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글쓰기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70년대의 이른바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의 논쟁으로도 확장된다. 당시 나는 이런 논쟁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해서 분명한 나의 관점이 수립되지 못했다. 그때의 이러한 트렌드는 장발, 통기타, 청바지, 팝송, 히피 등과 맞물려 독특한 청년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이 청년문화와 더불어 나의 20대, 그 70년대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뜨겁게 끓어오른다. 나는 암울했으며, 무엇보다도 절박했고 어쨌든 참 위험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때 말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이제야 나의 블로그에서 피를 토하듯 쏟아내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 근대 문단사 100년을 조망해보면 순수를 표방한 일부 글쟁이들이 순수라는 위장복 속에 교묘하게 숨어서 생경한 이념과 신념을 선전하는 도구로 전락된 사례도 보아왔다. 이른바 사이비(似而非) 순수들이다. 나는 이들을 혐오한다. 이에 대응하는 나의 방식 중 하나가 바로 나의 글에 대한 오프라인에서의 인쇄, 출판까지도 유보한, 나만의 ‘블로그 출판’이다.
나는 지난 3년이 지나도록 나의 이 블로그에 630여 편의 글을 올렸다. 평균 1년에 210편 정도이며 사흘에 두 편 정도이다. 나도 나의 글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읽히는가 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방문 숫자, 조회 수에 지나치게 연연해하는 순간 그 순수성은 심히 훼손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어떤 형태로든 상업주의의 유혹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나의 청년 시절에는 이러한 쇼비니즘, 즉 속물근성을 가장 혐오했다. 이런 태도는 나를 지키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였었다.
독자는 절실한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나의 콘텐츠에 관심을 두고 읽거나 방문의 소견을 남겨야 한다. 그 순수 자유의지를 최대한 보장해 줘야 한다. 어디에 현혹되거나 휘둘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 독자를 대하는 정도(正道)이다.
어떤 날은 내 블로그 방문 회수가 한 자리 수, 심지어 0이나 1,2를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래도 괘념치 않는다. 1이 기록되면 그 1의 독자는 오롯이 나의 글을 모두 독점하는 행운을 잡았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어디에서 이름도 모르는 한 독자가 나의 하트를 노크하면서 공감이든, 위로든, 질책이든 비판이든 함께 하는 소중한 순간인 것이다. 2023.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