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63병동 스케치/그 환자가 떠나면서 남기고 간 빈 베드에서 보이는 '생애의 허망함과 무(無)'를 내가 제대로 체득한다면, 아버지를 대응하는 나의 행태는 좀 달라질까

청솔고개 2020. 6. 12. 23:48

63병동 스케치

                                                                                                                          청솔고개

   밤 12시가 다 됐는데 출입구 동쪽 편 첫째 베드의 보호자가 전화 거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숨 거두셨습니다.” 하고 나직하게 어딘가에 말한다. 부음(訃音)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차분하고 조용히 이야기해서 그런 이야기인 줄은 잘 몰랐다. 한두 군데 더 거는 것을 듣고는 좀 전까지 간병 받던 남자 환자가 운명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어제 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저혈압 쇼크와 심한 빈혈, 혈액 중 헤모그로빈 수치가 너무 낮은 증상 등으로 다시 이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셨다. 응급실에서 만 하루를 감염증 검사 등 절차를 거친 후 음성 판정을 받으셔서 입원 조건은 일단 갖추었다. 이어서 위와 직장 항문 내시경 검사 결과 소장과 대장 사이에 심한 출혈 흔적이 보이고 소장에서 원인불명의 출혈을 추정한다는 소견이 나왔다. 입원 권고를 받고 결국 입원을 결정했다. 입원 절차를 마치고 점심 때 쯤 이 병동으로 오게 된 것이다. 처음 병실에 들렀을 때, 입구에서 왼편 동쪽 라인 첫째 베드에서 눈은 감고 입은 크게 벌린, 바짝 마른 노인 환자가 바로 눈에 띄었었다. 호흡만 간신히 작용하고 있었으며 인사불성 상태임을 그냥 봐도 알 수 있었다. 간간히 목에 짙은 가래가 끼면 간병인이 장치를 통해서 뽑아내 주곤 한다. 그 소리가 제법 요란했다. 방금 이 노인이 사망한 것이다. 바로 옆이라 안 보려 해도 눈에 띈다. 입은 더 크게 벌려져 있고 눈은 감은 채로 대체로 평온한 모습이다. 이 나이가 되니 죽은 사람 표정을 보아도 별 느낌이 없는 건가.

   하나 건너 옆 베드의 아버지는 이때까지 주무시지 않고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시며 몸을 미적거리신다.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잠시 후 간병인인 줄 알았던 그 여자는 망인의 며느리로 보호자였다. 그 며느리의 나직한 흐느낌이 섞인 울음이 터져 나온다. 나도 좀 있다가 며느리에게 목례를 하면서 아는 체 해 본다. 며느리는 이제 유족이고 상주가 되었는데도 나한테 “할아버지 때문에 고생 많으세요.”하는 말을 건넨다. 이 경황에 이런 말을 건네다니. 옆에서 전화 내용을 듣고 전후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보호자인 며느리는 이곳에 사는데 다른 가족들의 요구로 시신을 좀 먼 곳으로 운구해야 한다면서 살짝 못마땅해 하는 것 같다. 혼잣말로 “그냥 여기서 치르면 다 좋을 텐데”하고 원망 섞인 푸념을 한다. 좀 있으니 시신 운구 직원이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이동 베드로 옮긴다. 흰 천으로 온 몸에서 얼굴까지 감싼 후 병실 문으로 이동해 간다. 누가 봐도 시신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담담하게 사망 진단서 발급, 급한 친인척 연락 등 차분히 장례 절차를 챙기던 며느리는 이동 베드가 사라지는 것을 보는 순간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오열하기 시작한다. 그냥 엎드리면서 바닥을 친다. 아까 까지 겨우 참았던 그 무엇이 이제 터져 나오는 것 같다. 당직 간호사 셋이서 그 보호자 며느리의 어깨를 만져주면서 슬픔을 달래준다. 간호사들의 그런 모습이 내게는 참 어리둥절해 보인다.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이다. 왜냐하면 시시각각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들은 현장에서 환자의 상황에 너무 빠져들어 동정심이나 인정 같은 것이 작용하면 정작 더 중요한 것을 챙기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지나치게 냉정해지려고 훈련 한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잠시 후 오랫동안 간병으로 머문 듯 대여섯 개 크고 작은 짐을 두 번이나 나누어서 싣고 병실 문을 나간다. 시아버지의 별세가 그 며느리한테는 참 각별했던 것 같다. 그래도 가족 중 유일하게 임종은 했으니 훗날 시아버지를 저승에서 만나뵈도 좀 떳떳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록 아무런 연고도, 인연도 없는 한 어른의 운명과 별세를 목도했지만, 한 생애의 사라짐이 결국 이러하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다시 아버지 이야기.

   오늘 저녁에도 아버지가 오랜 침상 생활에 지친 나머지 인내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보이신다. 게다가 당신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서 절대 안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침상에서 내려가려고 하는 행동의 반복하신다. 아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반복하신다. 중환자로 입원한 것을 인지하지 못함인가. 병원 바깥의 자유로운 생활처럼 행동하려는 행태가 반복된다. 주사 바늘, 수혈하는 관 등 몸에 달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지 자꾸 생각 없이 편할 대로 처리하시려 한다. 결국 줄은 꼬이고 짓눌려지니 몸과 연결된 기기에서의 발생하는 경고음이 반복된다. 이 때문에 놀란 간호사들의 잦은 출현 등...... 이런 것들이 반복되니 내가 처음에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알아듣도록 설명을 해도 그 때 뿐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중환자라는 생각도 잊은 체, 두어 번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팔을 붙잡아 아버지의 행동을 제어하려고 하는 등  완력 행사도 하려고한다.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표출된다. 지금까지 마음을 공부하면서 경청하면서 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겠다는 내가, 이건 상담가로서의 입장을 떠나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취할 태도는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이러한 분노, 짜증은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폭발한다. 내가 생각해도 부끄럽다. 밖에서 이런 상황을 나름대로 예상은 했다. 나는 이번 아버지의 입원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전번 입원 때처럼 ‘아버지와의 특별한 병상 동행 제 2차 여행 ’라고 명명(命名)은 했지만 정작 그 이름처럼은 안 된다. 나의 이 여행이 지금 제주도 한 달 살이로 가서 올레길 걷고 자유를 만끽하던 어떤 친구가 보내온 메시지와 대비가 된다. 그러면서 나도 아버지와 '병실에서 동행 여행'한다고 여행에 방점을 찍어본다.  그래도 확실히 다른 여행이긴 하다.

   조금 전 운명한 그 환자가 떠나면서 남기고 간 빈 베드에서 보이는 '생애의 허망함과 무(無)'를 내가 제대로 체득한다면, 아버지를 대응하는 나의 행태는 좀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2020.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