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삼대(三代)가 떠나는 호국(護國)의 여정(旅程)(2/3)/아버지는 1951년 당시 여기서 군용 열차를 타고 부산까지 부상당한 채로 서서 후송 조치된 기억을 더듬으신다

청솔고개 2020. 6. 13. 14:30

삼대(三代)가 떠나는 호국(護國)의 여정(旅程)(2/3)

 

                                                                              청솔고개

   새벽에 아이가 숙소의 숲 속을 산책해 보라는 권유를 해서 아버지와 같이 잣나무 솔방울이 떨어져 있는 숲길을 걸었더니 새소리도 즐겁다. 무리지어 피어나는 금잔화 주황색도 아름답다. 9시 좀 지나 횡성 시내로 가서 **한우국밥집에 가서 국밥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그 옆 횡성보훈회관에 들렀다. 방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여기 횡성 전투에서 팔에 부상을 당하셨다는 사실, 아버지로 보아서는 생사의 기로에 선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1951년 2월 8일 아버지의 횡성전투 자료에 대한 설명을 책임자에게 들었다. 이 사람도 자기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6.25한국전쟁 전사자 의 유복자라면서 자료를 찾아서 자세히 설명해 준다. 일단 나도 열심히 자료를 폰에 담는다. 아버지께는 나중에 다시 자료를 확인해 보고 필요한 부분을 정리해서 드리겠다고 했다. 관련 자료와 책자 몇 권도 얻어 왔다. 치악산 구룡사로 가다가 그 기슭에 있는 백달리 당시 원주 야전 병원 자리를 다시 물어서 현장에 가 보았다.

   66년 전 아버지의 기억이 온전히 남아 있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횡성전투에서 부상자가 너무 많아서 원주 국군병원이 부상병으로 차고 넘쳐 여기 야전에 천막을 친 병원에서 치료 받았던 기억을 더듬어 가신다. 깊은 감회에 사로잡히신다. 마침 근처 눈에 띠는 주민이 있어서 물어보았더니 여기서 가까이 보이는 산자락이 야전병원 자리였다고 한다. 그 증언에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구룡사를 참배하였다. 치악산 삼림은 푸르다 못해 검다. 아버지는 대웅전에 가서 참배하고 시주도 하신다. 아버지는 속으로 무슨 발원을 하셨을까? 원주 시내 들러서 원주역에 갔다. 역사 안까지 답사해보았다. 역사 외양은 바뀐 것 같지만 위치는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1951년 당시 여기서 군용 열차를 타고 부산까지 부상당한 채로 서서 후송 조치된 기억을 더듬으신다. 기차간에서 죽어가는 부상병도 많았다고 증언하신다. 누렇게 바래서 표지도 없는 옛 사진첩에 아버지가 야전병원 천막 옆에서 부상당한 팔을 처매고 찍은 아버지의 부상병 때 사진의 이미지와 잠시 오버랩 된다. 이번 여행이 호국의 길 탐방이라는 취지를 그대로 살려가는 것 같다.

   다시 북원주나들목으로 해서 횡성, 홍천 방향으로 향한다. 지나가는 고개가 새막치라는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8사단이 전멸하다시피 하였다는 곳도 지났다. 춘천까지 가서 중앙고속도로 종점으로 빠져나왔다. 숲과 호수로 뒤덮인 춘천은 풍요롭고 아름답다. 왼쪽으로는 마치 북유럽이나 뉴질랜드 어느 도시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바로 아이의 입대한 곳인 이곳 춘천 제2보충대, 첫 면회에서 같이 묵은 내린천변의 ***** 모텔, 리빙스턴 다리에 대한 기억도 떠오른다. 춘천 오음리로 해서 양구에 접어드니 오후 3시. 광치령 아래 한 메밀국수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 광치령에 대한 기억은 아이와 나의 공유된 것으로 매우 소중하다.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는 소나기와 우박이 식당 지붕을 막 두들긴다. 그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고 시원하다. 아버지는 연신 잇몸이 많이 헤어졌다 하시면서 메운 걸 잘 못 드신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잘 견디시는 게 오히려 고마우시다. 식사 후, 지역사단 신병교육대, 양구선착장(당시는 도선장이라 했음), 지역사단 유격부대가 있는 사명산 입구, 지역사단 통신대 입구를 차례로 들렀다. 모두 입구만 보고 안에 못 들어가 보는 것이 참 아쉽다. 지역사단 신병교육대 앞에서 잠시 내려서 인증 한 장 찰칵. 아이와 내가 훈련 받은 곳이다. 아이도 옛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아이에게는 군대 시절이 아직은 생각하기조차도 싫은 곳으로 각인돼 있으니 ‘감회’니 하는 긍정적인 감정의 강요는 불필요할 듯하다.

   양구선착장에서 내가 첫 휴가 나올 때 도선장 검문소 헌병에게 삥땅 뜯겨서 휴가 기분 완전 잡친 이야기, 사명산 유격장 건설 때 시멘트 포대 들고 산 위까지 오르락내리락 했던 기억, 지역사단 통신지원대 입구에서는 내 군대생활 모두라 할 수 있는 그 시절이 회억 등을 조금씩 흘려본다. 아이는 군 생활 이야기라 또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꺼내 본다. 그러면서 ‘그래, 여행은 이렇게 느끼는 거야. 보고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한 순간 하나의 강렬한 느낌……. 그것이 바로 여행.’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통신지원대 옆 숲이 덮인 지역사단사령부 옆길은 내가 자주 사단 위병소를 살짝 피해서 출입하던 길, 그 윤곽은 아직 그대로인 것 같다. 통신대 출입도로는 말끔히 포장되어 있고 기억한 것보다 가파르지는 않아 보였다. 나의 젊은 날 한때, 이 언덕을 얼마나 많이 절망하고 불평하고 분노하면서 오르내리락 했던가. 멀리 부대 위병소가 보인다. 그 아래, ‘닭집’, ‘**집’... 하면서 민가 식당에서 부대 병사들이 라면, 소주, 밥을 사먹었던 곳이 생각난다. 아직 그대론지 궁금하다. 그 때 휴일 날 하루는 부대를 무단이탈해서 식당에 들러서 술밥 간에 먹고 들어오다가 적발돼서 혼났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저 위병소 입구까지는 꼭 가보고 싶었지만 아이와 아버지 정서를 고려해서 결행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내 나이 한 80쯤 되거든 혼자 조용히 다시 추억여행이라도 하면서 나의 청춘 시절의 한 편린이라도 주어담고 싶다. 혼자 소중히 회억하고 싶다. 그런 나만의 정서와 기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그 누구의 방해로부터도 더 자유롭게.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 나이 80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14년 후면 80이 아닌가. 허허……. 아이가 계속 불편한 사인을 보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 할아버지가 매우 힘겨워하시는데 내 기분만 낸다는 것이다. 아이한테 정중히 양해를 구했더니 아이도 수긍한다. 지역사단 사령부 입구 부대 안내 표지 옆에 차를 세우고 사진 몇 장을 담았다.

   그 뒤로 멀리 통신 파견 초소가 있었던 산마루가 보인다. 아이가 미리 수고해서 예약해 놓은 양구 정림리 마을에 있는 펜션을 찾았다. 지역 사단사령부 바로 옆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원로의 피로로 거의 다 퍼지신 것 같다. 그냥 침대에 누어서 주무신다. 그렇게라도 쉴 수 있어서 좋다. 우리 3대가 이곳을 다니러 온 연유를 말해주었더니 펜션 주인아주머니가 자기는 여기 토박이이고 아버지는 여기서 이장직을 오래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간 이곳 변천한 모습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다면서 친절히 대해 준다. 난 부대 뒷산 계곡에서 빨래하던 기억, 부대 내 목욕 시설도 없었던 그 때 계곡에서 발가벗고 목욕 했던 기억, 부대 앞 경비행기가 몇 대 늘 대어 져 있던 항공대 옆을 오갔던 기억, 휴일이면 근처 부대 농장에 피마자 따러 나왔던 기억, 마을 앞을 흐르는 천변에 새로 지은 최신 휴양소에 입소했던 일 등을 말해 주었다. 그 모든 걸 주인은 알고 있었고 공감해 준다. 그 새로 지은 휴양소 자리에는 이제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한다.  이렇게 잠시라도 펜션 주인과 추억을 공유해 본다. 나의 추억여행 동반자에 결국 이 펜션의 주인이 나중에 주역으로 참여한 것 같다. 지금은 여기서 모든 게 고맙다. 오늘도 자축만 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손자는 피로로 그냥 컵라면 하나씩 저녁으로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그래도 이 정도 견뎌준 나의 아들과 나의 아버지가 고맙다.

   잠들기 전에 혼자 생각해 본다. 나는 이 여행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걸 많이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사단 옆 숲 언덕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내 청춘 시절의 한 때, 부대의 부동산, 지적 사무, 무연탄, 통신 공병 자재 각종 수리부속 등 살림과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 언덕으로 난 좁은 길을 열심히 오가던 기억이 소록소록 나서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위의 글은 3년 전 꼭 오늘인 2017. 6.13. 아버지의 6.25한국전쟁 참전 코스 탐방 둘째 날 기록임.]          2020. 6. 13.