 통하여 수시로 끊임없는 자가 치유를 받는다. 존재의 근원적 이유를 추구할 수 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2023.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