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4. 1. 22.
오늘은 비엔티안을 떠나는 날이다. 우리는 11시 기차를 원했는데 위탁한 대행업체에서 잡을 수 없다고 연락와서 1시 5분 차로 결정되니 오히려 여유가 있다. 새벽에 일어나 강둑을 한 번 더 거닐어 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못 했다. 어제 너무 많이 걷고 또 낮의 음복주, 저녁 고깃집 술로 인해 살짝 피로도가 더한 것 같아서 잠이 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캐리어를 정리해서 내려가자, 예의 그 총각들이 도와준다. 택시는 그들에게 부탁하니 처리된다. 요금도 그들에게 주면 된다고 했다. 비엔티안 근교는 아직 허허벌판이고 주로 채소 농사를 짓는 것 같다. 건기(乾期)라서 길가의 풀들도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목말라하면서 아직 한참 먼 우기를 고대하고 있는 듯했다. 운전자가 역주행도 일삼고 폰을 보면서 운전하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어서 중간에 안전벨트를 맸다.
드디어 ‘만상(万象)’ 역, 아마 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뜻 같다. 여기 라오스의 기차역 이름이 중국어로 동시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도 중국의 자본 침투가 드세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운전자가 입구 앞에 내려다 준다. 많은 사람이 벌써 개찰구가 열리기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드디어 1시간 전쯤 문이 열리면서 표와 여권을 검사한다. 역 앞 광장도 광활할 뿐만 아니라 역 구내도 엄청나게 넓다. 보안검사를 했는데 아내의 큰 캐리어에 넣어 놓은 병맥주가 적발됐다. 결국 압수당하고 말았다. 내가 새벽에라도 따서 먹었어야 하는데 하니 지나간 일 말하지 말자고 한다. 이것도 역시 작은 체험이다.
방비엥 지날 때까지 좌우는 넓은 평원이다. 모내기한 듯한 논도 더러 보인다. 3모작인가, 4모작이라니, 예로부터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됐을 터,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와는 달리 그렇게 여유가 있어 보이는가 보다.
이 나라 사람인 듯한 너덧이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잘못 앉았는지 아니면 입석이 앉았다가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이는 멀미 난다면서 그냥 눈 감고 쉬고 있다. 아침도 부실하게 먹었을 터인데 제 어미가 뭐 먹으라고 권해도 멀미 난다면서 하나도 입에 대지 않는다. 방비엥부터 그러기 시작하더니 루앙푸라방에 가까워질수록 산세가 좋아진다. 그야말로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얼굴이다.
드디어 2시간 만에 루앙프라방 역에 도착했다. 멀리 산마루 위로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다. 평화롭기 짝이 없는 풍광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아이는 또 호텔까지 이동을 걱정한다. 아이는 나처럼 어떻게 되겠지가 안 된다.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내려서 택시 잡기가 곤란하다는 여행기를 읽은 것이다. 그러나 운 좋게 5분도 지나지 않아 택시를 호출했다. 운전자는 사람 좋아 보인다. 여기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상이 좋아 보인다. 30여 분 먼지 나는 시골길을 달려서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내리면서 내일 꽝시 폭포가는 코스도 예약해 버렸다. 아이기 묻기에 저도 같이 데려갈 참에 두말없이 그리하라고 했다. 비싸 봐야 1,2만 낍일 텐데 주저주저하면 아이는 빠질 구실을 찾게 될 것 같아서 그랬다. 호텔은 아담하고 정감이 넘치는 2층짜리 복합건물이었다, 여행자의 정감을 자극하고도 남을 만한 마음에 드는 분위기였다. 문득 노르웨이 여행 때 릴리함메르 들렀다가 묵은 산 중턱에 자리잡은 외딴 산장 같은 호텔이 생각난다. 호젓하고 아늑한 게 꼭 그런 분위기다. 그때처럼 1층이다. 그때처럼 엘리베이터도 없다. 4시 조금 지나 호텔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고 5시에 호텔을 출발해서 점심 겸 저녁 해결하러 아이가 봐둔 쌀국숫집에 갔다. 티브이 여행프로그램에서 본 맛집이 틀림없다고 아내가 말했다. 허름한 가게지만 아이는 평점이 제일 높다고 했다.
이어서 야시장 볼 시간이 좀 멀어서 근처 마사지 집에 들러서 1시간 받았다. 역시 수도 비엔티안의 수준보다는 떨어지는 것 같다. 현격한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비용도 그래서 절반이다.
여기 야시장은 비엔티안보다 훨씬 더 짜임새 있는 모습이다. 역시 JOMA 커피베이커리에 가서 라테를 사고 이어서 마트에 가서 라오맥주, 과자 등 필요한 것을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이 방에서 커피 마시고 오늘의 여정 평가를 했다. 모두들의 무사 이동에 대해서 자축했다. 우리 방에 돌아와서 아내와 둘이서 아내가 챙겨온 멀베리 차 한 잔과 캔맥주로 무사 진행을 기꺼워했다.
문득 비엔티안 베란다에서 커지던 달이 여기까지 따라와 얼굴을 보인다. 거의 반달에 가깝다. 나지막한 창 너머 홍초인지 파초인지 엄청나게 넓은 잎을 우리의 창을 가리고 있어서 더욱 운치가 있어 보이는 숙소다. 이 식물은 자신의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 같다. 이래서 여정은 여행 15일 차, 여행 중 세 번째 월요일의 밤은 깊어 간다.
메콩강의 달빛이라도 쏘이러 가려고 하다가 오늘은 근신하기로 했다. 내일 꽝시폭포 일찍 갔다 오면 몇 군데 부지런히 답파하면 될 것 같다.
내가 이 여행에 흠뻑 빠지는 모습을 보고 아내도 아이도 대견해한다. 우선 거기보다 나의 활동성이 세배나 증가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은 환경의 전환을 통한 릴랙스를 통한 힐링이라고 할 수 있다. 2024.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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