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아 다르고 어 다르다’ 2/ 문제의 본질과 근원을 파악해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꼬리가 머리를 잡고 있는 형국이라 더욱 꼬이게 마련이다

청솔고개 2023. 3. 13. 10:06

‘아 다르고 어 다르다’ 2

                                            청솔고개

   상대적으로 나름대로 식견을 갖추고 의사 결정에서 합리적 훈련을 받았다고 자부하는 나도 때로는 사소한 의견의 차이에 발끈하게 됨을 보고는 이런 문제가 간단치 않음을 실감한다.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도 대 놓고 내 의견에 반대하면 그 순간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는 피해의식 때문이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무시, 요즘 말로 ‘×무시’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강변(强辯)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강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졌음에도 그 순간은 고집스레 내 생각을 양보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대체로 인간은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분명히 자기 존재감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흔히 나이가 들면 인격이 원숙해져서 마음을 내려놓거나 비워나간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당위적 표현이 생겼을까? 그것은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비워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채워가려고 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노욕(老慾), 노탐(老貪)을 경계하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이런 논쟁과 탐욕에 초연해진다는 것은 잘못된 진단 같다. 나이가 들면 고집에 세진다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 같다.

   이러한 문제는 가족 사이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가족은 가까우니 당연히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하면서 편하고 쉽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가족은 당연히 내 편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무조건 나를 이해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나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며 속 좁은 이기심의 발로다. 내 가족이 내편이 안 돼 주면 누가 내편이 돼 줄 것인가 하는 고집과 강짜가 내재돼 있다. 이럴 때는 내 안에서 엉뚱한 응석받이 아이 하나가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들은 요즘 내게 자주 이런 점을 지적한다. “부연설명을 지나치게 많이 해서 내 말투는 너무 지루하다. 이른바 TMI(to much information)형이다. 이게 이른바 꼰대스타일이다.”라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심기는 살짝 불편해진다. 이를 흔쾌히 수용하고 웃어넘기면서 “충고 고맙다. 노력할 게.”하면 쉽게 끝나는데 여전히 뒤끝을 남긴다. 그러면 나는 표정이 좀 굳어지고 목소리에 힘을 실어 “평생을 종사해 온 직업상 특색 때문이다. 상대에게 좀 더 친절하고 불편하지 않도록 서비스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면서 강변(强辯)한다.

   이는 한 가정의 부모형제자매와의 대화와 관계 맺기에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과 집단, 계층과 계층, 지역과 지역, 진보와 보수 정치집단 등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이른바 말꼬리 잡기다. 그냥 잡는 게 아니다. 급기야 물어뜯는다. 그러면 사안의 본질은 간데없고 서로 말꼬리만 잡고 있다. 그래서 허탈감과 혐오감이 드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과 근원을 파악해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꼬리가 머리를 잡고 있는 형국이라 더욱 꼬이게 마련이다.                 2023.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